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정치참여 불 붙이는 정부의 ‘굴욕’ 강제징용 해법안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징용) 배상 문제의 해법으로 ‘제3자 변제’를 내놓은 뒤 대학가에서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창구였던 대자보도 다시 등장했다. 정부의 대일 저자세 외교가 대학가의 정치 참여에 불을 당겼다는 말이 나온다.
평화나비네트워크는 6일 서울 노원구 서울여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우리의 미래에 치유받지 못한 상처와 해결되지 못하고 지워진 과거사는 있을 자리가 없다”며 “청년들은 피해자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역사를 부정하는 강제징용 해법안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여대 재학생 460명이 강제징용 해법 철회를 요구하는 연서명에 참여했다.
이들은 지난 4일부터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을 규탄하는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12일까지 12개 대학이 시위에 참여한다. 지난 4일 중앙대와 경희대, 5일 제주대가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서울여대 23학번 성은지씨(21)는 “평소 인권, 역사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윤 대통령의 강제동원 해법을 처음 듣고 ‘우리나라 대통령의 주장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일본으로부터 사죄를 받아야 한다는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고 해법안을 내놓았다”고 했다. 이어 “또래들 중에서도 직접 나서 발언을 하지는 않더라도 조용히 연대와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던 서울여대 21학번 김모씨(25)는 “과거사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제 ‘일본과 협력파트너가 됐다’면서 문제가 없는 듯 행동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면서 “평소 정치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위안부 문제나 강제동원 문제는 결국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문제라고 생각돼 관련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릴레이 시위를 기획한 백휘선 평화나비네트워크 전국대표는 “대통령이 강제동원 해법안에 ‘미래청년기금’을 끼워 넣고 청년들을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청년들은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서명에 동참해줘 힘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반일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과거사 문제는 인권의 문제인 만큼 피해자들이 존중받는 세상이 되어야만 한·일 청년들이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달 24일에는 성균관대 학생들이 강제동원 해법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시국선언을 주도한 김재영씨(28)는 “학내에서 정치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게 조심스러운 분위기지만 이번 강제동원 해법안과 한·일정상회담을 보고 문제의식을 느꼈다”며 “주변 친구들도 ‘대법원 판결을 마음대로 뒤집어도 되는거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시국선언을 준비하는 대자보를 붙였을 때 2~3일 동안에만 10명이 넘는 재학생이 전화로 참가 의사를 밝히는 등 호응이 컸다”고 했다.
서울교대, 인천대, 인하대 등에도 강제징용 해법을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서울교대에 붙은 대자보에는 “아이들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사과를 해야 하고 국민을 보호하고 대변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가르쳤다”며 “정부가 나서서 2차 가해를 하고 (피해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이 현실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고 적혔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강제징용 문제는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닌 역사 인식의 문제고 국가의 자부심과도 연결된 문제”라며 “전국민적으로 비판 여론이 큰 만큼 대학생들의 반응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젊은 층이 주도한 박근혜 탄핵 국면 때처럼 20대가 다시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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