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전 국민 하루종일 쓸 천연가스, 이 배에 담긴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마주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크기는 그야말로 ‘집채’만 했다. 여기서 말하는 집은 아파트다. 길이 300m, 너비 46.4m, 높이 35.5m. 천연가스를 극저온 상태로 액화시켜 ‘꾹꾹 눌러담을 수 있는’ 총 17만4000㎥ 규모의 4개의 화물창이 있다.
2010년대 중반 긴 불황의 터널을 거쳐온 한국 조선업은 2020년대 들어 다가온 대대적인 LNG 운반선 호황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HD현대중공업과 울산 및 동남권 경제, 더 나아가 국내 수출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LNG 운반선 건조현장을 지난 4일 찾았다.
조선소의 도크에서는 조각조각 만들어진 블록을 하나로 잇는 작업이 진행되며, 조립이 끝난 배는 도크에 물을 채우는 ‘진수’를 거쳐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는 ‘의장 안벽’으로 옮겨진다. 울산조선소 의장 안벽 길이는 총 7.6㎞에 이른다. 이날 찾은 안벽은 각종 연마·절단장비가 발산하는 소음과 마그네틱크레인(자석 원리를 이용해 강재를 나르는 설비) 및 대형 트럭이 이동하며 내는 ‘엘리제를 위하여’ 멜로디의 신호음까지, 온갖 배 짓는 소리로 가득했다.
해당 LNG 운반선은 2020년 7월 주문을 받아 2021년 12월 본격적인 건조에 들어갔다. 착공 1년 4개월째인 현재 85%가량 공정이 진행돼 배의 형상을 거의 갖춘 상태였다.
선미 우현 부근에 난 입구를 통해 배 안으로 들어가니 곧바로 엔진룸이 나왔다. 이 선박은 ‘쌍축선’으로 엔진과 프로펠러가 각각 2개씩 설치돼 있다. 엔진 하나당 1만5000마력, 총 3만 마력의 출력을 낸다.
엔진룸을 통해 선체를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가파른 계단을 5분 정도 오르니 조타실이 나타났다. 조타실 옆 ‘네비게이션 데크’에서는 선박의 갑판 부분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사다리꼴 모양으로 봉긋 솟은 갑판은 LNG 운반선의 대표적인 외관상 특징이다. 이 아래 영하 163도의 극저온을 유지하는 둥근 모양의 화물창 4개가 실려 있다. 천연가스를 극저온의 액체 상태로 압축하면 그 부피는 60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17만4000㎥급 한 척에 1억㎥가 넘는 가스를 실을 수 있다.
이만수 HD현대중공업 프로젝트 매니저는 “LNG 운반선 한 척이 싣고 온 천연가스는 2021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들이 1.13일 가량 사용할 수 있는 양”이라며 “올해 기준으로는 하루 분량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72년 현대중공업 창립 이후 지금까지 건조한 LNG 운반선은 총 95척에 달한다. 최근 몇년 간은 탈탄소 기조에 맞춰 천연가스 수요가 늘면서 HD현대중공업을 비롯한 한국 조선소들은 그야말로 ‘물을 만났다’. 유럽·오세아니아·중동…. 전 세계 선주들이 돈을 싸들고 찾아왔다.
LNG 운반선 신조선가는 약 2억5400만 달러(3347억원)로, 대당 수익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선종으로 꼽힌다. HD현대중공업의 LNG 운반선 수주 잔량(보유 일감)은 2020년 2월 기준 28척에서 지난 2월 52척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최근에는 중국 조선소들도 LNG 수주전에 대거 뛰어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화물창을 극저온·고압으로 유지하는 기술이나 연료 효율성 혁신 부분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따라오기 힘든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국내 조선사의 자부심이다. 이 매니저는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엔진의 효율을 높이고, 선속을 높이기 위해 선형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며 “이 같은 연비 효율성은 중국 업체들에 비해 확실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조선소에서는 생산직 기술교육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이날 방문한 HD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에서는 각 협력사에서 뽑혀 온 교육생 수십명이 분주히 용접·도장 기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 교육생 40여명도 함께 교육을 받고 있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수언어 전공 통역사들이 이들과 동행하며 실시간 통역을 제공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두 달 반 동안의 교육 비용은 전부 HD현대중공업이 부담하는데, 여기서 기량을 끌어올린 기능공들은 현대중공업뿐만 아니라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같은 경쟁사 프로젝트로 넘어가 일하기도 한다.
신영균 HD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장은 “HD현대중공업에서 배운 사람들이 기술 좋다는 평가가 많다. 우리 기술교육원에서 배워 다른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등 제조업 전반에서 두루 일할 수 있는 우수한 기술 인재들을 배출 중”이라며 “이 회사에서 근무할 인력만 양성한다기보다는 국내 조선업을 위해 인력을 양성한다는 마인드로 교육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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