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 공급 부족에 공사현장 ‘몸살’... “원자재 수급 불균형, 지체상금 부과 제외해달라”
건설업계 “정부, 전향적 자세로 나서야”
서울시 광진구 구의2동 복합청사 건립현장. 오래된 구의2동주민센터가 자리잡고 있던 이곳은 오는 8월까지 도서관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복합청사로 거듭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레미콘 물량 부족으로 공기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당초 건설사가 중소 레미콘사에서 레미콘을 납품 했지만, 물량 부족으로 유진기업에 추가납품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곳도 물량이 부족해 삼표그룹에도 요청한 상태다. 공사 현장 사정을 잘 아는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요즘 레미콘 물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공사현장이 많은데 여기가 유독 더 그렇다”면서 “공기를 맞추기엔 역부족”이라고 했다.
건설업계가 최근 레미콘 공급 부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시멘트업계가 내수로 우선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대란 사태’까지 확산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다만 시멘트 수급 불균형에 따른 레미콘 부족 여파로 건설현장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정부 차원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구의2동 복합청사 건립현장 공사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우선 겨울철 이상고온과 작년 두 차례의 화물연대 파업으로 레미콘 수요가 한꺼번에 몰린 탓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날씨가 너무 빨리 따뜻해지면서 타설 작업을 서둘러 벌인 공사 현장이 많았다”며 “여기에 화물연대 파업까지 겹치면서 공기가 늦어진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공사를 서둘렀다”고 설명했다.
지역적 특성도 한 몫했다. 해당 공사현장은 작년 말, 성수동 레미콘 공장이 폐쇄한데 따른 타격을 그대로 받았다. 이곳은 현재 레미콘을 동서울공장에서 납품받는데 거리가 25~30㎞ 정도 떨어져 있다. 사정을 잘 아는 한 업계 관계자는 “레미콘은 통상 90분내에 타설을 마쳐야 하는데 위치가 서울 시내다 보니 차량으로 들어갔다 나오는게 쉽지 않다. 레미콘 차량은 운송 한번 더 하는 것 자체가 비용”이라며 “레미콘 업계 입장에서 보면 가뜩이나 물량이 부족한데다 위치상으로도 불리한 위치에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작년 7월, 레미콘 제조사와 운송 차주들이 24.5% 운임 인상에 합의했다. 우려했던 건설 현장의 올스톱 사태는 피했지만, 차주들이 요구한 운임 인상 비용이 그대로 반영되면서 전반적인 레미콘 공급 가격이 올랐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 시내는 회전 수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회전당 6만원을 더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해당 공사 현장이 ‘관급 공사’라는 점도 민간 공사보다 상대적으로 공기가 더 늦춰지는 이유 중 하나로 언급된다. 관급 공사는 물량의 80%를 중소 레미콘사가 가져가는데, 각 회사에서 레미콘 가격을 공개하면 관급에서 이를 보고 구매하는 방식이 된다. 그러다보니 관급공사는 사실상 후순위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중소 건설사들은 소화할 수 있는 물량에 한계가 있다 보니 만약 큰 공사현장이 들어오면 민간을 우선 조금 더 보내고 관급은 조금 뒤로 잡아놓는지 하는 방식”이라고 귀띔했다.
반면 시멘트 업계는 ‘시멘트 수급 대란’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올해 1~3월(1분기) 시멘트 생산량은 161만톤(t)으로 수요량 166만t에 비해 5만t 부족한 상황이다. 하지만 재고량이 30만~33만t에 달하는 만큼 공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배상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내수로 우선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공식 밝혔다.
국내 주요 시멘트 업체가 회원인 시멘트협회는 날 입장문을 통해 “해외 수요처와 기 계약한 수출(1~2분기 동안 약 25만t 이상)을 연기해 계약 미이행에 따른 배상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내수로 우선 공급하는 등 시멘트 수급불안을 조속히 해소하는데 주력하겠다”면서 “레미콘, 건설업계 등 수요처와 상생발전의 입장을 견지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시멘트를 구매해서 레미콘을 제조하는 레미콘 업계의 ‘분배 문제’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입장도 전했다.
건설업계 전체 이익을 대변하는 대한건설협회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에 따르면 지체상금(예상보다 공사가 늦어져 발주처에 내는 벌금) 규정에 원자재 수급불균형이 수급인의 책임없는 사유에 해당하는지 명확하지 않아 원자재 수급 문제로 인한 공사지연시 분쟁의 소지가 많은 편이다. 즉 시멘트 공급 부족과 같은 자재수급 불안으로 공기가 지연될 경우, 지체상금 부과를 제외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해 달라는 것이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노조의 불법적 행위로 공사가 중단되는 상황 뿐만 아니라 자재나 시멘트 등 공급 불균형에 따르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표준계약서에 반영돼야 한다”면서 “법이나 시행령 개정이 아니고 국토교통부 고시에 따른 지침이라 개정도 어렵지 않다. 정부가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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