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갚고 또 빌려, 가정은 파탄 지경"…'대출 족쇄' 묶인 자영업자[르포]
"밀린 세금부터 내야 대출 심사라도 받죠."
서울시 영등포구 서여의도에서 32년간 국밥집을 운영해온 홍모씨는 자영업자 대출금 얘기가 나오자 기자에게 일단 자리에 앉으라며 의자부터 내줬다. 그는 "대출금 때문에 이렇게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며 "매달 고정비는 나가는데 매출은 줄고 있어 대출금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홍씨는 매달 고정비용으로 임대료, 관리비, 인건비, 대출이자 등으로 2000만원씩 지출한다. 제법 장사가 잘 되는 상권이어서 다른 곳에 비해 매출이 나오는 편이지만 여전히 고정비용을 벌기에도 벅차다. 그는 최근 이자부담 낮추기 위해 정부 지원금을 1000만원 받았는데 이중 절반을 세금 내는데 썼다고 했다. 홍씨는 "현상유지를 위해선 적어도 2000만원이 매달 생겨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출을 받지 않을 수 없다"며 "미납 세금이 있으면 대출금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세금부터 갚는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마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조모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정부지원대출을 2번, 개인신용대출을 1번 받아 모두 7500만원의 빚이 쌓여 있는데 이자율이 2~5%대에서 3~8%대로 뛰면서 매달 원리금 포함 수백만원의 돈을 갚고 있다. 조씨는 "이자부담을 안고서라도 대출을 받는 것은 고정지출 때문"이라며 "인건비로 월 1000만원 넘게 나가고, 부가가치세는 반년마다 1000만원씩 납부한다"고 토로했다.
종로에서 15년째 고깃집을 운영하는 주모씨도 7000만원의 대출이 막막하기만 하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려고 대출을 받았는데 아직 갚을 여력이 생기지 않아서다. 그는 직원 월급과 임대료가 몇달치 밀려 있다고 했다. 주씨는 "마음 같아선 주말에도 일하고 싶지만, 직장인 상대로 하는 상권이다보니 문을 열어도 오는 사람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건대 상권과 성동구에서 술집을 각각 운영했던 김모씨는 2년전 성동구 술집을 정리했다. 권리금이라도 받고 적자를 메우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매달 500만원씩 나는 적자를 감당하기 벅찼다. 저축한 돈과 대출금을 포함해 1억3000만원으로 적자를 메우면서 지금까지 버텼다. 40대인 김씨는 "월 수입이 생기면 어떻게 쓸 지 표로 정리하는데 대출금 상환, 인건비, 재료비 등 빼고 나면 내가 가져갈 돈이 없다"며 "아직 미혼이라 돈이 들어갈게 없는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또 대출받아야 생활이 될 듯 하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 상권으로 꼽히는 강남역도 한파를 피하진 못했다. 곳곳에 임대문의가 붙은 공실 상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강남 상권 수요는 꾸준하다보니 공실 기간이 길지 않다는게 현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현지에서 상가 중개업을 하는 박모씨는 "강남은 다른 곳과 달리 공실이 많아도 금방금방 찬다"며 "그러다보니 시세가 올라 임대료를 못버티고 나가는 자영업자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매달 내는 이자에 숨이 막히고 힘들게 일하는데 앞이 안보입니다. 62세란 적지않은 나이에 몸은 여기저기 안아픈데가 없는데 부채가 너무 많아 폐업은 꿈도 못꾸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자는 잠에 갈수 있다면 (좋으련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 생각하니 이마저도 안되는 일이겠지요."(부산에서 음식·숙박업 하는 B씨)
지난달 소상공인연합회가 소상공인 14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상공인 금융 실태조사'에선 이런 사연들이 구구절절하게 전해졌다. 여행사를 하다 3년간 택배 일을 하며 대출받아 연명하고 있는 경기도 사업자, 갚아야 할 대출금이 많아 급하게 높은 금리로 신규대출을 받고 있지만 막막하다는 경남의 음식점 사업자, 영업도 안되는데 코로나 대출 만기가 도래해 원금을 한꺼번에 갚으라고 하니 죽을맛이라는 경기도 기타업종 사업자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 적자를 기록한 소상공인은 36.2%다. 월 평균 200만원 이하로 번다는 사업장 31.1%를 합하면 자영업자 3명중 2명은 최저임금(월 201만원)에도 못미치는 수입으로 살고 있단 뜻이다.
저금리 정책자금의 인기는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3일 접수를 시작한 대리대출(소진공 기금을 활용해 은행 등에서 심사하는 대출) 청년고용연계자금과 장애인기업지원자금, 위기지역지원자금 2분기 분도 모두 당일 마감됐다. 마찬가지로 2% 고정금리 적용을 받는 상품이다. 3개 자금의 올해 책정된 규모는 2000억원으로 이미 절반 넘게 집행됐다.
자영업자의 빚내서 빚갚는 이른바 '빚 돌려막기'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의 '자영업자 대출현황'을 보면 지난해말 자영업자 대출잔액은 1020조원으로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 대출자의 56.4%인 173만명이 3개 이상의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로 대출잔액의 70.6%(720조3000억원)를 차지한다. 기준금리가 2021년 8월 0.5%에서 현재 3.5%로 오르면서 다중채무자의 이자 부담은 연평균 908만원이 늘어났다.
자영업을 비롯한 개인 대출 부담이 심각해지자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달 13일부터 '자영업자·소상공인 저금리 대환 프로그램'을 개편해 개인사업자와 소기업까지 저금리 대출로 전환해주고 대환한도도 2배 늘어난 최대 2억원까지 확대했다. 또 은행권을 압박해 시중은행 금리인하를 이끌어낸데 이어 내수활성화 대책을 통해 소비 확대를 유도 중이다.
다만 소상공인 단체들은 금리인하가 신규대출에만 적용되는 등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고 자영업자 맞춤형 대책이 빠진 것은 아쉽다는 반응이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소상공인이 지금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응급처방의 부재가 아쉽다"며 "골목상권 활력과 소상공인 경영여건 개선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온누리상품권 사용처 확대 등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영호 기자 tellme@mt.co.kr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유예림 기자 yesr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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