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채 올해 8조5000억원 발행…채권시장 ‘블랙홀’ 재현 우려
한국전력공사가 올들어 8조원이 넘는 한전채를 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전기요금 인상이 유보된 한전이 자금 조달을 위해 한전채 발행을 늘릴 경우 채권 시장의 자금이 한전채로 쏠리는 ‘블랙홀’ 현상이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6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한전채는 이날까지 8조5400억원이 발행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7조4600억원이 발행됐던 것에 비해 발행 규모가 1조원 넘게 증가했다.
문제는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유보되면서 한전이 자금 조달을 위해 한전채 발행을 더 늘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앞서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난달 31일 당정협의회에서 국민 부담을 고려해 2분기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보류하기로 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어렵게 된 한전이 자금 조달을 위해 한전채 발행을 늘리면 채권시장에 지난해와 같은 ‘블랙홀’ 현상이 또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남은 하반기에도 전기요금 인상이 쉽지 않을 경우 한전은 추가자금 조달을 위해 한전채를 발행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지난해 하반기 5%대 후반의 고금리인 한전채가 과다 공급되면서 국내 채권시장의 수요를 잠식하고 국채와 시장금리의 동반 상승을 유발했던 상황이 재현될 우려가 높다”고 밝혔다.
지난해 채권시장에서는 10월 레고랜드 사태 이후 회사채 투자심리가 악화된 가운데, 초우량 등급으로 분류되는 한전채 발행이 늘자 채권시장의 자금이 한전채 쏠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채권시장의 유동성을 흡수하면서 여타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가 줄줄이 미매각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한전채 발행 규모는 31조8000억원으로, 2021년(10조4300억원)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한전채 발행을 2022년에 비해 줄이겠다고 했는데, 현재까지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물량이 발행됐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한전채가 추가발행될 경우) 또 다시 한전채가 회사채나 여전채 수요를 구축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채권시장 전반의 약세와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활동을 위축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한전의 재무 상황을 고려하면 전기요금 인상을 마냥 미룰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적절한 요금인상이 필요한 시점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이날 국회에서 전기·가스요금 민당정 간담회를 열고 한전채 발행보다는 한전 등의 자구노력을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 후 정승일 한전 사정은 “한전채 발행이 금융시장 경색을 가져오거나 회사채 발행 수요를 위축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며 “한전채 발행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한전만의 노력이 아니라 요금인상 시기나 폭과 연결된 부분이 있어서 한전채 외에 자금 조달 방안이 뭐가 있는지를 설명했다”고 밝혔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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