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문 지나 푸른 사과...팔순 안도 다다오, 청춘의 노래
암으로 장기 5개 적출하고도 활발한 현역활동
새로운 해석·독창적 건축 ‘50년 건축사’ 한눈에
팔순을 넘긴 거장은 아직도 청춘을 노래한다. 2014년 재발한 암 때문에 장기를 5개나 떼어내고도 삶의 의지를 불태운다. “나이가 어려야만 청춘이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이 청춘이다”
안도 다다오는 청년시절 프로 복싱선수였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프랑스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의 책을 본 뒤 건축으로 전향했다. 독학으로 공부해 지난 1969년 건축사무소를 시작했다. 시작부터 철저하게 아웃사이더였던 그는 빛과 그림자, 물과 돌, 나무, 노출 콘크리트를 건축언어로 사용하며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했다. 1995년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면서 글로벌 건축 거장으로 도약했다. 이제는 그 누구도 그의 작품을 ‘비전공자의 어설픈 작품’이라고 비꼬지 않는다.
▶안도, ‘청사과’로 청춘을 표현=안도 다다오의 건축 세계를 돌아보는 전시가 자신이 직접 건축한 미술관에서 열렸다.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은 지난 1일부터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안도 다다오의 건축전을 개최했다. 전시 주제는 놀랍게도 ‘청춘’이다.
10년 전 뮤지엄 산을 건축할 당시 “살아갈 힘을 되찾는 장소로 보여주고 싶었다”던 안도는 이번엔 청사과를 제시했다. 익어가며 붉어지는 일반적인 사과와 달리 청사과는 완숙해도 여전히 푸르다. 사무엘 울만이 자신의 시 ‘청춘’에서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한 정신이다’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나이가 들어도 스러지지 않는 게 청춘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뮤지엄 내 워터 가든(Water Garden)을 지나 미술관으로 들어서는 정문에 높이 3m의 청사과가 설치됐다. 그는 “청사과를 한 번 만지면 1년 더 오래산다”며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아마) 나이드신 분들만 오실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올해로 81세, 암 때문에 주요 내장 5개를 적출했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하루 만 보를 걷고, 한 끼를 30분에 걸쳐서 천천히 먹고, 한 두 시간은 공부에 몰두한다. “절망에 머무르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계속 희망을 찾아가기 위해” 그가 하는 노력이다. 젊은이들과 교감도 그에겐 즐거움이다. 지난달 30일 서울대에서 열린 강연엔 130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학생들이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는 그는 예정시간인 1시간을 넘겨 1시간 15분 가량 학생들과 소통했다.
▶‘뮤지엄 산=이인희 고문’=뮤지엄 산은 그에게 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으로 기억된다. ‘전 세계에 없는 것을 만들어 달라’는 이 고문의 요청에 그는 미술관으로 들어오는 길에 조각을 관문처럼 세우고, 그 아래를 통과해 들어오는 안을 제시했다. 이 고문은 매우 흡족해 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서울에서 2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미술관을 짓겠다고 해서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사람들이 올까 싶었다”며 “이 고문이 정말 용감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예상과 달리 뮤지엄 산은 요즘 연간 20만명이 찾는 지역 명소가 됐다. 자연 속에 안착한 안도 다다오의 건축과 미술품의 콜라보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그는 “이 고문이 ‘사람들이 오게 하는 건 우리 역할’이라고 했다”며 “이 미술관이 이만큼 성장한 데에는 그의 의욕과 파워에 힘입은 것이라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뮤지엄 산은 크게 4개의 건물이 사각, 삼각, 원형의 공간들로 연결된 구조다. 대지와 하늘을 사람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안도의 철학을 담았다. 안도 건축 언어의 핵심으로 꼽히는 노출 콘크리트와 물, 빛, 바람, 돌이 어우러진다. 돌은 이 지역에서 나온 돌을 사용했다.
미술관은 ‘소통을 위한 단절’(Disconnect to connect)을 슬로건으로 종이와 아날로그를 통한 삶 속의 여유를 체감하고 자연과 예술 속에서 휴식을 선물하고자 하는 컨셉을 담고 있다. 그는 “청춘을 느끼는 방법은 자연 속에 있다”며 “물이 있고 푸르게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돌벽 담을 넘어가면 미술품이 있다. 그곳엔 우리가 기존에 모르던 세계가 펼쳐진다”고 말했다.
▶안도의 ‘50년 건축사’ 총망라=건축전은 안도의 50년 건축사를 총망라한다. 1969년 사무소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최근까지 작업이 모두 대상이다. 초기 작업인 ‘도시 게릴라 주택 프로젝트’는 빛과 기하학이라는 안도의 근원적 주제의 시작을 보여준다. 일본 전통 가옥의 사이(間)를 현대화 하는 도시건축 작법이나 장소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 독창적 건축은 안도 건축의 대표적 특징이다.
공공 건축에서는 지역의 공동체와 공유하는 풍경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어린이들의 보행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차로를 모두 인도로 바꾸어버린 ‘나카노시마 어린이 책 숲 도서관’이 그 대표적인 예다.
안도 다다오의 최장 프로젝트인 나오시마 프로젝트도 선보인다. 1980년대 말 안도는 세토 내해의 작은 섬 나오시마의 예술 허브 만들기 작업에 착수했다. 지금은 매년 40만명 넘는 인원이 이 섬을 찾는다. 바다를 바라보는 방파제의 끝에 설치된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이우환 미술관, 베세네 하우스 뮤지엄, 지중미술관, 밸리 갤러리 등 그는 섬 자체를 미술관으로 변화시켰다.
하이라이트는 피노 케링그룹 회장의 커미션 건축물이다. 이탈리아 베니스의 팔라초 그라씨(2013), 푼타 델라 도가나(2009)를 비롯 프랑스 파리의 브르스 드 코메르스(2021) 등 모두 수 백년 된 건축물을 리모델링 한 작업들이다. 건축을 개별이 아닌 다양한 상황이 입체적으로 개입된 문맥으로 접근하는 안도의 스타일은 본래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파격적인 공간 개입을 선보인다. 자신 스스로를 건축 역사를 이어가는 일부분으로 생각하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다.
▶좋은 건축물의 필수 조건은 ‘순한 클라이언트’?!=안도는 좋은 건축물이 나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클라이언트라고 꼬집었다. 클라이언트가 고집을 덜 부려야 창의적인 공간이 나온다는 의미일게다.
피노의 커미션 건축을 할 때 그는 이전에 적용하지 못했던 실린더 형태의 원형과 정육면체 모양의 전시 공간을 현실화했다. 아마 그에게 피노는 고집을 덜 부린, 좋은 클라이언트였으리라. “재미있는 것일 수록 사람들이 초반엔 거절한다”고 뼈있는 농담을 한 안도는 “계속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면 결국 실현된다. 그러려면 오래 살아야 할 것”이라며 웃었다.
100세 시대, 안도는 지적·신체적 체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항상 새로운 걸 찾아야 하고, 그를 통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희망이 있는 건축을 만들고 싶었다”며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찾아 나가고자 한다. (내가) 희망을 유지해 나가는 본보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몸이 아픈데다 학력도 없는 이’ 라고 낮추는 안도 다다오의 당부다.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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