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러시아를 사랑했다" 소속 기자 구금에 연일 시위하는 WSJ
간첩 혐의 에반 게르시코비치 기자, 러시아 비판기사 다수 작성
WSJ "러시아, 문명에서 멀어지고 있어… 진실 원하지 않는다"
인질교환 유력, 1986년 구금 기자 "소련이 냉전시대 운영하던 방식"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소속 기자가 냉전시대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구금되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러시아가 문명 국가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며 구금된 기자의 단독기사를 나열하고 동료 인터뷰를 싣는 등 연일 러시아를 상대로 항의하고 있다. WSJ는 러시아의 구금을 '인질 외교의 시작'으로 규정, 언론자유를 위한 석방을 요구하는 중이다. 1986년 간첩 혐의로 구금됐던 니콜라스 다닐로프 기자는 “이것이 러시아가 냉전시대에서 (국가를) 운영하던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스푸트니크 통신 등 러시아 현지언론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에반 게르시코비치(Evan Gershkovich) WSJ 기자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게 간첩 혐의로 구금됐다고 밝혔다. 구체적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지만 FSB는 “게르시코비치는 미국 지시에 따라 러시아 군산복합체에 대한 기밀 정보를 수집했다”고 주장했다.
WSJ는 혐의를 즉각 부인했다. WSJ는 30일 논평에서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 주재 외신기자들을 면밀히 감시하지만 게르시코비치는 이미 러시아에서 수년간 일했다”며 “그들이 게르시코비치를 정말 스파이라고 믿었다면 오래전 FSB가 추방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WSJ는 이번 사태를 가리켜 “러시아가 문명 국가 공동체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증거”라며 “외신기자들을 위협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으로 보인다. 게르시코비치는 러시아 경제가 쇠퇴하고 있다는 폭로기사를 쓴 지 며칠 만에 체포됐다. 크렘린은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게르시코비치 기자의 단독기사가 나열된 특별 웹페이지도 마련됐다. WSJ는 “31살의 게르시코비치는 크렘린의 전쟁 노력에 대한 특종 기사를 여럿 썼고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을 소개했으며, 러시아 국경에서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 피해를 보도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 시인 동상 앞에서 애도하는 기사와 푸틴이 고립돼 소수의 강경파들의 의견만 들어 실수했다는 기사 등 러시아 입장에선 불편한 내용의 기사가 이어졌다.
WSJ는 구금 이후 그의 전기 기사를 쓰고, 동료 인터뷰를 싣는 등 연일 러시아에 대한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WSJ는 지난달 31일 <게르시코비치는 그를 등진 나라, 러시아를 사랑했다> 기사를 통해 “소련 태생 유대인 망명자들의 아들인 그는 러시아를 사랑했다”며 숲속 텐트에서 러시아 산불을 취재한 이야기, 러시아 소수 언어를 지키기 위해 기사를 쓴 이야기 등 어머니부터 대학 동료까지 그의 일대기를 기사에 담았다. 지난 3일 올라온 5분 길이의 영상엔 10명 가량의 동료들이 그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미국 백악관이 러시아를 비난하고 각국 유력 매체와 언론단체들이 언론자유를 외치며 성명을 냈지만 당장 게르시코비치 기자가 석방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전 러시아 구금 사례처럼 인질 교환 등 협상카드로 쓰일 것이 유력하다. 미국 NBC 방송은 지난달 31일 보도에서 최근 러시아 스파이들이 유럽에서 미국 연방수사국(FBI)와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으로 줄줄이 붙잡혀 러시아 정보당국이 궁지에 몰린 것과 이번 기자 구금 사태가 관련됐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1986년 당시 기자로 활동하다가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에 간첩 혐의로 구금됐던 니콜라스 다닐로프(Nicholas Daniloff)는 지난 4일 WSJ 칼럼에서 “특파원이 러시아에 도착하는 순간 KGB는 기자 파일을 열고 항상 감시했다. 지금도 그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기자가 어디로 갔는지, 누구를 보았는지, 기자가 동성애자인지 등 그들이 필요로 할 때 기자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한다”며 “나는 미국 기밀정보를 입수하다 적발된 소련 유엔 사절단의 물리학자와 교환됐다. 몇 년 후 하버드에서 열린 공개 강연에서 공산당 총서기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내 사건에 대해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이것이 냉전시대에서 양국이 운영한 방식일 뿐이라고 인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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