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지 않는 벚꽃 600송이 보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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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만든 벚꽃 작품 ‘바라 봄’을 배경으로 웃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친애하는 봄’ 전시회 ‘바라 봄’ 전시
한지로 만든 꽃으로 만개한 봄 표현
하반기 ‘궁중상화’ 전시회 열 계획
“사라져 가는 전통 맥 잇고 싶어요”
“자연의 꽃은 금방 지니 아쉽잖아요. 한지는 천년을 가기 때문에 한지로 만든 꽃은 ‘영원히’ 피어 있는 게 매력인 것 같아요.”
영등포구가 지난 3월24일부터 오는 5월7일까지 영등포구 영등포동4가 타임스퀘어 지하 2층 구립영등포아트스퀘어에서 ‘친애하는 봄’ 전시회를 열고 있다. 다가올 봄을 미디어 월로 만나는 ‘미리 봄’, 한지로 만개한 벚꽃을 표현한 ‘바라 봄’, 보내기 아쉬운 봄을 그리는 ‘그려 봄’으로 구성했다. ‘바라 봄’을 전시한 이미나(33) 작가는 지난달 31일 “시들지 않는 순간의 봄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바라 봄’은 한지 꽃과 비단 천이 어울린 ‘설치 작품’이다. 나뭇가지에 핀 벚꽃 뒤로 천장에서 아래로 드리운 흰 비단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입체감 있는 동양화 느낌을 내려고 했어요. 뒤로 갈수록 겹쳐 보여 은은한 멋도 풍기죠.”
이 작가는 지난 1월부터 꼬박 두 달 동안 작품을 만들었다. “제가 섬세한 성격이죠.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요.” 벚나무 가지 6개에 핀 꽃송이 600개를 매우 섬세하게 만들어 생화와 구분하기 쉽지 않다. 이 작가는 “닥나무로 만든 한지는 편안하고,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낸다”며 “작품을 만들면서 이렇게 꽃송이를 많이 만든 건 처음”이라고 했다.
이 작가는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처음 한지공예를 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보다 잘하는 학생이 없는 것 같아서 잘한다고 생각했죠. 한지로 뭔가를 만드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작가는 “예술 하면 밥 먹고 살기 힘들다”는 부모님 반대로 원하는 미대에 진학하지 못했다. 대신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해 유치원 교사로 1년 동안 일하다 그만뒀다. “행복한 삶이 아니었죠. 하고 싶은 한지공예를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이 작가는 2013년 전북 전주에 있는 한지 공방에 다니다 2년 뒤 전주대 한지문화산업대학원 한지공예학과에서 한지공예를 전문적으로 배웠다. 한지공예는 종이를 꼬아 만드는 지승공예, 종이죽을 만들어 사용하는 지호공예, 골격에 염색한 한지를 덧발라 문양을 새기는 전지(색지)공예, 종이로 꽃을 만드는 지화공예 등 분야가 많다.
“대학원에서 배울 때는 ‘내 것’이 없는 느낌이었죠. 전지공예를 주로 배웠죠. 젊은 사람도 저뿐이었어요. 내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가는 다양한 한지공예 중 지화공예에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김제에 있는 한지 꽃 전문가한테 지화공예를 따로 배웠다. 지화공예는 한지를 꽃 모양으로 오려 염색해 색깔을 내고 인두기로 열을 가해 꽃 형태를 만든다.
“어릴 때부터 꽃을 워낙 좋아했어요. 그 때문인지 한지로 꽃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이 작가는 “한지 꽃은 자연스럽고 따뜻한 느낌”이라며 “꽃 한 송이 만들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고 돌이켜봤다.
이 작가는 2017년 10월 전북콘텐츠코리아랩 공모에 선정되면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이 공모는 전북콘텐츠융합진흥원이 콘텐츠 창작·창업가를 발굴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민아씨 역량에 투자하겠다면서 꽃을 만들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이 작가는 “이때부터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대학원 울타리를 벗어나 1인 창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작가는 2018년부터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했다. 전주에서 한지공방 ‘한드림’을 만들어 한지 체험과 교육을 시작했다. “국내에서 한지로 꽃을 만드는 공예 작가는 몇 명 되지 않죠. 독보적인 2~3명 외에는 거의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한지 꽃 전시회도 드물다. 2019년 7월 ‘전주, 한지로 꽃피다’, 2020년 12월 ‘한지화’를 비롯해 다양한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2019년 9월에는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 도서전 개막식에 사용할 꽃을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2021년 8월 전주 역사박물관 오얏꽃 포토존 전시, 2021년 6월 전주 정원박람회 포토존 설치 작업도 했다. 그리고 2022년 5월 ‘보라', 6월 ‘채화연회’ 등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새로운 꽃을 만들면 스트레스는 받지만 성취감이 크죠.” 이 작가는 지금껏 다양한 꽃을 만들었다. 프리지어, 벚꽃, 장미, 튤립, 스위트피, 목련, 동백꽃, 수국, 수선화, 작약꽃, 양귀비꽃, 등나무꽃, 아네모네, 오얏꽃, 목화꽃, 연꽃, 은방울꽃 등 셈하기도 힘들 정도다. 이 작가는 “똑같은 꽃을 만드는 걸 싫어한다”며 “언제나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한지로 꽃을 만드는 일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죠.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이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 작가는 옛 궁중에서 잔칫상을 꾸미던 ‘궁중상화’에 관심이 많다. 궁중상화란 궁중의례나 연회 때 음식을 장식하는 데 사용했던 꽃장식을 말하는데, 올해 하반기에 궁중상화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이 작가는 “올해는 한지로 만든 궁중상화를 알리는 단계로 생각한다”며 “국가에서 신진작가를 많이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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