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강제성 첫 인정’ 고노담화 이끈 ‘노태우·미야자와’ 한일정상회담… 극비리 추진 ‘서해사업’ 성과

김유진 기자 2023. 4. 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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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학순 할머니(1997년 사망)의 일본군 위안부 실상 증언(1991년 8월 14일) 이후 한·일 관계가 요동치던 1992년 11월, 정부가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방일을 '서해사업'이라는 제목하에 비밀리에 추진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악화된 한·일 관계, 노태우 정부의 임기 말 상황 등에 부정적인 여론을 고려하면서도 일본과의 소통 유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극비리에 추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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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외교문서 36만쪽 공개
김학순 할머니 ‘위안부 증언’뒤
관계 악화 속 노태우 방일 추진
정부 “보약 먹으면 병 잘 낫듯이
정상외교로 현안타결” 정면돌파
일본정부 이듬해 전향적 담화 발표

고 김학순 할머니(1997년 사망)의 일본군 위안부 실상 증언(1991년 8월 14일) 이후 한·일 관계가 요동치던 1992년 11월, 정부가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방일을 ‘서해사업’이라는 제목하에 비밀리에 추진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악화된 한·일 관계, 노태우 정부의 임기 말 상황 등에 부정적인 여론을 고려하면서도 일본과의 소통 유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극비리에 추진했던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방일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인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일본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처음 인정한 ‘고노 담화’를 끌어낸 주요 계기가 됐다.

외교부는 6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전체 2361권·36만여 쪽 분량의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공개 문서에 따르면 1992년 10월 14일 이상옥 외교부 장관은 ‘서해사업’이라는 제목의 전보(2급 비밀)를 통해 오재희 주일본 대사에게 노태우 대통령 방일 추진 계획과 함께 일본 측과 방일 날짜 확정 등 후속조치를 지시했다. ‘서해사업’은 한 달 뒤인 11월 8일 교토(京都)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총리와 만나 정상회담을 가진 뒤 종료됐다. 당시 임기 말이었던 노태우 대통령의 격식을 파괴한 방일에 국내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정부는 “한·일 관계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한 차례의 정상회담으로 손쉽게 해결될 것을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며 격식 없이 쉽게 자주 만나는 새로운 정상외교의 관행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소통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교토 회담에도 위안부 문제 등 현안 해결의 성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는 “보약을 먹으면 몸이 튼튼하게 되고 병도 잘 낫는 것처럼 정상외교를 통해 양국 우호 관계를 튼튼히 하고 현안 문제 타결의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서해사업의 성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김영삼 정부 출범 뒤인 1993년 8월 일본은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이어 1994년에는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 23종 중 22종에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술이 포함되면서 한·일 관계 진전이 이어졌다.

한편, 전두환 정권이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상황에서 미국의 지지를 얻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한 정황도 이번 외교문서 공개를 통해 확인됐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1987년 4월 직선제 개헌 논의를 중단한다는 내용의 호헌조치를 발표한 데 대해 미국이 비호의적 태도를 보이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친서를 5월에 보냈다. 레이건 대통령은 한 달이 넘은 6월 19일에야 정치범 석방을 강조하고 “언론의 자유와 TV 및 라디오의 균형된 보도는 자유선거에 대한 당신의 공약을 실천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내용의 답서를 보내왔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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