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한중 수교-대만 단교'에 "韓에 큰 빚 졌다"…北 달래기는 '시큰둥'

노민호 기자 2023. 4. 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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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한중 수교로 우리나라가 대만과 단교한 것과 관련해 비공식적으로 "대단한 정치적 결단"이라며 '큰 환영' 의사를 나타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후카다 의원은 "(중국 공산당 간부들은) '한국이 대단한 정치적 결단을 해줬다. 이로써 한국에 큰 빚을 지게됐다'라고 실토했다"며 "한국과 대만의 단교가 이번 한중 수교의 가장 큰 성과임을 솔직히 인정했다"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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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문서 공개] 北 김정일 "中, 돈 때문에 공산주의 포기" 맹비난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자금성 앞 천안문 광장에 태극기가 중국 오성홍기와 함께 게양돼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중국이 한중 수교로 우리나라가 대만과 단교한 것과 관련해 비공식적으로 "대단한 정치적 결단"이라며 '큰 환영' 의사를 나타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6일 외교부가 30년 만에 공개한 외교문서를 통해서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1992년 9월3일 유병우 주일대사관 참사관은 일본 사회당의 후카다 하지메 의원과 접촉했다. 후카다 의원은 그해 8월22일~23일 북한을 방문한 데 이어 24일 중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직후였다.

이 접촉에서 유 참사관은 한중 수교 및 북일관계에 대한 중국, 북한 측 반응을 살폈다. 이에 따르면 후카다 의원은 유 참사관에게 "중국 공산당 간부들은 공식 석상에서는 한중 수교에 대해 발언을 자제하고 태연한 척했으나 식사나 주연 석상에서는 한국과 대만과의 단교에 크게 기뻐했다"라고 전했다.

후카다 의원은 "(중국 공산당 간부들은) '한국이 대단한 정치적 결단을 해줬다. 이로써 한국에 큰 빚을 지게됐다'라고 실토했다"며 "한국과 대만의 단교가 이번 한중 수교의 가장 큰 성과임을 솔직히 인정했다"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대만은 한중 수교일인 1992년 8월24일 직전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한중 수교 이전 대만은 우리 측과의 접촉에서 '한-대만 관계 지속' 의사를 요구했던 것도 이번에 외교문서 공개를 통해 확인됐다.

김종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1992년 1월26일부터 29일까지 대만 출장을 다녀와 작성한 출장 보고서에 따르면 첸푸 대만 외교부장은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북방정책을 충분히 이해하나 만약 대륙과 수교한다고 하더라도 양국 관계가 현재대로 유지되길 희망한다"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한중 수교에 대한 북한의 곤혹스러움과 분노, 이를 대하는 중국의 '태연한' 태도도 이번 문서에서 확인돼 눈길을 끌었다.

.(외교부 제공)

후카다 의원이 유 참사관에게 전한 바에 따르면 1992년 8월25일 다나베 마코토 사회당 위원장과 만난 중국 장쩌민(江澤民) 총서기는 "중북 관계는 피로 맺어진 관계"라면서도 "북한도 한중 수교라는 역사적 현실을 견뎌낼 것으로 본다"라고 언급했다.

전통적인 북중 우호를 되새기면서도 사실상 북한에게 이미 '현실을 받아들이라'라는 메시지가 전달됐음을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중국에 대한 북한의 '기대치'와는 차이가 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실제 후카다 의원은 방중 전인 1992년 8월22일부터 이틀간 먼저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용순 당시 노동당 국제부장과 회담한 내용도 전했는데, 이 자리에서 김용순 부장은 같은해 4월 양상쿤(楊尙昆) 국가주석의 방북시 "연내 한중 수교 원칙"에 대한 시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며 "북중관계는 혈맹 관계로 앞으로 계속 발전돼 나갈 것이므로 일본 사회당의 계속적 협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후카다 의원은 "한중 수교에 대해 북한 노동당 간부들은 애써 태연을 가장하려는 자세가 역력했다"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1992년 9월18일 주홍콩 한국 총영사가 일본 영사로부터 들은 내용을 정리한 문서에는 "한중 수교 이후 김정일(당시 북한의 후계자)은 장시간 내부 연설을 통해 '일부 공산주의 국가들이 돈 때문에 공산주의 원칙마저 포기하고 있다'는 등 중국을 맹렬히 비난했다고 함"이라고도 기술돼 있어 당시 북한이 느꼈던 복합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표출되기도 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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