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문서] '혈맹' 북한 따돌리고 한국과 수교한 중국, 속웃음 쳤다
김정일, 중국 맹비난…"돈 때문에 공산주의 원칙 포기"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중국) 공산당 간부들은 공식 석상에서는 한중 수교에 대해 발언을 자제하고 태연한 척했으나 식사나 주연 석상에서는 한국과 대만과의 단교에 크게 특히 기뻐하고 '한국이 대단한 정치적 결단을 해주었다. 이로써 한국에 큰 빚을 지게 됐다'고 실토했다" (1992년 9월 3일 후카다 하지메 일본 사회당 의원이 주일본 한국대사관 참사관을 만나 전한 발언 중 일부)
6일 외교부가 공개한 1992년 외교문서에선 한중수교, 그리고 이와 맞물린 한-대만 단교, 한-베트남 관계 개선 등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 추진에 대한 주변국의 생생한 반응과 평가를 일부 엿볼 수 있다.
대만 "아시아 공산주의 세 나라 저절로 넘어질 것"…한중수교 견제
한중 수교가 현실로 다가온다는 것을 직감한 대만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한중 수교가 불러올 파장에 대해 경고하고 이를 늦추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김종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일행이 1992년 1월 26일부터 29일까지 대만 출장을 다녀와 작성한 출장 보고서에는 한중수교 실현 가능성에 대한 대만의 불안함이 드러난다.
이등휘 대만총통은 김 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아시아에 남아있는 공산주의 세 나라(중국·북한·베트남)는 시간문제이지 저절로 넘어질 것이 확실하므로 대륙(중국을 지칭)과의 관계 개선에 속도를 늦춰 신중히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면담에 배석한 대만 첸푸 외교부장도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북방정책을 충분히 이해하나 만약 대륙과 수교한다고 하더라도 양국 관계가 현재대로 유지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 측은 "한중 수교를 인위적으로 시간적 목표를 정해놓고 추진하는 것이 아니고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추진하고 있다"며 대만 측을 달랬다.
이상옥 외무장관도 1992년 5월 13일 방한한 아널드 캔터 미국 국무부 차관을 만난 자리에서 캔터 차관이 "중국 측이 관계 정상화 조건으로 중화민국(대만)과의 관계 단절을 요청할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묻자 "매우 어려운 결정이며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사항"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표했다.
이 장관은 그러면서도 "당분간은 중화민국 정부와의 정치적 관계는 유지될 것이며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니다"고 했다.
대만의 우려대로 한국과 중국은 그해 8월 24일 수교했고, 한국은 수교 직전 대만에 단교 방침을 통보했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한중 수교가 역내 평화를 위한 결정이라고 강조했으나 내부적으로는 '한-대만 단교'를 가장 큰 성과로 여기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한중 수교 체결 당시 중국을 방문했던 일본 후카다 의원은 당시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한-대만 단교가 금번 한중 수교의 가장 큰 성과임을 솔직히 인정했다"고 중국 내부 분위기를 주일본 한국대사관 측에 전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장팅엔 초대 주한중국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역사의 체면을 회복했다"고 한중 수교를 평가했다.
이에 장 대사는 "한중 양국의 수교가 한반도의 안정은 물론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 정책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답했다.
방북 일 정치인 "북, 한중수교에 태연을 가장하려는 자세 역력"
한국이 1990년 한러 수교에 이어 한중 수교까지 체결하자 북한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부 충격은 상당했다.
후카다 의원은 방중 전 1992년 8월 22일부터 이틀간 먼저 북한에 들러 김용순 당시 노동당 국제부장과 회담했는데, 이때 후카다 의원은 대만발 한중수교 보도를 인용하며 사실관계를 북측에 문의했다.
김 부장은 이미 지난 4월 양상쿤 국가 주석의 방북시 "연내 한중수교 원칙"에 대한 "시사"가 있었다며 "수교 일자 통보는 약 1주일 전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중 관계는 혈맹 관계이므로 앞으로 계속 발전되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후카다 의원은 "한중 수교에 대해 북한 노동당 간부들은 애써 태연을 가장하려는 자세가 역력했다"라고 전했다.
1992년 9월 18일 주 홍콩 한국총영사가 주 홍콩 일본영사로부터 들은 내용을 보고한 문서를 보면 "한중 수교 이후 김정일은 장시간의 내부 연설을 통해 일부 공산주의 국가들이 돈 때문에 공산주의 원칙마저 포기하고 있다는 등 중국을 맹렬히 비난하였다 함"이라고 쓰여있다.
그러면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은 한중수교에 대해 너무 격렬하게 반응해서는 안 되며 로키(LOW-KEY)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김일성은 김정일, 오진우 양측 어느 의견에도 동조하고 있지 않다고 함"이라고 덧붙였다.
1992년 6월 30일 이상옥 외교부 장관이 러시아를 방문해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옐친 대통령은 몇 달 뒤 자신의 방한 계획에 대해 "본인이 대한민국을 방문하면 김일성이 질투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베트남 관계 개선 추진에 美 '속도 조절' 주문
한편 외교문서에는 한-베트남 관계 개선 움직임에 미국이 속도 조절을 주문한 정황도 담겼다.
1990년 12월 5일 박동진 주미대사가 리처드 솔로몬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면담한 내용을 보면, 솔로몬 차관보는 캄보디아 내전 종식을 위한 파리 회의 협상이 최종 단계에 와있다며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은 당분간이라도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며 한국 정부의 배려에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캄보디아에는 베트남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는 미국과 베트남 관계 정상화에 최대 걸림돌이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방한으로 진행될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외무부가 1991년 10월 작성한 '한미 정상회담 전 검토 조치 사항'에 따르면, 우리측은 '캄보디아 사태가 해결됐으므로 베트남과 외교 관계를 수립 추진'이라는 입장을 정했다.
하지만 미국은 '캄보디아 평화 협정의 성실한 이행' 등 관계 개선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한국이 베트남과의 관계에 있어 계속 협조해 달라고 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2년 10월 24일 이 장관은 시착문 싱가포르 외무차관보를 만나 "한국과 베트남은 상호 연락 대표부를 설치키로 합의했다"며 "원래 베트남과 대사급 수교를 원했으나 미국이 금번 11월 대통령 선거 이후로 미뤄주도록 협조를 요청해와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ki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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