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훈련 양보 선례 남겨선 안 된다" 美의 경고… 30년 흘러도 '유효'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미국 정부가 과거 우리나라를 상대로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한미연합훈련을 양보하는 선례는 '악수'(惡手)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이 같은 경고는 30년 뒤 현실이 됐다.
6일 외교부가 공개한 작성 후 30년이 지난 외교문서 중 1990년 10월 이승곤 당시 주미국대사관 공사와 칼 잭슨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 간의 오찬 내용을 정리한 문서에 관련 내용이 담겼다.
박동진 당시 주미대사가 외무부(현 외교부) 장관 보고요므로 작성한 해당 문서에 따르면 잭슨 보좌관은 이 공사에게 "팀스피릿(TS) 훈련에 관해선 북한 측이 중단할 것을 주장하고 있긴 하나, 만약 남북관계 진전을 생각해 북한 측에 양보한다면 이게 선례가 돼 북측은 끝없는 양보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잭슨 보좌관은 "따라서 TS 훈련은 한미 양국의 독자적 판단에 따라 결정할 사항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미국의 기본입장은 남북관계 진전을 다방면으로 격려하고 협력하는 것"이라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려하는 건 남북관계 진전을 이유로 한미 안보·협력체제에 영향을 줘선 안 된다는 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잭슨 보좌관은 또 사견임을 전제로 "주한미군은 독일의 경우처럼 통일 후에도 수행해야 할 중요한 임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한반도 통일 뒤에도 미군 주둔이 필요하단 견해를 제시했다.
TS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상정해 1976년부터 연례적으로 실시했던 한 한미연합훈련으로서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2년 뒤 중단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북한의 무력도발이 멈추지 않으면서 연례 한미훈련은 RSOI, 키리졸브(KR)/독수리연습(FE) 등으로 이름과 형식 등을 바꿔 계속됐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불과 5년 전에도 벌어졌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 간의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 뒤 일련의 한미연합연습·훈련이 줄줄이 취소 또는 축소됐던 것이다.
다만 2018년을 기점으로 한 한미훈련 취소·축소는 우리 측이 아니라 '북한 비핵화 협상에 필요하다'는 미국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2019년부터 연례 한미연습이 실기동훈련(FTX)이 배제된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도상훈련(CPX)로만 진행하고, 한미연합 전력이 참여하는 FTX는 대대급 이하에서만 실시해왔는데도 이를 '북칭 전면전 연습'이라고 주장하며 중단을 요구해왔다.
심지어 당시 정부·여당 일각에선 이 같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기류마저 형성됐다.
그러나 북한은 2019년 10월 미국과의 협상 결렬을 선언한 뒤 다시 핵·미사일 기술 고도화에 매진했고, 작년엔 2017년 11월 이후 중단했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8차례나 실시하고 2018년 4월 '폐쇄'를 선언했던 핵실험장마저 재건했다.
북한은 작년 한 해 ICBM을 포함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탄도미사일을 총 30여차례에 걸쳐 최소 70발 쐈고, 올해도 벌써 2발의 ICBM을 쏘는 등 각종 도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한미 당국도 대북 억제력 강화 차원에서 연례 한미연습 '자유의 방패'(FS·프리덤쉴드)를 실시하면서 이와 연계한 연합 FTX '전사의 방패'(WS·워리어실드)를 5년 만에 처음으로 전구(戰區)급 규모로 수행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은 한반도 정세 격화의 책임은 자신들의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 도발이 아닌 한미훈련 등 이른바 '대북 적대정책'에 있다며 수십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미 양국에 책임 떠넘기기를 일삼고 있다.
이에 덩달아 중국과 러시아마저 북한의 주장이 "합리적"이라며 주장하며 북한의 도발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러 양국의 이런 행태 때문에 안보리 차원의 대북 공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한 소식통은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그 사이 우리의 대북정책 냉·온탕을 오갔다"며 "북한의 핵·미사일이 한미를 항한 실질적 위협이 된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내용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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