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표절·한국은 저자 끼워넣기...만연한 연구 부정

박정연 기자 2023. 4. 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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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연구진, 아시아 국가별 의학 연구부정 유형 분석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학계의 골칫거리인 연구부정 양상이 아시아 국가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의 표절, 조작, 중복게재, 부당한 저자표기 등 다양한 유형의 연구 부정 중 각국 학계의 문화에 따라 특정한 유형이 특별히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표절이나 중복 게재가, 인도나 한국의 경우 논문 기여도가 없는 사람을 저자에 올리는 '선물저자'가 주된 연구부정 사유로 지목된다. 연구부정을 근절하기 위해선 각국 학계의 특성이나 문화를 고려한 맞춤형 자정작용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라티카 굽타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원 겸 영국 로열울버햄프턴병원 전문의는 아시아 국가에서 발생한 의학계의 연구부정 유형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지난달 27일 국제의학학술지 '대한의학회지(JKMS)'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미국국립의학도서관(NLM)이 운영하는 의학·생명과학 분야 논문검색사이트 '펍메드(PubMed)'와 네덜란드 학술전문출판사 엘스비어가 운영하는 논문검색사이트 '스코퍼스(Scopus)'에 저장된 논문 중 2020년 1월부터 2022년 1월 사이 연구부정을 사유로 철회된 논문을 확인했다. 

조사를 실시한 2022년 1월 9일 기준 2266건의 논문이 철회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별로 철회된 논문 수는 중국 1659건, 인도 482건, 파키스탄 55건, 일본 28건, 말레이시아 19건, 인도네시아와 태국 10건, 방글라데시 3건 등으로 나타났다. 연구부정에 대한 학계의 윤리교육 등은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지만 부정행위 사례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표절·중복 게재·선물저자…국가별로 연구부정 유형 양상 달라

국가별로 빈번하게 나타난 연구부정 유형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중국의 경우 중복게재와 표절이 주로 문제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중국의 연구부정 행위를 다룬 5개 논문에서 언급된 의학논문 143건의 철회사유를 살펴본 결과 가장 잦은 사유는 중복 게재(28.2%)였으며 표절(17.6%)이 뒤를 이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중국 학계의 경우 표절에 대한 윤리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2019년 중국 동난대 연구에 따르면 중국 연구자들 중 93.6%는 출처표기 없이 문장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을 표절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같이 말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인식에는 어린 시절부터 체득한 문화적 특성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봤다. 연구팀은 "201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에 따르면 중국의 4~6세 어린아이들은 미국과 멕시코 또래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디자인을 베낀 이미지에 대해 덜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이어 "중국 연구부정행위의 주요 요인으로는 문화적 영향, 출판에 대한 압박, 암기 위주의 학습능력 평가 시스템 등이 꼽힌다"고 말했다.

인도의 경우 의학논문 6건의 철회 사유를 분석한 결과 '선물저자'가 주요 원인이었다. 선물저자는 논문에 실질적인 기여도가 없는 선임 연구자나 지인을 저자로 넣는 행위다. 연구팀은 "앞선 연구에 따르면 인도의 경우 치열한 경쟁, 자금부족, 출판윤리 교육기회 및 가이드라인 부재 등이 선물저자를 포함한 연구부정 행위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인으로 꼽힌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는 표절이 가장 빈번한 연구부정 유형으로 꼽혔다. 연구팀은 "2018년 말레이시아 국립대 연구 결과에 의하면 말레이시아 학계에서 가장 흔한 과학적 위법행위는 표절과 이로 인한 저작권 분쟁으로 나타났다"며 "연구 환경과 조직 및 구조적 요인이 부정행위에 중요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은 '선물저자'가 가장 큰 문제…"30년 지나도 바뀌기 어려울 것"

라티카 굽타 연구팀의 논문에서는 한국 사례가 다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학계 또한 연구부정으로 시름하고 있는 현실은 여전하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이야기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선물저자가 꼽힌다.

실제 학계에 만연한 선물저자 관습이 대대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2019년 이뤄진 교육부 특별감사에서는 미성년자가 공저자로 등록된 논문 794건이 확인됐다. 교육부는 이 중 11개 대학과 17명 교수를 연구부정행위로 고발했다. 자녀의 진학 등을 이유로 연구에 대한 기여가 없음에도 저자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

선배 연구자를 '예우 차원'에서 논문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일도 잦다. 한국 연구진이 2017년 JKM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의 주요 학술지에서 단일 기관이 발표한 논문 1건당 평균 저자 수는 JKMS 6.7명, 연세의학저널(YMJ) 7.0명, 미국의사협회지(JAMA) 2.2명 등으로 나타났다. 똑같이 SCI급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지만 외국 학술지에 비해 논문 당 저자수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한국 학계에선 선물저자 관습이 쉽사리 뿌리 뽑히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부정이란 경각심보다는 선배 연구자에게 마땅한 예의라는 인식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홍성태 JKMS 편집장 겸 대한의학회 간행이사는 "한국 의학계의 경우 표절이나 중복게재 문제는 예전과 비교했을 때 크게 개선됐지만 선물저자 문제는 여전하다"며 "특유의 수직적인 문화와 오랜 인식 탓으로 선물저자 관행은 30년이 지나도 바뀌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학계에서 선물저자 부정행위가 벌어지는 대표적인 사례로 선배 의사의 환자 데이터를 사용한 경우를 꼽았다. 데이터 분석이나 해설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고참인 의사가 관리하는 환자의 정보를 활용한 경우 그의 이름을 논문의 저자로 올리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홍 편집장은 "국제의학학술지 편집위원회(ICMJE)는 저자가 되기 위한 요건을 4가지 항목으로 나눠 자세하게 제시하고 있다"며 "저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인 저자됨(Authorship)에 대해 한국 의학계가 스스로 살피고 자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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