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조용하고 차분한 전시…미리 살펴본 광주비엔날레
9개국 파빌리온 전시관도 주목…캐나다관, 이누이트족 예술 국내 첫 소개
(광주=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7일 시작하는 2023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다. 이숙경 예술감독은 지난 5일 개막 기자회견에서 도덕경에서 따온 이 문구를 소개하며 이번 전시에 대해 "광주, 한국, 아시아다운 것을 넘어 인류 다층의 이야기가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펼쳐진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눈길을 확 잡아끄는 큰 규모의 호화찬란한 작품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원로부터 신진, 여성, 원주민 출신까지 여러 스펙트럼의 전세계 79명의 작가가 자신들의 삶에 기반한 다양한 이야기를 물처럼 조용히, 차분하게 펼쳐놓는다.
원주민·이주민 작가들 두드러져…광주 현지 협업 작품도
6일 개막에 앞서 둘러본 전시에서는 4개의 소주제 중 '조상의 목소리'와 '일시적 주권'이 두드러졌다.
세계 곳곳의 원주민(선주민)에 뿌리를 두거나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작가들이 많이 참여해 선조 때부터 이어진 지식과 삶의 태도를 계승하고 오늘날의 문제들을 공동체적 관점에서 풀어내고자 하는 작업이 눈에 띄었다.
여기에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 영국에서 일하는 이 예술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이 강하게 반영된 듯하다.
실제 이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나의 경험을 두고 내가 잘 아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한국에서 성장해 영국에서 일하는 '이주자 큐레이터'의 관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었고 제 삶의 경험이 중심이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멕시코 와스테크족의 후손인 노에 마르티네스는 영혼이 소리에 반응해 나타난다는 와스테크족의 믿음에 따라 자신의 목소리와 타악기로 직접 의례를 한다. 콜롬비아 노누야 민족의 후손인 아벨 로드리게스는 선조들에게 배운 지식을 보존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마존 우림에 대한 기억을 탐구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남아프리카의 전통 벽화가인 할머니로부터 창의성에 대한 믿음을 물려받은 막가보 헬렌 세비디는 남아프리카 흑인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아프리카 신화, 전통적 가치체계에 뿌리를 둔 그림을 출품했다.
화물 고정끈 같은 실용적인 재료에 마오리족의 전통 직조 기술을 적용한 마오리족 여성 작가집단 '마타아호 컬렉티브', 북아메리카 선주민 여성들이 착용하는 코쿰 스카프를 활용한 타냐 루칸 링클레이터, 대만 아트얄족의 전통 염색과 방직 기술을 철저히 지켜 작업하는 유마 타투 등의 작업은 현대의 관점에서 전통을 재해석한다.
광주 현지에서 협업으로 완성된 작품들도 있다.
일본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는 1932년 카자흐스탄에 설립돼 고려인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고려극장의 역사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광주 고려인마을의 현재와 과거를 다룬 작업 '삶의 극장'을 선보인다. 이 작업에는 고려인 공동체 청소년 15명이 참여했다.
멕시코 작가 알리자 니센바움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활동을 시작한 놀이패 '신명'과 협업한 작품을, 타렉 아투이는 광주의 악기장, 예술가, 공예가들과 함께 2019년부터 4년간 한국의 전통 타악기, 옹기, 청자, 한지 제작 방법을 재해석하는 협업 작업으로 완성한 '엘레멘탈 세트'를 선보인다.
관객이 작품을 만져보거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엄정순의 설치작 '코 없는 코끼리'는 시각장애 학생들이 청각과 후각, 촉각으로 느낀 코끼리를 표현한 조형물을 재해석해 실제 코끼리로 재현한 것이다. 관람객은 실제 이 작품을 만지면서 세상을 인지하는 다양한 방식을 경험할 수 있다. 이건용이 1976년 시작한 '바디스케이프 76-3' 연작은 관객들이 작가의 지침에 따라 전시장 벽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참여형 작품으로 변주됐다. 타렉 아투이의 악기를 활성화해보는 참여형 워크숍도 진행된다.
본전시는 광주비엔날레전시관을 비롯해 광주국립박물관과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예술가의 집 등 모두 4곳에서 열린다.
대개 작가를 소개할 때 국적이 따라붙지만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국적 표기를 지양하는 대신 구체적인 출생 지역명과 현재 활동하는 거주지를 소개했다. 공간을 구획하는 가벽을 줄이고 너른 공간 안에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도록 작품을 배치한 것도 이번 비엔날레 전시 특징 중 하나다.
파빌리온 전시 규모 확대…캐나다 등 9개국 참가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일종의 국가관 개념인 파빌리온 전시가 예년보다 확대됐다. 총 9개국이 광주 시내 곳곳의 전시 공간들을 활용해 국가관처럼 꾸민 파빌리온 전시에서는 양림동 이강하미술관에 꾸며진 캐나다관이 특히 흥미롭다.
캐나다관의 '신화, 현실이 되다'전은 캐나다 원주민인 이누이트족의 예술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킨가이트 스튜디오에서 함께 작업하는 이누이트 작가 32명의 90여점을 소개한다. 이누이트 예술의 대모인 고(故) 케노주악 아셰바크의 조각 '곰'을 비롯해 지난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참여한 슈비나이 애슈나 등 색연필과 잉크를 중심으로 이누이트족의 생활과 주변의 생물들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동곡미술관·박물관에 마련된 이탈리아관에서는 5명의 작가를 소개한다. 파비오 론카토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영감을 얻은 옹기 항아리 작업을, 마르코 바로티는 천연 여과기 역할을 하는 조개껍데기의 성질을 토대로 움직이는 소리 조각 설치를, 카밀라 알베르티는 한국의 해안가에서 버려진 해양 쓰레기들을 이용한 조각 작업을 선보인다.
양림미술관에 꾸려진 프랑스관에서는 지난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심사위원 특별 언급상을 받은 알제리계 프랑스 작가 지네브 세디라의 영상 작업 '꿈은 제목이 없다'가 마치 극장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상영된다.
zitrone@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검찰 '교제살인 의대생' 사형 구형…유족, 판사 앞 무릎 꿇어(종합) | 연합뉴스
- 8년간 외벽 타고 200만원 훔친 '서울대 장발장'…풀어준 검찰 | 연합뉴스
- '강남 7중 추돌' 운전자 혈액서 신경안정제…'약물운전' 추가 | 연합뉴스
- 도로 통제 중이던 신호수, 트럭에 치여 숨져…20대 운전자 입건 | 연합뉴스
- 공항 착륙 전 항공기 출입문 연 30대, 승객 상해혐의도 집행유예 | 연합뉴스
- "스토킹 신고했는데도…" 구미서 30대 남성 전 여친 살해(종합) | 연합뉴스
- 차 몰면서 행인들에게 비비탄 발사…20대 3명 검거 | 연합뉴스
- 대치 은마상가 지하서 화재…1명 부상·200여명 대피(종합) | 연합뉴스
- '굶주린 채 사망, 몸무게 20.5㎏'…아내 감금유기 남편 징역 2년 | 연합뉴스
- 박지성 "대한축구협회, 신뢰 잃은 게 사실…기꺼이 돕고 싶어"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