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사형 폐지’ 길 가지만... 이웃 싱가포르는 요지부동
말레이시아가 중범죄를 저지른 이를 무조건 사형하는 ‘사형 선고 의무제(Mandatory death penalty)’ 폐지를 추진하고 나섰다. 싱가포르 등 사형 선고 의무제를 유지하는 이웃 국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싱가포르 현지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6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하원은 중범죄를 저지른 이에 대한 사형 선고 의무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4일 통과시켰다. 그간 말레이시아는 살인·마약 밀매·테러·납치 등 11개 중범죄를 저지른 이를 무조건 사형에 처하는 법을 유지했다. 이번 개정안은 이런 중범죄 처벌에 법원에 재량권을 부여해 사형 대신 최대 40년의 징역형 등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사형 선고 의무제’는 폐지되지만 법원 판단 하에 사형 선고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상원 처리와 국왕 재가 등 절차가 남았지만 정부의 의지가 강력해 사실상 입법이 확실시되는 분위기라고 한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2018년부터 사형 집행을 전면 유예하며 사형제 완전 폐지를 추진했지만, 범죄 피해 유가족 등의 반발로 사형 선고 의무제 폐지로 한발 물러선 상황이다.
말레이시아가 사형제 폐지 수순을 밟는 다는 소식은 여전히 강력하게 사형을 집행하는 싱가포르에서 화제가 됐다. 그러나 싱가포르 매체 투데이온라인은 현지 법대 교수 등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싱가포르 사형제 기조에 영향 미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싱가포르는 살인·마약 밀매·총기 사용 등 중범죄에 대해 ‘사형 선고 의무제’를 유지하고 있다. 작년에만 마약 밀매범 11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이중에는 작년 4월 사형된 IQ 69로 경계성 지능에 해당하는 말레이시아 출신 30대 마약밀매범도 포함돼 있다. 당시 유럽연합(EU)과 UN 인권 전문가 등 국제 사회가 그의 사형을 만류하고, 말레이시아 국왕이 직접 싱가포르 정부에 편지를 보내 호소하기도 했으나 싱가포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싱가포르에서 사형제를 찬성하는 여론이 반대 여론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에 말레이시아가 사형제 폐지 수순을 밟는다고 해도 싱가포르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 보고 있다. 2021년 싱가포르 내무부가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싱가포르인의 80.5%가 고의적으로 살인한 범죄자를 무조건 사형하는 사형 선고 의무제에 찬성했다. 총기 사용(71.1%)과 마약 밀매(65.6%) 등 범죄도 사형 선고 의무제 찬성이 반대 의견보다 두배 이상 높았다.
말레이시아의 이번 변화로, 싱가포르 사형 제도에 대한 국제 사회의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현지 매체는 전문가를 인용해 “싱가포르는 그런 압박에 꿈쩍도 안할 것”이라며 “사형 문제 때문에 싱가포르와 거래하기를 거부하는 국가는 지금껏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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