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명이 36시간 혈투”...불 뿜는 돌산 누빈 산불진화 영웅들

2023. 4. 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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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특수진화대 대원 인터뷰
인왕산 화재 바위산·강풍에 고전
헬기 닿지않는 구역·시간대 커버
현재 인력으로 산불 대응 역부족
북부지방청 서울국유림관리소 소속 산불재난 특수진화대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국유림관리소 제공]

“3일 오후 4시 21명이 인왕산으로 출동했습니다. 밤새 불을 끄고 다음날 오후 1시쯤 인왕산 산불이 마무리되니, 이번에는 경기도 남양주시 예봉산에 불이 났더라고요. 저녁만 간단히 먹고 또 새벽 1시까지 불을 껐습니다.”

김영준(35) 산불재난 특수진화대원은 5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화재로 특수진화대원들은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이틀 연속 강행군을 펼쳤다. 3일 하루에만 35곳에서 산불이 났다.

갈수록 건조해지는 한국의 봄, 유례없는 동시다발 대형 산불로 산불 재난 특수진화대의 어깨가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2016년 20명 시범 사업으로 출발했다. 2023년 전국 산불 재난 특수진화대는 총 435명. 7년 만에 기후위기 시대 ‘산불 재난’을 책임지는 핵심 인력이 됐다. ‘산불 영웅’의 입으로 산불 재난 현실과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3일, 북부지방산림청 서울국유림관리소에서 근무하는 23명 대원 중 21명이 인왕산에 올랐다. 40년 넘게 인왕산 코앞에서 산 개미마을 주민들도 처음 보는 대형 산불이었다. 하지만 대원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큰불이 날 수 있다는걸 예감하고 있었다. 김 대원은 “올해 들어 비가 너무 적게 왔다. 낙엽 등 산에 있는 ‘화재 연료’들의 건조함이 극에 달하면서 3월 중순 경남 하동에서부터 점차 산불이 올라오는 추세였다”며 “최근 산불들은 지구 온난화와 연관이 있다”고 짚었다. 3월 말에는 산불이 경기도를 덮쳤다. 그는 “3월 26~27일은 인천 강화군 마니산, 3월 30~31일은 경기도 포천 산불 현장에 투입됐다”고 덧붙였다. 4월 3~4일 서울 인왕산, 경기도 남양주 팔당까지 더하면 최근 일주일 동안 무려 4곳의 현장에 투입된 것이다.

서울국유림관리소 대원들은 서울은 물론 경기 북부, 인천까지 관할하는 ‘산불 베테랑’이다. 이들에게도 인왕산 진화 작업은 쉽지 않았다. 김 대원은 “인왕산 주불 발생지 산세가 가팔랐다. 바위산이다보니 미끄러워 특히 위험했고 불로 달궈진 바위를 헤집고 다니는 것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강풍도 문제였다. 그는 “겉으로 보기 멀쩡한 나무 기둥과 뿌리 안에도 불씨가 들어있다. 바람이 불면서 나무 안 불씨가 순식간에 화염으로 번졌다”며 “연기가 바람에 날리니 시야 확보가 어려웠고 호흡기에도 위험해 접근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장비도 부족했다. 산불 진화를 위한 헬기들은 용량에 따라 초대형 헬기(8000ℓ), 대형 헬기(3000ℓ) 등으로 나뉜다. 김 대원은 “전국에서 동시에 산불이 발생하니 헬기도 분산됐다. 초대형 산불 진화 헬기가 곧바로 출동해 집중적으로 진화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도 어려움을 키웠다”고 말했다.

특수진화대 임무의 시작은 다름 아닌 등산. 산불 진화차량이 산 입구에 도착하면 진화용 조끼와 헬멧을 착용하고 호스, 무전기, 방염텐트 등 15㎏이 거뜬히 넘는 장비를 들고 입산한다. 김 대원은 “진화 차량에 경량 호스를 줄줄이 연결해 곳곳에 물을 뿌린다. 헬기가 미처 끄지 못한 구석구석 불을 잡는다”며 “동시에 ‘불갈퀴’로 저지선을 구축한다. 낙엽이 앉은 땅을 헤집어 불이 탈 연료를 없애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밤은 특수진화대의 시간이다. 소방 헬기가 뜰 수 없는 시간, 진화와 확산 방지 모두 사람의 몫이다.

김 대원은 이번 봄 산불을 겪으며 인력과 장비 확충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김 대원은 “산불 현장에 가면 보이는 경찰, 공무원들을 보며 인력 부분에서 차이가 크다는걸 실감한다”며 “여러 곳에서 불이 나니 대체 인원이 사실상 없었다. 인왕산에서 24시간을 진화하고 팔당에 갔을 때는 산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부담이 됐다”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환경이라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국화 되는 산불에 대응하기에 435명 진화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 최근 충남 홍성 지역 산불에 강원도 강릉에 근무하는 진화대가 지원을 가기도 했다. 2016년 출범 이후 거의 교체되지 않은 장비도 문제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진화차다. 김 대원은 “지금은 물 800ℓ를 담은 진화 차량에 구경 13㎜ 호스를 연결해 불을 끈다. 산이 깊을수록 호스 연결이 길어지고 수압이 약해져 진압이 어려워진다”며 “고성능 진화차는 물 용량도 3000ℓ로 거의 헬기 수준인데다 호스 구경이 25㎜로 수압이 훨씬 강력하다”고 말했다.

특수진화대에 대한 국민의 관심 당부도 잊지 않았다. 김 대원은 “봄가을 산불을 끄고, 여름 장마철에는 산사태 지원에도 동원되는 등 불이 나지 않는 시즌에도 필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다. 꼭 필요한 직업이고 인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림 헌장의 문구를 소개했다. 그는 “‘꿈과 미래가 있는 민족만이 숲을 지키고 가꾼다’는 문장을 좋아한다. 산불재난 현장에 고생하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최일선에서 항상 활약하는 대한민국 산불재난 특수진화대에 많은 격려 부탁드린다”고 말하며 웃었다. 박지영 기자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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