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 방미, 미국-대만-중국 사이 위험한 '삼각관계' 부각"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의 회동을 두고 미국, 대만과 중국 사이의 복잡하고 위태로운 '삼각관계'가 한층 선명하게 드러났다고 영국 BBC방송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차이 총통은 이날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인근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에서 매카시 하원의장을 만나 양국 간 협력을 논의했다.
매카시 의장은 이 자리에서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가 제때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는 등 양국 간 연대를 강조했다.
차이 총통은 이에 대만의 민주주의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미국이 함께 해줘서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차이 총통의 방미는 미·중 경쟁 심화로 미국 내에서 중국에 대한 적개심이 커지면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경쟁하듯 대만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BBC는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의 지난해 여름 대만 방문으로 중국이 미사일 발사 등 고강도 무력시위에 나서는 등 긴장이 고조된 바 있음에도, 공화당의 매카시 의장 역시 전임자의 선례를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은 일견 이러한 구애에 응하는 듯하면서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대만 총통이 미국 현지에서 미국 정부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형식상으로는 중남미 수교국 순방길의 '환승지'에 잠시 머무르며 비공식 면담을 하는 등 이전 방미 때와 같은 방식을 취했다.
BBC는 이를 두고 "사랑과 죽음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에 놓인 대만"이 매카시 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중국을 또다시 자극하는 대신 이러한 '환승지 외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근 수교국이 줄고 있는 대만으로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미국과 접촉하는 것을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과시할 필요가 있지만, 그 못지않게 중국과의 관계 유지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WSJ도 차이 총통의 방미가 공식적으로는 '환승' 과정에서 이뤄졌으며 이는 미국과 대만이 비공식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중국과의 약속을 지키면서 교류를 이어가기 위한 '복잡한 안무'의 하나라고 전했다.
미국-중국-대만은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미묘한 삼각관계를 이어왔다.
미국은 당시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 정부의 입장을 인정하고 중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었다. 대만과는 공식적으로는 단교했으나 비공식적으로는 우방으로서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대만과 중국은 1992년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되 그 표현은 양안이 각자 편의대로 한다'고 합의한 '92공식' 아래 갈등 요소를 임시로 봉합하고 경제무역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미·중 간 전략경쟁 본격화로 미국이 대만과의 전방위 협력을 강화하자 삼각관계를 묶어주던 '하나의 중국'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미·중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대만은 가장 위험한 발화점이 되고 있다.
WSJ은 이러한 미국-중국-대만 3국의 관계는 늘 우려 대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또한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번 차이 총통-매카시 의장의 회동으로 중국이 대만의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이 촉발되면서 미·중 관계가 더 악화일로로 곤두박질칠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은 차이잉원 총통과 매카시 의장의 이번 회동에 대해 외교부와 국방부 등 5개 조직에서 담화·성명을 쏟아내며 강하게 반발했다.
외교부는 미국과 대만의 유착에 대해 "결연하고 강력한 조치로 국가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을 수호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주미 중국대사관은 "대만을 이용해 중국을 제어하려 도모하는 자는 자기가 지른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한층 비난 수위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구축한 국제질서에 중국이 공개적으로 도전에 나서고, 미국은 새로운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해 총력전에 나서는 상황에서 대만이 양쪽 모두 가질 수 있다는 환상은 끝났다고 분석했다.
BBC도 대만의 두 '구혼자'인 미국과 중국의 사이가 1979년 수교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했으며 이는 누구나 알지만 언급하기를 꺼리는 골칫거리(elephant in the room)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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