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문서] "한일청구권협정 대표들도 '개인권리 미해결' 인식 일치"
교토서 열린 한일 비공식 정상회담 추진 경위도 공개돼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오수진 기자 =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을 주도한 양국 협상 대표가 해당 협정으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공감대가 있었다는 점이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현재 일본 정부는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한국 대법원에서 패소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을 막고 있다. 그러나 과거 일본의 협상대표조차 개인 청구권은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6일 외교부가 공개한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보면 1991년 8월 3일부터 이틀간 일본 도쿄에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후 보상 국제포럼이 열렸는데 이 행사에는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이었던 민충식 전 수석이 참석했다.
주일대사관이 정리한 민 전 수석의 포럼 참석 발언에 따르면, 그는 "1965년 소위 '청구권' 협정에 대해 한일 양국간 및 국민간 인식의 차가 컸다"며 "또 개인의 청구권이 정부간에 해결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교섭 대표간에도 동협정은 정부간 해결을 의미하며 개인의 권리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인식의 일치가 있었다"며 "당시 시이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일본 외무상도 동일한 견해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국제법이 이제 바뀌고 있는바,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생각할 단계라고 본다"며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일본의 책임이 모두 해결된 게 아닐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민 전 수석의 발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과거 한국과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배상 청구권이 완전히 소멸됐다'는 현재 일본 정부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한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을 일괄 대리해 일본의 지원금을 수령한다고 돼 있다"고 말한 것과도 인식차가 있다.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 정상 간에 격식을 차리지 않은 최초의 회동인 노태우 대통령의 1992년 11월 일본 교토 방문을 양국이 협의하게 된 경위도 외교문서에 일부 공개됐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당일 일정으로 교토를 실무방문해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와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은 일명 '서해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각별한 보안 아래 추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옥 외무장관은 1992년 10월 14일 오재희 주일대사에게 보낸 친전에서 "서해사업은 11월 8일 아침 출발, 당일 저녁 귀국하는 안으로 추진키로 했으니 일본 측과 접촉해 우선 날짜를 확정하고 결과 보고 바란다"고 지시했다.
한국 측은 그해 초 미야자와 총리가 방한했을 당시 앞으로 한일 정상 간에도 격식을 차리지 않고 쉽게 회담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고, 이후 일측은 외교 경로를 통해 회담 일정을 제시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 과거사 현안으로 떠오른 초창기였다. 1990년대 초 국내 피해자들의 공개 증언 등이 도화선이 됐다.
정상회담 의제에서 현안을 언급할지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이 미묘한 입장차를 보인 정황도 공개됐다.
1992년 10월 29일 한일 과장급 의제 협의에서 일본 측은 "양국간 현안 해결을 위해 이번 방일이 이뤄졌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일반론적으로 토의되기를 간곡히 희망"했지만, 한국 측은 "군대 위안부 문제, 무역역조 문제 등 현안 존재 사실만은 간단히 언급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같은 해 2월 과장급 협의에서 한국 측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보상 문제, 교과서 기술 문제 등 응분의 조치가 수반돼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무엇인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면서도 "1965년 청구권 협정을 문제 삼을 경우 한일관계의 기본 틀을 흔든다"고 우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ki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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