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가족들의 지친 몸과 마음 챙겨요”
[서울&] [자치소식]
2월 개소, 강동성심병원 위탁 운영
30여 평 규모에 카페형 쉼터 갖추고
상담, 여가지원 교실, 돌봄 교육과
연 64시간 재가 돌봄 서비스 제공
“서로 만나 얘기하는 아지트 될 것”
“여기 오면 마음이 편해져 좋아요.”
3월23일 오전 강동구 성내동 ‘강동구치매가족지원센터’에서 만난 방정웅(81)씨가 이렇게 말했다. 방씨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집에서 혼자 돌보며 산다. 아내는 4급 장기요양등급을 받았다. 마땅한 소득이 없어 병원비와 생활비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경제적 부담으로 돌봄 서비스 이용을 꺼리다보니 고령인 방씨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점점 지쳐갔다. 치매가족지원센터 개소 소식을 듣고 한 가닥 희망의 동아줄을 잡는 마음으로 센터를 찾았다.
방씨는 지난주부터 가족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노래 교실을 주 1회 다니고 있다. 이날 노래 교실에서 방씨는 자신이 쓴 시를 다른 회원들 앞에서 읽고 박수를 받았다. 60~80대 수강생 14명(남성 3명, 여성 11명)은 ‘꽃바람’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소풍 같은 인생’ 등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노래교실 프로그램은 치매에 걸린 가족을 돌보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게 운영됐다. 강사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따라 하고 악기 ‘마라카스’(‘마라카’라는 열매 속에 씨를 넣고 흔들어 소리를 내는 악기)를 흔들어보기도 했다. 간단한 체조 동작도 곁들이면서 모두 즐거워했다. 방씨는 “스트레스가 풀려 좋다”면서도 “집에 혼자있는 아내 걱정에 불안해 다음엔 같이 올수 있었으면 더 좋겠다”고 했다.
강동구 치매가족지원센터가 지난 2월22일 문을 연 뒤 한 달 남짓 동안 하루 평균 20여 명이 센터를 찾았다. 3월까지 자조모임이 세 팀 운영되고 노래교실도 진행됐다. 자조모임은 팀별 5명씩 구성해 월 1회 활동한다. 한상순 강동구 보건의료과 어르신건강팀장은 “다른 곳에서는 거짓말처럼 여겨지는 환자의 이상행동에 대한 이야기가 자조모임에선 공감을 받을 수 있어,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참여자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전했다.
치매환자 간병 가족을 위한 센터는 강동구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다. 치매환자 가족들이 간담회 등을 통해 지원 센터 설치를 꾸준히 요청했다. 강동구의회는 2021년 ‘치매 관리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추진 근거를 마련했다. 이수희 강동구청장은 ‘어르신 단기 케어’를 민선 8기 공약사업으로 넣어 센터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 구청장은 “치매 환자를 보살피는 일이 환자 가족들의 일상에 큰 제약을 줘 사회적 고립까지도 야기할 수도 있다”며 “가족들에게 휴식과 돌봄을 제공하는 것은 삶을 회복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해왔다.
공간 마련과 인테리어는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이 처한 상황을 헤아려 진행했다. 가족지원센터는 지하철 8호선 강동구청역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있다. 치매환자들이 이용하는 강동구 치매안심센터와 가까운 곳에 장소를 정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환자와 같이 올 수 있게 턱이 없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 3층을 임대해 공간을 마련했다.
센터는 연면적 115.5㎡(약 35평) 규모로 상담실, 프로그램실, 카페형 쉼터, 사무실 등으로 구성했다. 쉼터는 기다란 우드슬랩 테이블에 커피머신도 갖췄다. 한상순 팀장은 “밝고 따뜻한 분위기로 꾸몄고 폴딩도어로 개방감을 느끼게 했다”며 “쉼터엔 전자 칠판, 프로그램실엔 빔을 갖춰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노래교실에 참여한 이봉수(75)씨는 하루 한두 번 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기도 하고 카페에서 차도 마신다. 이씨는 치매에 걸린 90대 노모를 8년째 홀로 모시고 있다. 노모는 이씨 이외 다른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고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 아내와도 떨어져 혼자 어머니를 돌보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씨는 “치매환자 가족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힘든 걸 얘기할 수 있는 센터가 있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치매가족지원센터 운영은 강동성심병원이 맡았다. 센터장(의사), 팀장(간호사)에 작업치료사 2명, 사회복지사 1명으로 모두 5명이 일한다. 치매안심센터에서 운영하던 기존 치매가족 지원 프로그램이 한 명으로 운영됐던 것에 견줘 대폭 보강한 셈이다. 프로그램도 확대해 치매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상담과 돌봄 부담 분석, 가족 교실, 자조모임, 카페, 힐링 교실 등을 운영한다.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에서 교육받은 직원들로 구성돼 전문성 있는 상담이 이뤄진다”고 작업치료사인 강민희씨가 전했다.
단기간 재가돌봄 서비스는 센터가 가장 중점을 두는 서비스이다. 4월 중 방문요양기관과 서비스 제공 협약을 맺어 추진한다.건강관리공단이 제공하는 치매가족 휴가제에 추가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보호자의 입원이나 경조사 참여 등으로 치매환자가 집에 혼자 있게 될 때 서비스 이용 신청을 하면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가 치매환자를 돌봐준다. 1회 6시간 이상(주간 기준, 야간 8시간 이상) 연간 64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다. 한상순 팀장은 “전액 구비로 진행하다보니 재원의 한계가 있어 소득 제한(중위소득 100% 이하)과 소득기준에 따른 본인 부담금이 있지만, 1~2등급만이 아닌 장기요양등급 전체로 대상을 넓혔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센터는 치매환자를 돌보는 기술에 대한 교육도 이달 중순부터 진행한다. 소규모로 8회, 두 달 정도 진행하고 참여자들을 자조모임으로 이어줄 계획이다. 치매환자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가족들의 자조모임도 하반기에 운영해보려 한다. 작업지도사 강씨는 “이들이 치매환자 가족들에게 멘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센터가 치매가족들이 서로 만나 얘기 나누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아지트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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