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섭의 MLB스코프] 규정이 돕는 2023시즌, 타자들의 반격이 시작되나

이창섭 2023. 4. 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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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리오 로드리게스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메이저리그 개막 첫 주가 지나가고 있다. 이미 시범 경기에서 위력을 실감한 새 규정들은 정규시즌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3시간 6분이었던 경기 평균 시간이 2시간 38분으로 단축됐다. 시범 경기와 비슷한 양상이다.

시범 경기 평균 시간 변화

2021 : 3시간 1분

2022 : 3시간 1분

2023 : 2시간 35분

올해 메이저리그는 도루의 시대가 될 것이 자명했다. 타석 당 주자 견제 제한(2회)과 확대된 베이스 크기(18인치)는 주자들이 적극적으로 뛸 수 있도록 만든 장치였다. 시범 경기에서도 경기 당 도루 시도가 2022년 1.6회에서 올해 2.3회로 많아졌다. 이에 각 팀들은 발 빠른 선수들을 비장의 무기로 로스터에 포함시켰다. 대표적인 선수가 피츠버그 파이럿츠 배지환이다.

지난해 정규시즌 첫 6512타석 동안 도루 시도는 89회, 성공은 61회였다. 그런데 올해는 첫 6786타석에서 154번의 도루 시도 중 124번을 성공시켰다. 도루 시도가 늘어난 것도 눈에 띄지만, 도루 성공률이 68.5%에서 80.5%로 높아진 것이 특기할만하다. 이는 주자들이 많이 달릴 것을 알고 있어도 투수와 포수가 막지 못했다는 의미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벌써 도루의 새 역사를 썼다. 1901년 이후 개막 첫 두 경기 만에 두 자릿 수 도루를 정복한 최초의 팀이 됐다.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도루 1위 호르헤 마테오와 2위 세드릭 멀린스를 보유한 볼티모어는 첫 두 경기에서 도루 10개를 휩쓸었다(종전 기록 1976년 신시내티 레즈, 1983년 LA 다저스 9도루). 이틀 연속 멀티 도루로 물 만난 물고기였던 마테오는 바뀐 규정에 대해 "정말 사랑스럽다"고 고백했다.

평소 도루와 거리가 멀었던 주자들도 허를 찌른다. 시애틀 매리너스 타이 프랜스는 2019년 메이저리그 데뷔 후 도루가 하나도 없었다. 마이너리그 통산 535경기에서도 16도루에 그쳤다. 심지어 13번이나 실패했다. 대학 시절에도 통산 189경기 10도루, 9실패는 프랜스가 얼마나 도루 능력이 떨어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프랜스는 지난 4일 LA 에인절스전에서 메이저리그 통산 첫 도루를 기록했다. 무려 3루 도루였다. 프랜스는 초당 최대 이동 거리를 뜻하는 스프린트 스피드가 도루 과정에서 24.5피트밖에 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평균 27피트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리드폭을 크게 가져가면서 다음 타자 초구에 곧바로 뛴 선택이 적중했다. 이처럼 올해 도루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다.

사실 도루는 각 팀들이 지양하는 추세였다. 과거에는 경기 흐름을 바꾸는 플레이였지만, 지금은 실익을 따지면서 무리하게 도루를 강행하지 않는다. 선수들의 몸값이 높아지면서 혹시나 다쳤을 때 후폭풍도 도루에 대한 인식을 소극적으로 바꿨다. 만약 이번에도 주자들의 안전성을 보장하지 않았다면 도루는 이렇게 급증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루의 유행은 경기의 전반적인 형태를 바꾸고 있다. 투수는 루상에 주자를 내보내는 것이 이전보다 더 부담스러워졌다. 가뜩이나 피치 타이머에 맞춰 공을 던져야 하기 때문에 신경써야 될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가급적 주자를 내보내지 말아야 하는 생각은 타자와의 정면 승부로 이어졌다. 덕분에 정규시즌 첫 주 두드러진 또 하나의 현상이 홈런이다.

2019년 메이저리그는 홈런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단일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운 미네소타 트윈스를 비롯해 뉴욕 양키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 다저스가 팀 홈런 상위권에 올랐다. 그 해 쏟아진 6776홈런은 2017년 6105홈런을 넘어서는 최다 기록이었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퍼졌던 스테로이드 시대를 뛰어 넘는 홈런 수였다.

단일 시즌 팀 최다홈런 순위

307 - 미네소타 (2019)

306 - 양키스 (2019)

288 - 휴스턴 (2019)

279 - 다저스 (2019)

267 - 양키스 (2018)

264 - 시애틀 (1997)

홈런 역사를 새로 쓴 2019년의 경기 당 평균 홈런 수는 1.39개였다. 이 숫자는 2020년 1.28개, 2021년 1.22개를 거쳐 투고타저 성향이 짙어진 작년에는 1.07개까지 줄었다. 그러다 이번 시즌 경기 당 평균 홈런 수가 1.22개로 다시 늘어났다. 그런데 도루와 달리 홈런은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지 않았다. 홈런은 탈삼진, 볼넷과 더불어 사무국이 경계한 부분이었다.

보스턴 레드삭스 알렉스 코라 감독은 달라진 홈런 타구를 주시했다. 코라는 보스턴 지역 매체를 통해 "(타구가) 다르다. 시즌 초반 이런 타구는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라파엘 데버스도 "작년의 홈런 타구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차이가 난다"며 코라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실제로 홈런/플라이볼 비중이 2022년 11.4%에서 올해 12.7%로 올라가긴 했다.

홈런이 늘어날 수 있는 요소는 다양하다. 올해는 오랜만에 스프링캠프 일정을 정상적으로 소화했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와 직장 폐쇄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했었다. 여기에 WBC 대회가 투구 수 제한이 있는 투수들보다 타자들의 타격감을 일찍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됐을 수 있다. 초반 궂은 날씨도 투수 제구에 더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 무엇보다 수비 시프트 제재로 좌타자들이 당겨치는 데 주력하고 있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시기다. 이제 막 첫 주가 지나간 시점에서 모든 기록은 타당성을 가지기가 힘들다. 표본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일어난 변화를 두고 그저 가능성을 논하는 단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규정들은 분명 타고투저를 더 지지한다. 타자도 조심해야 할 규칙이 있지만, 투수에게 더 엄격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애당초 사무국이 강조하는 '인플레이 타구의 중요성'이 투수보다 타자에게 더 유리한 기조다.

1920년 이후 리그 최저 타율

1968 : 0.237

1967 : 0.242

2022 : 0.243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1920년 라이브볼이 시작된 이래 세 번째로 낮은 타율을 기록하며 체면을 구겼다. 올해는 무너진 자존심을 되찾아야 하고, 되찾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타자들이 홈런과 도루를 앞세워 계속 반격할지, 아니면 투수들이 대책 마련에 나설지를 지켜봐야 한다. 일단, 기선 제압은 타자들이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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