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당 5달러 ‘악마의 약물’… 치명적 치사율로 미국 청소년·영유아까지 위협[Global Focus]
타물질 혼합·형태 변형 쉬워
“무지개 사탕 모양 제조·유통”
교육청서 학부모에 경고문도
청소년 흡연·음주는 줄었는데
약물과다 사망 3년새 2배 늘어
2㎎만으로 성인 호흡중추 마비
침구 묻은 미량 펜타닐 흡입해
19개월 영아 갑자기 숨지기도
저렴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어
노숙자 사망 주요인으로 부상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namdol@munhwa.com
“매일 미국 전역에서 펜타닐(fentanyl)의 위험으로 학생들을 잃고 있다. 위기는 바로 여기, 우리 학교와 지역사회에 있다. 3월 13일 오후 6시 30분부터 8시까지 OO고에서 열리는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관련 커뮤니티 회의에 미셸 리드 교육감과 함께해 달라.”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두 자녀를 각각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보내고 있는 윌리엄 존스(44)는 지난 3월 초 펜타닐 관련 학부모 회의 참석을 독려하는 메일을 받았다. 그는 핼러윈을 앞둔 지난해 10월에도 “펜타닐이 무지개 사탕 모양으로 제조돼 유통된다”며 사진까지 곁들여 자녀들에게 주의를 당부할 것을 요청하는 메일을 받는 등 한두 달에 한 번씩 관할 교육청으로부터 펜타닐 관련 경고 메시지를 전달받고 있다.
존스 같은 학부모가 수시로 경고성 메일을 받는 것은 펜타닐이 코카인·헤로인 등 기존 마약과 달리 청소년이나 영·유아, 노숙자 등 미국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까지 무차별로 파고들며 희생자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천문학적 예산·노력을 투입한 금연 캠페인 등으로 미 청소년의 흡연이나 음주, 마리화나 등 복용은 줄고 있지만 감소세를 보이던 청소년 사망률은 최근 뒤집혔다. 이유는 딱 두 가지, 바로 펜타닐과 총기 때문이었다.
특히 개당 5달러에 못 미치는 싼 가격에 빠른 환각 효과, 니코틴의 20분의 1∼30분의 1에 불과한 치사량, 다른 물질과 쉽게 혼합되고 여러 형태로 변형 가능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펜타닐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희생양이 되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흡연·음주 줄었는데 청소년 약물 과다 복용 사망자, 3년 만에 2배 늘어=5일(현지시간)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내 15∼19세 청소년의 약물 및 알코올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2018년 788명에서 2021년 1755명으로 123% 급증했다. 10대 청소년들의 약물 과다 복용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는 단연 펜타닐이 꼽혔다.
2022년 미국의학협회저널에 게재된 한 연구 결과는 2010년과 2021년 사이에 펜타닐 및 관련 합성물로 인한 청소년 사망자가 38명에서 884명으로 20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청소년 약물 사망의 두 번째 원인인 우울증약은 2021년 기준 152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펜타닐 관련 사망자의 5분의 1에도 못 미쳤다. 펜타닐 때문에 전체 연령대의 약물 과다 복용 사망자 역시 2015년 5만2404명에서 2021년 10만6699명으로 6년 만에 2배 증가했다.
문제는 미국 10대들의 흡연·음주·마리화나 등 여타 약물 복용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더 많은 청소년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졌다는 점이다. 미국 미래모니터링(MTF)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고교 3학년에 해당하는 12학년 학생들의 음주율은 2002년 72%에서 2022년 52%로 20%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12학년 학생의 흡연율은 57%에서 17%로 무려 40%포인트나 뚝 떨어졌다. 미 10대 사이에서 흔한 마리화나를 제외한 약물을 복용한 학생 비율도 21%에서 8%로 급감했다. 그 결과 2021년 다른 오피오이드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청소년은 66명에 그쳐 2010년 청소년 사망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청소년들의 흡연·음주·여타 약물 사용이 일제히 감소했음에도 사망자가 극적으로 증가한 사실은 펜타닐의 치명적 영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펜타닐은 어린 영·유아의 생명도 위협하고 있다. 미 WPBP25 뉴스에 따르면 최근 플로리다주 웰링턴의 한 에어비앤비 숙소에서는 19개월 영아가 갑자기 숨졌다. 부검 결과, 사인은 급성 펜타닐 중독으로 피해 가족 이전에 숙소에 머물렀던 일행이 침구에 흘린 미량의 펜타닐을 흡입한 것으로 추정됐다.
미 시민단체 ‘펜타닐에 반대하는 가족’에 따르면 2019년에서 2021년까지 2년간 만 1세 이하 영아 사망은 300% 증가했고 1∼4세와 5∼14세 유아 사망 역시 각각 221%, 275% 급증했다. 펜타닐은 몸무게 72㎏ 성인 기준으로 단 2㎎만으로도 호흡중추를 마비시켜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치사율이 높은데 훨씬 작고 가벼운 영·유아의 경우 극미량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상당수 펜타닐이 영·유아들이 좋아하는 사탕·초콜릿 등으로 오인하기 쉽게 만들어지는 점 역시 피해를 확산하는 이유로 꼽힌다.
◇미 전역에 값싼 펜타닐 넘쳐나면서 노숙자 사망도 급증=미국 최대 도시 뉴욕의 노숙자서비스 부서는 2022회계연도 동안 뉴욕의 노숙자 사망자가 684명에 달해 2006회계연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우발적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년도 235명에서 37% 급증한 321명에 달했으며 펜타닐이 주요 원인이었다.
시애틀을 포함하는 워싱턴주 킹카운티에서도 지난해 한 해 동안 2021년보다 약 64% 급증한 308명의 노숙자가 숨졌는데 지역 보건 당국 조사 결과, 절반 이상이 펜타닐과 관련돼 있었다.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오리건주 멀트노마카운티 등에서도 코로나19 유행 기간 숨진 노숙자 가운데 상당수가 펜타닐과 관련된 것으로 확인됐다.
펜타닐이 노숙자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떠오른 것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만성적인 건강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점 때문이었다. 시카고대 베커 프리드먼 연구소에 따르면 2010∼2022년 노숙자 14만 명을 추적해 같은 연령대의 일반인들과 비교한 결과, 노숙자들의 16%가 연구 기간 사망한 반면 집에 거주하는 일반인은 3.9%만이 숨졌다. 샌프란시스코 보건부서의 에일린 러프란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전화도, 연락도 없이 길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은 (펜타닐) 치료를 받기도 훨씬 더 어렵다”고 말했다.
대량 생산되는 합성마약 특성상 펜타닐 알약 하나당 가격이 5달러(약 6500원)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저렴하고 길거리 어디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도 노숙인들의 펜타닐 치사율을 끌어올렸다.
펜타닐 사망자 수, 자살·코로나 넘어서… “대량파괴무기로 지정해야” 목소리
미국 국토부 “국가적인 최대 도전”
18개주 검찰총장 바이든에 서한
“펜타닐 위기, WMD 정의 충족”
‘대량파괴무기(WMD)’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
악마의 약물로 불리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fentanyl)이 세계 최강국 미국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2021년에만 10만7000명이 숨지는 등 최근 6년 새 펜타닐로 인한 사망자가 21만 명에 달해 자살·코로나19 등으로 인한 사망자 숫자를 훌쩍 넘어서자 펜타닐을 국가적 위협으로 지정하고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지난 3월 29일 연방 상원 국토안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펜타닐은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장관급 인사가 펜타닐을 국가적 도전 과제로 표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토안보부는 펜타닐을 비롯한 마약의 불법 유입을 차단하는 관세국경보호국을 관할한다. 국토안보부 관계자는 2024회계연도 예산안을 비롯해 국경순찰대, 이민·관세부서 등의 보고서에 펜타닐이라는 단어가 82차례 등장해 지난해 같은 문서에 28차례 나온 것에서 크게 증가했다. 펜타닐 불법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국토안보부는 국경에 설치할 새 스캔 장비 예산으로 3억500만 달러(약 3960억 원)와 함께 300명 이상의 추가 요원 배치 등을 예산안에 포함했다.
펜타닐을 WMD로 공식 지정해야 한다는 요청도 제기됐다. 애슐리 무디 플로리다주 검찰총장을 비롯해 텍사스·버지니아·네바다·뉴멕시코 등 18개 주 검찰총장으로 구성된 초당적 협의체는 지난해 10월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펜타닐을 WMD로 선언하는 즉각적이고 결정적 조처를 해야 한다”며 “그것이 대규모 사상자 발생으로부터 미국인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 정부는 WMD에 대해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위한 핵·방사능·화학·생물학 또는 다른 장치’로 규정하는데 18개 주 검찰총장들은 “현재 펜타닐 위기가 WMD 정의를 충족한다”고 밝혔다. 특히 각 주 검찰총장들은 2021년 미국 세관 국경순찰대가 압수한 펜타닐이 총 1만1000파운드(약 4990㎏)에 달해 전체 미국인을 7번씩 죽일 수 있는 양이라며 “마약 밀매가 아니라 미국인을 살해하려는 음모나 화학무기를 비축하려는 노력을 나타낸다”고 강조했다.
펜타닐이 WMD로 지정되면 국토안보부와 마약단속국(DEA)은 국방부를 포함한 정부기관들과 위기 상황을 조율해야 하고 이는 펜타닐 유통을 탐지·방지하는 범정부 차원의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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