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관리의 오류, 하수도 관리와 하수 관리는 다르다
물관리 목적은 수생태환경 조성
주요 예산 사업은 하수도 관리
수생태 복원보다 설비에 돈 써
법은 정부 정책의 방향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법과 정책이 일치하지 않으면 법을 바꾸는 게 아니라 정책을 바꾸는 이유다. 법의 취지를 살려 정책을 펴야 한다는 거다. 지난 2018년 물관리기본법을 제정했다. 수생태계 관리가 이 법의 핵심이다. 그런데 정부 정책은 수생태계 관리가 아닌 하수도 설비 관리에 집중돼 있다. 뭔가 잘못됐다.
3월 22일. 이날은 심각해지는 물 부족과 수질오염을 방지하고, 물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취지로 1992년 유엔(UN)이 선포한 '세계 물의 날'이었다. 우리나라도 국제 사회의 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1995년부터 정부 차원의 기념식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2018년 6월엔 종합적인 물관리를 위한 법률도 제정했다. 바로 물관리기본법(2019년 6월 시행)이다.
이 법 제1장 제1조에서 밝힌 법제정 목적을 풀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물관리에 필요한 기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물환경을 보전ㆍ관리하며, 가뭄이나 홍수로 인한 재해를 예방하는 등 지속가능한 물순환 체계를 구축한다." 쉽게 말해 '세계 물의 날'의 취지를 국내에서도 그대로 잇겠다는 거다.
좀 더 구체적인 물관리의 기본원칙은 이 법 제2장에 잘 드러난다. 제2장 제8조는 "물은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고, 국가의 물관리 정책에 지장을 주지 않으며, 물환경에 관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이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9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물이 순환과정에서 지구상의 생명을 유지하고, 국민생활과 산업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생태계의 유지와 인간의 활동을 위해 물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10조엔 "생물 서식공간으로서 물의 기능과 가치를 고려해 수생태계 건강성이 훼손될 시 개선ㆍ복원하는 등 지속가능한 수생태환경의 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언뜻 봐도 이 법의 목적은 '물 자원의 관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수생태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우리 정부가 물관리기본법의 목적에 부합하는 물관리 사업들을 잘 진행하고 있느냐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법 시행 이후인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이어져 온 정부의 물관리 사업의 면면을 살펴봤다.
우선 정부 총지출 중 물관리 사업 지출은 크게 물환경 부문(환경), 수자원 부문(국토ㆍ지역개발) 두가지다. 2023년 기준 물환경 부문과 수자원 부문의 지출 규모는 각각 4조4048억원과 1조5682억원이다.
총 5조9730억원으로 정부 총지출(638조7277억원)의 0.94%다. 2020년(5조3822억원)보단 늘었지만, 2021년(5조9930억원) 이후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3년 기준으로 물관리 사업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전체 예산 중 물환경 부문의 '수질ㆍ수생태계 관리(2022년 이전엔 물오염원 관리)' 사업 지출이 2조6672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비중은 44.7%였다.
다음으로는 물환경 부문 '4대강 유역 관리(1조52억원ㆍ16.8%)', 수자원 부문 '하천 관리(7503억원ㆍ12.6%)', 물환경 부문 '맑은물 공급ㆍ이용(6869억원ㆍ11.5%)', 수자원 부문 '수자원정책ㆍ홍수 관리(4845억원ㆍ8.1%)', 수자원 부문 '댐 운영ㆍ관리(2033억원ㆍ3.4%)' 순이었다.
수생태계 관리와 연관성이 있을 법한 '수질ㆍ수생태계 관리'와 '4대강 유역 관리' '하천 관리' 사업 지출이 총 예산의 74.1%를 차지했다. 이 통계치만 놓고 보면 정부의 사업들은 '지속가능한 수생태환경 조성'이라는 물관리기본법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위 단위사업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물관리 관련 사업 중 지출 비중이 가장 높은 '수질ㆍ수생태계 관리' 사업을 세부적으로 뜯어보자.
이 사업은 하수도 관리(80.8%), 수질 개선 기반 구축(9.8%), 산업폐수ㆍ기타오염원 관리(9.4%)의 하위 단위사업들로 구성돼 있다. 백분율에서 보듯 '하수도 관리' 사업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문제는 하수도 관리가 수생태계 관리와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하수도 관리는 하수관로管路 등의 설비를 유지ㆍ보수하는 일이다. 요즘 많은 지자체가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 하수도 사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사업은 하수처리장이나 하수관로를 실시간 감시ㆍ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이 역시 필요한 사업이긴 하지만, 물오염원을 제거하거나 관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수질ㆍ수생태계 관리' 사업의 하위 단위사업에 '산업폐수ㆍ기타오염원 관리' 사업이 별도로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생태계 관리를 위해서라면 '산업폐수ㆍ기타오염원 관리' 사업 지출이 더 많아야 하지만 지금은 '하수도 설비' 개선에 예산이 집중돼 있다는 거다. 특히 '하수도 관리' 사업의 예산 지출 비중은 2020년에는 79.7%, 2021년에는 77.8%, 2022년에는 76.7%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열린재정에서 '수생태계'를 명시한 세부사업(확인 가능한 최소 사업단위)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총 11개밖에 검색되지 않았다. 11개 사업은 수질ㆍ수생태계 측정조사, 수생태계 건강성 확보 기술개발(R&D), 수생태계 연속성 진단체계 구축 3가지였다.
그런데 4년간 지출의 79.3%(2863억원)는 '수질ㆍ수생태계 측정조사'에 집중돼 있었다. 물론 수생태계를 개선하는 정책에는 측정조사가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4년간 조사에만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입한 건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순수한 수생태계 관련 사업이 많지도 않고, 예산 배정액이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그럼 정부 사업이 물관리기본법 취지에 부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물을 '인간을 위한 자원'이 아니라 '수생태 복원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이기 때문이다.
수생태 복원을 위한 사업들로는 하천의 서식지 보호나 복원, 물길을 살리기 위한 하천의 보(저수 설비)나 횡단구조물 철거 등이 대표적이다. 이미 적은 예산으로도 수생태 복원과 수질 개선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업들이다.
물관리기본법이 제정된 지 벌써 5년이다. 예전과 같은 소극적인 물관리 사업들로는 물관리기본법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 법과 정책 간 적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태 복원을 위한 예산과 사업의 확대가 필요해 보인다.
김수나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
soasilvia@gmail.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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