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문서] '모가디슈 탈출' 강신성 대사 "정치적 이야기 최대한 삼갔다"

김지연 2023. 4. 6.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외교장관도 강대사에 "남북 대화에 지장 없게 적절 수위 언급" 당부
'수지 김 간첩조작사건' 기자회견 강행하자 공관장 "국가적으로 도움안돼" 반발
영화 '모가디슈'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관저에서 이탈리아대사관으로 이동 과정과 대사관 후문 도착 후 문을 열어 줄 때까지 7분간 총탄사격 상황 하에서 기다리는 과정이 너무나 급박했기 때문에 북한 이창일 서기관은 내내 태극기를 직접 높이 흔들면서 우리가 외교관이라는 것을 표시하면서 위기를 방지코저 했다."

외교부가 6일 공개한 비밀해제 외교문서에서는 영화 '모가디슈'(2021)로 유명해진 이른바 '소말리아 남북 공관원 탈출' 사건의 막전막후가 고스란히 담겼다.

남북한 대사관원들은 함께 목숨 걸고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면서도 분단의 현실에 얽매여 대내외적으로 신중에 신중을 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명 1987년 '수지 김 간첩조작사건'에서 현지 공관장이 기자회견을 열라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외무부 본부 지시에 강하게 반발했던 과정도 세세히 공개됐다.

빗발치는 총탄 속 태극기 휘날리며…소말리아 내전 속 하나된 남북

1990년 12월 30일 소말리아 반정부군이 수도 모가디슈로 진격하면서 남북 공관원들의 탈출 상황을 생생히 묘사한 외교전문이 이날 처음 공개됐다.

초반에는 교신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우리 측은 미국 대사관을 통해 본부에 보고를 올리는 등 급박한 분위기였다.

강신성 주소말리아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과 교민 등 남한인 7명은 대사관저에 피신해있다가 1991년 1월 9일 구조기를 타러 공항으로 나갔지만 교신 오류로 탑승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강 대사는 공항으로 피신온 김용수 북한대사 등 북측 인사 14명을 조우해 사정을 듣자 공동 대피를 제의했다. 북한 대사관은 전날 무장강도 침입으로 약탈당했던 상황이었다.

강 대사는 전보에서 "김 대사는 1시간 반의 여유를 달라고 했고 북한 공관원들은 주재국 외무부 등 자기들을 보호할만한 기관을 찾아갔으나 모든 행정기관이 마비 내지 풍지박살된 사실을 확인하고는 제의를 수락"해 다같이 한국 대사관저에서 1박을 보냈다고 전했다.

다음 날 강 대사는 남한 인원만 태울 수 있는 구조기를 제공하겠다는 이탈리아 측 제안을 거절한 뒤 나머지 20명을 데리고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향한다. 그러나 총격 속에 운전대를 잡았던 북한인 한상렬 씨가 도착 직전 총에 맞아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숨졌다.

당시 이탈리아 대사관行 과정에서 긴박했던 과정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강 대사는 전보에서 "(한씨는) 피격 당시 치명상이었으므로 핸들을 놓았더라면 차량이 전복되면서 전 대열이 수라장에 빠져 모두 총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컸었다"며 "동인의 초인적인 사명감에 감복한 소직은 그후 매일 아침저녁 묘를 찾아 경배하였다"고 말했다.

이후 이들은 이탈리아가 주선한 항공기를 타고 케냐의 몸바사로 탈출에 성공한다.

강 대사는 현지 교민들이 마련해준 호텔에서 북한 대사 일행과 하루 더 함께 지내며 위로금까지 전달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김 대사의 완강한 거절로 불발했다고 보고했다.

영화 '모가디슈'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탈출 과정에는 민감한 남북 관계를 고려해 북측을 최대한 배려하려는 노력이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강 대사는 "북한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있는 동안 동인들의 딱한 처(지를) 우리가 악용한단 인상을 줄 언행과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극력 회피하고 오히려 그쪽을 우대한다는 자세를 견지했다"며 "정치적인 이야기는 최대한 삼갔다"고 설명했다.

외무장관은 주케냐대사에게 보낸 전보에서 강 대사의 귀국 기자회견과 관련해 "저간의 사정을 북한 공관원에 대한 협조사항을 포함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되 다만 강대사의 인도적인 도움이 자칫 과장 보도됨으로써 이를 가지고 우리가 너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인상을 북한측에 주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주문했다.

강대사 귀국 기자회견 관련 장관 당부사항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또 "모든 사실을 그대로 공개함으로써 철수 북한 공관원들의 입장을 어렵게 하거나 아측의 소말리아 내에서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서 북한측을 자극할 수도 있으므로 남북 대화 등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적절히 언급 바란다"며 "소말리아 내전이라는 긴급사태를 당해 남북한이 동족이라는 차원에서 서로 협조, 무사히 대피하게 되었다는 정도로 언급바란다"고 당부했다.

피살사건이 '납북미수' 사건으로…안기부 공작 '기자회견'에 반발한 공관장

1987년 일명 '수지 김 간첩조작' 사건 당시 전문도 공개됐다.

이는 부인 수지 김(본명 김옥분)을 살해한 윤태식이 범죄 면피용으로 피해자를 간첩으로 꾸민 거짓 진술을 당국이 정권 이익을 위한 공작에 활용한 사건이다.

수지 김 전남편 윤태식씨 재판 출두 수지 김 전남편 윤태식 재판출두 수지김 살해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남편 윤태식씨가 27일 오전 서울지법에 첫공판을 받기위해 출두하고 있다./진성철/사회/ 2001.11.27 (서울=연합뉴스) zjin@yna.co.k

1월 3일 윤태식은 홍콩 자택에서 부인을 살해하고 이틀 뒤 싱가포르 주재 북한대사관에 찾아가 망명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이후 현지 미국 대사관으로 발길을 돌렸다가 한국 대사관으로 신병이 인도된다.

그러나 윤씨는 실종된 부인을 찾으러 싱가포르에 왔다가 북한 대사관으로 유인돼 월북을 요구받던 중 가까스로 탈출했고 알고 보니 부인이 간첩이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후 6일 안기부와 외무부 관계자 등이 참석한 대책회의가 열렸고, 그 다음날을 목표로 싱가포르에서 기자회견을 추진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장춘 주싱가포르대사는 항명 수준으로 강하게 반발했다. 윤태식의 진술이 석연치 않은 데다 북한의 대남 심리전 수법을 감안해 현지 기자회견은 무리이고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북한이 10일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공관과 본부는 거의 실시간으로 긴급전보를 주고받으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아주국장은 직접 이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싱가포르 당국과 접촉해 북측 기자회견이 중단되도록 협조를 요청하고, 북측 기자회견이 진행되면 우리도 부득이 기자회견을 하게 된다는 점을 통보해 싱가포르 측의 오해가 없도록 해달라고 지시했다.

북측 기자회견 중단 협조 지시하는 장관 전보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에 이 대사는 "사건 진상이 더 밝혀질 때까지 외교당국이 적극적인 입장과 태도를 표시하는 것이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며 논평 형식으로 대처하겠다고 보고했다.

본부는 처음에는 이 대사 의견을 존중하는 듯했으나, 관계부처 협의 결과 기자회견 대응이 적절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시달한 지침에 따라 지체 없이 기자회견을 실시하고 결과보고 바란다"는 훈령을 하달했다.

결국 그날 저녁 이 대사는 언론인 12명이 참석한 기자회견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기자회견은 8일 태국, 9일 한국에서 열린 것으로 그간 알려졌으나 싱가포르에서도 따로 개최된 것으로 해석된다.

수지 김 사건 수사결과 발표 서울지검 신태영 1차장(오른쪽)등이 19일 오후 기자실에서 수지 김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양현택/사회/ 2001.12.19 (서울=연합뉴스) yang@yna.co.kr <저작권자 ⓒ 2001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 대사는 다음날 장관에게 보낸 전보에서 "이 사건의 드라마 속에 본직을 개입시킨 것 이외에는 언론 차원에서 기자회견이 국가적으로 도움을 가져왔다고 본직은 평가하지 않는다"며 "윤태식 사건으로 본직은 당지에 부임한 이래 지난 1년여동안 쌓아온 공관장으로서의 신의에 중대한 손실을 대주재국 정부관계에서 입었다고 보며 앞으로 주요 정책 문제에 관하여 아국의 입장을 대표하는 기능을 효과적으로 원활히 수행하는데 제약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후 장관은 이 대사에게 본부 훈령을 이행치 않은 데 대해 "앞으로는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엄중 경고한다"고 통보했고, 이에 이 대사는 경고가 부당하다고 회답했다.

기자회견 강행 관련 주싱가포르대사 항의 전보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kite@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