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콘크리트의 거장’ 방한…안도 다다오 “희망 있는 건축 만들고 싶었죠”

김민호 2023. 4. 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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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도 다다오라고 합니다. 어제 오사카에서 왔습니다. 오사카, 좀 촌스러운 곳이죠. 이렇게 문화적이지 않은 곳에서 왔습니다.

안도 다다오, 한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31일 강원도 원주시의 문화예술공간 뮤지엄 산. 방한한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82)가 첫마디를 꺼내자 기자회견 참석자들 사이에 웃음보가 터졌다. 지난 50여 년간 주택이나 교회처럼 작은 공간부터 미술관 등 대형 시설에 이르기까지 건축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이지만 첫인사는 그의 작품들처럼 간결했다. 빛과 콘크리트를 활용한 절제된 건축, 동양적 감성과 서양의 기하학적 구성이 도드라진 명상적 공간으로 유명한 이 거장의 작업들을 한눈에 돌아보는 전시 ‘안도 타다오-청춘’이 7월 30일까지 미술관 겸 박물관인 뮤지엄 산에서 열린다. 안도의 건축물을 소개하는 전시는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열렸지만 그가 직접 설계한 공간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장에서는 그의 건축물들의 모형과 설계 과정에서 그린 원본 드로잉, 스케치 등 전시물 25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지난달 31일 강원 원주시 뮤지엄 산(SAN)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안도 다다오. 연합뉴스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미술관 겸 박물관 뮤지엄 산(SAN) 입구. 지난달 31일 개나리와 진달래가 활짝 펴 봄 정취를 뽐내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권투 선수에서 건축가로

안도는 그의 작품들만큼이나 독특한 이력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941년 오사카의 서민 지역에서 태어나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가 고교 재학 중에 처음 선택한 직업은 프로권투 선수였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했기 때문이다. 그는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후 건축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느낀 안도는 유럽과 미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르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루이스 칸과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직접 본다. 독학과 여행으로 건축을 배운 셈이다. 그는 28세에 고향인 오사카에 건축사무소를 설립한다.

“저는 계속 절망적 인생입니다. 왜냐면 저는 대학을 가지 않았어요. 전문학교도 가지 않았어요. 그리고 암에 걸렸었거든요. 지구상에서 저처럼 장기 5개를 전부 적출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안도 다다오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건축물인 스미요시-아즈마 주택 정면. 뮤지엄 산 제공
스미요시-아즈마 주택의 구조. 두 방 사이에 천장이 뚫린 중정이 설계돼 있다. 뮤지엄 산 제공

자연과 빛을 끌어들인 건축

학력주의가 뿌리 깊은 일본에서 독학자가 기회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도는 1976년 완공된 오사카의 스미요시 주택-아즈마 주택을 계기로 세계적 명성을 얻는다. 오사카 주거 밀집 지역에 붙어 있던 집 세 채 중 한 채를 콘크리트 중정 주택으로 재건한 것이다. 폭이 좁은 직사각형 부지의 양 끝에 방을 하나씩 둔 스미요시 주택은 입구가 난 도로 쪽에는 창문이 전혀 없다. 무채색 노출 콘크리트 표면에 검은 입구가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두 방 사이에 천장이 없는 중정이 뚫려 있어서 건물 안으로 빛을 끌어들인다. 방에서 방으로 건너가려면 비를 맞아야 할 때도 있다. 빛과 노출 콘크리트,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 명상적 공간이라는 안도의 특성이 모두 담긴 주택이다. 비평가 아사다 아키라는 이 집을 두고 ‘안도의 첫 매니페스토(성명서)’라고 평가했다. 전시장에서는 주택의 사진과 함께 독특한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모형이 전시됐다.

'안도 타다오-청춘'이 열리는 뮤지엄 산 전시실 가운데 하나. 전시실마다 각종 스케치와 모형들이 가득하다. 뮤지엄 산 제공

종교 건물로도 명성

일본 이바라키시 교외에 위치한 ‘빛의 교회’(1987~1989년)는 안도가 자연광을 이용해 성스러운 공간을 만들어낸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노출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예배당에서는 별다른 장식적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 십자가조차 달려있지 않다. 대신 신자들이 바라보는 예배당 정면 벽에 좁다란 틈이 십자가 형태로 뚫려 있다. 자연광은 그 틈을 통해서 캄캄한 예배당 안쪽에 쏟아진다. 빛과 그림자가 십자가를 대신하는 설계다.

안도가 한국에도 건축한 9개의 건축물 중에도 교회가 있다. 경기 여주시의 숲 안쪽에 위치한 ‘마음의 교회’는 구덩이처럼 움푹 파인 땅에 지어졌다. 이 때문에 남서쪽에서 접근하면 지면과 같은 높이에 위치한 지붕만 보인다. 그러나 대예배당 안쪽으로는 땅 위에서 빛이 들어온다. 이 밖에 유네스코 기념사업회가 1995년 설립 50주년을 맞이해 안도에게 설계를 의뢰한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명상공간’(1994~1995년) 역시 자연광을 조명으로 활용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빛의 교회' 내부. 미츠오 마츠오카 뮤지엄 산 제공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교회 가운데 하나인 '물의 교회' 내부. 일본 홋카이도 유후쓰군에 있다. 요시오 시라토리 뮤지엄 산 제공

노출 콘크리트의 재발견

무엇보다 안도는 노출 콘크리트의 대가로 유명하다. 안도는 시각적으로 균질하게 보이는 소재인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함으로써 건축물에 순수하고 깔끔한 인상을 불어넣는다. 안도에게 노출 콘크리트는 빛과 그림자를 절묘하게 배치하도록 도와주는 밑바탕이자 도화지인 셈. 콘크리트가 어디서나 구하기 쉬운 원초적 재료라는 점도 안도가 노출 콘크리트를 사랑한 중요한 이유다.

“건축은 자연과 잘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콘크리트는 1897년에 파리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든지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재료라고 할 수 있죠. 저는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그런 재료로 아무나 만들 수 없는 그런 건축을 하고 싶었습니다. (중략) 여러분들 위에서 빛이 들어오는데 저는 그 빛을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희망을 지탱해 주는 것이 바로 콘크리트죠.”

안도 다다오의 또 다른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일본 고베시 효고현의 롯코 집합주택I, II, III. 미츠오 마츠오카 뮤지엄 산 제공

역사·주변 환경과 조화로운 건축

안도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또 다른 이유는 그의 건축이 독창적이면서도 주변 환경, 역사적 맥락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한 장점이 나타난 대표작이 이탈리아 베니스에 세워진 ‘푼타 델라 도가나’(2006~2009년)다. 베네치아 세관의 15세기 외관을 그대로 살리면서 내부에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만들었다. 프랑스 파리의 오래된 곡물거래소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브르스 드 코메르스’(2016~2021년) 프로젝트 역시 건물의 원형 홀 내부에 높이 10m, 직경 30m의 콘크리트 원통을 세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들의 모형 역시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안도 다다오는 파리 중앙시장이 있던 자리에 인접한 옛 곡물거래소를 안쪽에 콘크리트 원통을 삽입해 미술관(브르스 드 코메르스 프로젝트)으로 개조했다. 유지 오노 뮤지엄 산 제공
1918년 건축된 일본 나카노시마 공회당의 개축 계획안. 안도 다다오의 이 제안(1989년)은 채택되지 않았지만 옛 건물 내부에 새로운 공간을 삽입하는 아이디어는 훗날 '브르스 드 코메르스' 등의 건물로 현실화된다. 뮤지엄 산 제공
미국에 건축된 포트워스 현대미술관(2012년). 안도 다다오는 건축물의 일부로 물을 활용하기도 한다. 미츠오 마츠오카 뮤지엄 산 제공

”살아 있는 동안은 모두가 청춘”

이번 전시부터 뮤지엄 산은 입구에 사람만 한 푸른 사과 하나를 영구적으로 놓아두기로 했다. 안도가 미국 시인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에서 영감을 받아서 제작한 조각품 ‘청춘’ 3점 가운데 하나다. 이 조각이 일본 바깥에 설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각에는 ‘살아 있는 동안은 모두 청춘’이라는 안도의 생각이 반영돼 있다. 그 자신이 무수한 실패를 딛고 일어섰기에 가능한 발상이다. 당장 푼타 델라 도가나에 도입된 방식부터가 안도가 1989년 건축주에게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것이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자, 안도에게 그는 청춘이다.

“여러분들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하고요. 그를 통해서 희망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희망이 있는 건축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중략)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실은 학력주의 사회입니다. 학력이 없는 저 같은 사람도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고 싶습니다. 여기 보면 서울대 나오신 분들도 계실 거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찬스(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찬스를 본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분들 밖에 있는 파란 사과 많이 만지시길 바랍니다.(웃음)”

안도 다다오가 뮤지엄 산 입구에 설치된 자신의 조각 '청춘' 앞에 섰다. 뮤지엄 산 제공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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