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딜레마]④빛이 되지도, 우리도 아닌…
故 김정태 행장이 지켜낸 '대등 합병' 인사 원칙
前 황영기 회장이 꼽은 제일 과제도 인사 정책
[아이뉴스24 김병수 기자] 우리금융을 괴롭히는 가장 큰 딜레마는 계파 갈등으로 불리는 인사 문제다. 사실 외부인은 이 문제와 관련해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알아도 문제다. 그만큼 잡설이 외부로 흘러 다닌다는 얘기여서 그렇다. 조직의 내밀한 결정이 인사인데, 그렇게 말이 많으면 조직이 컨트롤되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25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한빛은행 공채로 입행한 직원들은 이미 본부 부장, 영업점장 등 소속 장급으로 사실상 우리은행을 이끌고 있다. 이들에게 상업 채널, 한일 채널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도 그룹에선 인사 때마다 잡음이 생긴다. 공적자금을 받은 원죄로 경영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관료 집단까지 뒤엉켜, 문제해결보단 주고받기식 봉합에 그친 결과다.
옛 국민·주택은행 합병(2001년 11월 1일)을 밀어붙인 故 김정태 행장의 일화다. 기자들과 격의 없는 소통으로 유명했던 김 행장은 당시에도 시끄러웠던 한빛은행의 인사 잡음과 관련해 "합병 후 10년간 양 은행 출신 중에선 임원을 뽑지 말아야 한다"는 충격적인 답을 내놨다. 한 번은 국민은행 월례 방송 조회에서 고위 인사로부터 인사 청탁 전화를 받았다고 공개하고, 그 자리에서 관련 직원의 징계를 지시했다. 그렇게 스스로 정한 인사 원칙을 지켜냈다.
김 행장은 자신이 뱉은 말을 합병 국민은행에서도 철저히 실행에 옮겼다. 국민·주택 출신은 주요 임원으로 발탁하지 않고, 외부에서 인물을 수혈했다. 그때 픽업한 대표 인물이 현재의 윤종규 회장이다. 김 행장은 이후에도 팽팽한 두 세력보단 국민은행이 흡수합병했던 장기신용은행 출신을 발탁하는 경향을 보였다. 현재 허인 부회장(전 은행장)과 김기환 KB손해보험 사장 등이 옛 장은 출신이다.
감독 당국이 2004년 9월 국민은행의 국민카드 흡수합병 회계처리를 문제 삼아 김 행장과 윤종규 당시 CFO를 징계하면서 이들은 쫓겨났다. 이후는 KB금융의 혼란기다. 관치의 손이 뻗친 KB금융에서 CEO들이 잇따라 징계로 낙마하고, 전직 관료들과 반관(半官)들의 놀이터가 됐다. 김 행장의 뒤를 황영기 전 우리금융 회장이 이었으나, 1년 만에 밀려났다. 우리은행 시절 1조원대 파생상품 투자 손실이 발목을 잡았다.
이후 외국계 은행 출신의 강정원 전 행장이 회장을 맡았으나 카자흐스탄 BCC은행 투자 손실, 이사회 허위 보고 등으로 역시 징계를 받았다. 2010년 7월 취임한 어윤대 회장은 마침 대법원에서 2004년 회계처리 관련 징계 무효소송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낸 윤종규 씨를 지주회사 부사장(CFO)으로 불러들였다. 어 회장은 ING생명 인수에 주력했으나 실패하고 주총 안건 분석기관인 ISS에 미공개 정보를 건넸다는 이른바 'ISS 사건'으로 주의적 경고를 받았다.
어윤대 회장 때 함께 KB금융 사장으로 입성한 임영록 전 재정경제부 차관은 3년 뒤 회장(2013년 7월)에 올랐다. 윤 부사장은 KB를 다시 떠났다. 임영록 회장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혜성같이 나타난 이건호 행장과 볼썽사나운 진흙탕 싸움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둘은 모두 1년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그렇게 7~8년의 극심한 혼란기를 겪고 KB가 다시 안정을 찾은 건 2014년 윤 회장이 회장 겸 은행장으로 복귀하면서부터다.
우리금융이 비교적 주목받았던 시기는 황영기 회장 겸 은행장 때다. 2004년 3월부터 3년 임기를 마쳤다. 사실상 금융 공기업인 우리금융에 삼성 DNA로 대표되는 황 회장의 등장은 신선했다. 무엇보다 역대 정부 중 진보 성향이 가장 강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다. 황 회장 취임 두어 달 후 인터뷰 기회를 잡았다.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황 회장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 시스템"이라고 답했다. 그는 당시 은행 경영과 영업, 위험관리 시스템은 예상했던 것보단 잘 정비돼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인사 시스템은 무엇을 평가하고 어떻게 승진자를 결정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임기 중 인사 시스템만 제대로 구축하면 내가 할 일은 다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황 회장이 조직 구성원들에게 보낸 경고로 읽혔다. 황 회장은 금융권에서 '검투사'로 통한다. 강한 추진력과 저돌적인 업무 스타일 때문이다. 삼성증권 사장 시절부터 "최고 경영자는 지면 죽는 검투사와 같다"고 말해 붙은 별명이다. 우리은행장 시절엔 2006년 영업본부장들에게 단검이 든 지휘봉을 선물해 비장한 결의를 주문하기도 했다. 인사 시스템의 정비를 통해 직원들이 무엇을 위해 어디로 뛰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임종룡 회장도 취임 전부터 빠르게 움직였다. 은행에선 취임도 안 했는데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마저 나왔다. 속전속결로 조직을 장악해 기존 세력들에게 움직일 겨를조차 주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한다. 아직은 그 효과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가장 큰 행장 선임 문제가 남아 있다. 아직은 평가할 순 없지만, 임 회장과 같은 연세대 출신의 약진은 상황에 따라선 또 다른 불쏘시개가 될 수도 있다.
[우리 딜레마 글 싣는 순서]
①25년째 날개 못 편 불완전변태
②팔지도, 사지도 못한 官의 굴레
③지긋지긋한 책임론, 그 뒤에 숨은 관료들
④빛이 되지도, 우리도 아닌…
⑤임종룡의 '우리별'은 언제쯤… (끝)
/김병수 기자(bskim@inews24.com)▶네이버 채널에서 '아이뉴스24'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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