'황톳빛 제주' 변시지 서거 10주년, ‘바람의 귀환, 歸還’ 갤러리 끼 용산에서

정자연 기자 2023. 4. 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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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지, ‘폭풍의 바다’, 1991. 갤러리 끼 제공

 

바다에 에워싸인 섬 제주. 돌과 바다, 바람과 말, 소와 초가를 아우르는 그곳의 풍경은 노란 황톳빛으로 일렁인다.

눈으로 보이는 색을 버리고 자연이 가진 궁극의 색을 담았다. 아름다움과 또렷함은 오히려 더 살아났다. 제주의 황톳빛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일궈낸 빛의 화가 변시지(邊時志, 1926-2013)는 색을 버리고 제주의 빛과 바람에 뜻을 새겨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선보인 작가다. 

거센 바람이 부는 제주의 빛을 담은 작가의 작품 중 ‘난무’(1997)와 ‘이대로 가는 길’(2006)은 2006년부터 10년간 미국 국립 스미소니언 한국관에 당시 생존 동양인 작가로는 최초로 상설전시 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 근현대미술작가 변시지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바람의 귀환, 歸還’이 갤러리 끼(대표 이광기) 용산에서 지난 5일 개막했다. 

갤러리 끼가 시지 재단과 함께 진행하는 이번 전시는 변시지의 서거 10년을 맞아, 그의 작품 세계를 회고하고 조망하는 약 30여 점의 작품을 내걸었다.

전시장 내부. 갤러리 끼 제공

전시는 변시지가 제주도에서 1975년부터 2013년까지 작업에 몰두한 작품으로 구성됐다. 특히 작가의 화풍에서 확연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1978년 작품부터 영면하기 전까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조망한다. 

여섯 살 때 제주를 떠났던 변시지는 많은 화가들이 유럽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시기에 반대로 고향 제주로 역행했다.

44년 만의 귀향. 그는 제주에서 제주의 본질을 표현하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에 온 변시지는 더욱 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마주했다.

“제주를 표현하려면 새로운 기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새로운 예술세계의 모색과정은 피를 말리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작품이 안되니까 허전한 마음을 술로 달랬다. 일주일에 밥을 한 끼도 먹지 않고 술로 배를 채웠는데, 하루만 술을 마시지 않아도 못살 것 같은 폭음의 세월이었다…그러나 무서운 열병에도 불구하고 나는 캔버스와 맞서 싸웠다. 붓을 꺾는다는 것은 예술적 패배를 의미했기에 비수처럼 박혀 드는 고통을 물리치고 붓을 들었다”.(변시지 회고록 中)

변시지, '꿈', 1981. 갤러리 끼 제공

제주 풍경은 1977년에 이르러서는 완연한 변화를 보이게 된다. 그의 작품세계를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황토빛 제주가 등장한다. 바탕색은 황갈색의 단색으로 변하고 검은 필선으로 제주의 풍토와 정서를 특유의 시선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변시지는 “아열대 태양 빛의 신선한 농도가 극한에 이르면 흰 빛도 하얗다 못해 누릿한 황토빛으로 승화된다. 나이 오십에 고향 제주의 품에 안기면서 섬의 척박한 역사와 수난으로 점철된 섬사람들의 삶에 개안했을 때 나는 제주를 에워싼 바다가 전위적인 황토빛으로 물들어 감을 체험했다”며 바탕색을 제주도의 자연광에게 얻었다고 밝혔다.

전시에선 변시지 풍정화의 변화와 초가, 돌담, 소나무, 말, 까마귀, 태양 등 제주의 소재를 작가만의 기법으로 구현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예술가로서 자신에 대한 물음과 해답을 찾기 위해 보낸 통렬한 시간이 나열됐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지도. 전시는 오는 5월 20일까지.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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