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90% 주르륵, 이런 바이오 수두룩…"사기 아니냐" 개미 곡소리

김도윤 기자, 정기종 기자, 박미리 기자, 홍순빈 기자 2023. 4. 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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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바이오는 어쩌다 거짓말쟁이가 됐나 (上)
[편집자주] K-바이오가 올해 큰 도전에 직면한다. 다수 국내 바이오가 지속된 투자 수요 악화로 재무건전성을 위협받고 있다. 급기야 최근 일부 기업은 감사의견 문제로 상장폐지 위기에 처했다. 코스닥 성장성특례상장 1호 셀리버리의 거래정지는 상징적이다. 바이오 위기는 어디서 초래했을까. 결국 핵심은 시장 신뢰 하락이다. 특히 특례상장 바이오 중 IPO 당시 약속한 성과를 지킨 기업을 찾기 힘들다. '바이오는 사기 아니냐'는 인식이 팽배한 이유다. 바이오는 어쩌다 거짓말쟁이가 됐을까.
2만원→345원→거래정지…폭탄 안고 달리는 K-바이오

#코스닥 시장 성장성특례 상장 1호 셀리버리는 2021년 1월 한때 주가가 10만원을 넘었다. 이후 주가는 속절없이 추락했다. 어느새 1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최고점 대비 주가 하락률은 93.5%다. 그리고 지난달 감사의견 거절로 거래가 정지됐다. 투자자 사이에서 "코스닥 바이오는 무슨 코인이냐, 코인보다 더하다"는 울분에 찬 목소리가 나왔다.

바이오 투자자들을 '멘붕'(멘탈붕괴)에 빠트린 바이오는 셀리버리만 아니다. 에스디생명공학 역시 최고 2만원에 육박했던 주가가 349원까지 떨어진 뒤 감사의견 거절로 지난달 거래정지됐다.

거래가 이뤄진다고 능사는 아니다. 제넥신, 셀리드처럼 최근 3년새 주가가 고점 대비 90% 이상 하락한 바이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주주들의 손실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바이오는 다 사기 아니냐"는 개인투자자들의 토로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특히 급격한 시장가치 하락으로 상장과 비상장을 가리지 않고 바이오 업계에 자금줄이 마르면서 바이오 산업의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단 우려까지 나온다.

◇신약으로 돈 번 바이오 찾기 힘들어…신뢰 스스로 저버렸다

지독한 주가 하락으로 투자자의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 바이오는 한둘이 아니다. 대다수 바이오가 2021년 고점 대비 주가가 반토막났다. 다른 어떤 업종보다 바이오의 시장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바이오의 추락은 시장 신뢰 하락에서 비롯했다. 2005년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제도 도입 뒤 100개 이상 바이오가 증시에 입성했지만, IPO(기업공개) 당시 약속한 기술이전이나 상업화를 통한 흑자전환에 성공한 기업은 찾기 힘들다. 에이비엘바이오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다수 바이오가 눈에 띄는 연구 또는 상업화 성과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머니투데이가 2005년부터 지금까지 특례로 코스닥에 상장한 바이오 관련 기업 103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신약 개발 성과로 지난해 의미 있는 수익을 창출한 기업은 에이비엘바이오뿐이다.

그나마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수혜를 본 진단 회사 바이오니아, 휴마시스, 수젠텍, 제놀루션 정도가 특례 상장 바이오 중 이익 창출에 성공했다. 또 코렌텍, 원텍, 오스테오닉이 의료기기로 돈을 벌었다. 이 외에 건강기능식품 비피도와 치과용 골이식재 나이벡, 최근 거래재개된 DXVX가 소규모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나머지 91개 특례 상장 바이오는 모두 영업적자다. 다수 신약 개발 바이오가 수년간 수백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지속하고 있다. 인트로메딕, 이노시스, 셀리버리는 현재 거래정지 상태다. 바이오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추락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국내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 1호 기업 헬릭스미스의 현주소는 상징적이다. 2005년 상장 이후 일부 기술이전 성과로 잠깐 소규모 이익을 내기도 했지만 그뿐이다. 신약 개발에 대한 기대는 옅어졌고 최근 3년간 영업적자가 1500억원을 넘는다. 주인은 바뀌었고, 최대주주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헐값 매각 논란이 불거졌다. 기업가치는 급락했다. 지금은 소액주주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투자자는 죽을 맛이다.

◇"바이오, 상장기업 책무 못 느끼는 것 같다" 지적도

돌이켜보면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의 임직원이 있는 신약 개발 바이오가 수년간 제대로 된 매출 실적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도 흔하다. 오히려 바이오에 대한 주식시장 투자 수요가 높을 때 너도나도 증자나 사채를 발행해 큰돈을 조달한 뒤 흥청망청 쓰기도 했다.

이는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바이오 현업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바이오 기업 관계자들은 "같은 업계에서 봐도 상장 뒤 연구개발에 몰두하기보다 주가 부양에만 신경쓰는 바이오가 분명 있다" "밖에서 보면 실패가 유력한 파이프라인인데 주가 때문에 마지못해 끌고 가는 경우가 있다" "IPO를 하고 나면 목표를 달성한 듯 추가적인 파이프라인 발굴 등 미래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는 사례도 보인다" 등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일부 상장 바이오 오너를 비롯한 경영진의 인식이나 태도에 대한 비판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부 바이오 기업의 오너와 경영진을 보면 상장 기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상장 기업은 자본시장을 통해 투자를 받는 만큼 투자금에 대한 수탁 책임이 있고, 이 자금을 토대로 언제까지 수익을 창출해서 이익을 투자자와 공유하겠단 의무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상장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바이오 기업도 회계 투명성, 내부통제, 재무 구조 등에 대해 상장 기업으로서 책임을 갖고 비상장 때와 다르게 경영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성공모델로 꼽히는 이상훈 "신약 개발 더 냉정해야"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국내 신약개발 바이오에 대해 "냉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끊임없는 연구개발, 선택과 집중, 글로벌 시장 개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각자 보유한 파이프라인에 대해 성공 확률이 낮단 판단이 든다면 과감하게 버릴 필요가 있다"며 "자기 파이프라인이라고 냉정하지 못하고 애정을 갖고 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또 "신약 후보물질을 냉정하게 보고 과감하게 버릴 수 있으려면 한두 개 파이프라인에 의존해선 어렵다"며 플랫폼 기술에 기반한 다양한 파이프라인 확보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어 "좋은 물질이라고 무조건 직접 임상을 가져가려고 하지 말고 글로벌 기술이전을 통해 스스로 사업적 성과를 축적하며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며 "신약개발 과정에서 비용을 들여서라도 기술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세포주에 대한 특허를 확보하려는 노력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CB 돈잔치 청구서 줄줄이 대기…진짜 위기 이미 시작

머니투데이는 지난해부터 국내 바이오 기업의 전환사채(CB) 현금상환 우려를 심도 있게 짚었다. 실제 여러 바이오 기업이 올해 대규모 CB의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가능성에 직면한다. 이미 시작됐다.

대주회계법인의 셀리버리에 대한 감사의견 거절도 CB 풋옵션 우려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주회계법인은 감사의견 거절의 근거로 기업의 영속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2022년 말 기준으로 총부채가 총자산은 42억원 초과하며, 2023년 10월 전환사채 350억원(액면가액)에 대한 조기상환청구권 행사 기간이 도래하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셀리버리가 그동안 누적된 적자로 재무건전성이 악화한 상태에서 앞서 발행한 대규모 CB의 풋옵션이 행사될 경우 기업의 존속 능력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단 회계법인의 판단이 거래정지로 이어진 셈이다.

대규모 CB의 현금상환 압박 우려는 비단 셀리버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너도나도 바이오에 투자하려던 2020~2021년 국내 상장 바이오가 발행한 CB 규모는 3조원을 넘는다. 이 때 발행한 많은 CB의 만기는 좀더 여유가 있지만 문제는 풋옵션이다. 풋옵션 행사는 통상적으로 CB 발행 2~3년 뒤부터 가능하도록 설정한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3조원 CB의 풋옵션 시기가 도래한단 의미다.

실제 지난달에만 코아스템켐온, 전진바이오팜, 셀리드, 지티지웰니스, 우정바이오, 휴메딕스 등이 만기 전 전환사채를 취득했다. 이뿐 아니라 여러 바이오가 앞서 발행한 CB 풋옵션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추가적인 자금조달 등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지금은 국내 바이오의 기업가치가 극도로 낮아진 시기다. 2020~2021년 발행 당시 CB의 전환가액과 현재주가 사이에 괴리가 무척 크다. 더구나 당시 CB는 대체로 무이자 또는 1% 수준의 금리로 발행됐다. 사채권자 입장에선 풋옵션이 가능한 시기가 오면 현금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바이오, 폭탄 안고 달리는 것 같다"

물론 상장 기업은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수준의 처참한 주가 기반으론 만족할 만한 조건의 자금조달이 쉽지 않다. 바이오에 대한 자본시장 투자 심리는 아직도 냉랭하다. 울며 겨자먹기로 주주배정 증자에 나설 수도 있는데, 이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개인투자자는 손해를 감수해야 할까.

셀리버리의 거래정지로 모처럼의 반등을 기대하던 바이오 투자자들은 또 한 번 쓴맛을 봤다. 앞으로 다른 바이오가 추가적인 자금조달 실패 등으로 CB 풋옵션에 대한 디폴트(채무불이행) 사례가 불거질 경우 바이오에 대한 투자 수요는 더 악화할 수도 있다. K-바이오는 폭탄을 안은 채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 어렵고 아슬아슬한 달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한 상장 바이오 오너는 "지금 업계에선 올해 하반기 몇몇 바이오는 자금 문제로 정말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다"며 "유일한 해결책은 바이오의 시장가치가 오르는 것뿐인데, 뾰족한 방법이 없어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는 "최근 제약·바이오의 시장가치가 하락하면서 IPO 문이 좁아지고 비상장 기업의 자금조달 환경마저 악화하면서 우리 바이오 산업의 생태계가 악순환 고리의 초입에 접어든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며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혁신 기술 개발에 매진해야 하고 이와 함께 자본시장을 통한 건전한 자금조달이 뒷받침된다면 산업이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갑 불렸던 CB의 역습…'돈맥경화' 바이오, 생존조차 위태
국내 바이오 업계에 재무건전성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실질적인 매출이 없는 상황에서 연구개발 등 투자에 돈을 쓰다 보니 보유자금이 줄어든다. 매출 기반이 부재한 가운데 추가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현금이 바닥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바이오에 대한 투자 심리가 쪼그라든 시장 환경에서 투자유치는 쉽지 않다. 재무건전성 우려에 노출될 만한 바이오가 늘어나는 이유다.

특히 올해는 2021년 이전 여러 바이오 기업이 대거 발행한 전환사채(CB) 상환 시기가 줄줄이 도래한다. 대다수 바이오 기업의 현재주가는 CB 발행 시기보다 낮아졌다. 셀리버리뿐 아니라 앞으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바이오가 한둘이 아니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싸이토젠과 제테마, 셀리버리, 지티지웰니스 등은 앞서 발행한 CB의 풋옵션 행사 가능 시기 또는 사채 만기를 연내 맞이한다. 싸이토젠과 제테마는 지난 2021년 5월과 7월 각각 발행한 293억원, 568억원 규모 CB의 풋옵션 행사 가능 시기가 오는 5월과 7월 도래한다. 셀리버리 역시 같은 해 10월 두 차례에 걸쳐 발행한 345억원 규모 CB에 대한 풋옵션이 오는 10월부터 행사될 수 있다.

이밖에 지티지웰니스는 지난 2021년 10월 발행한 10억원 규모 CB가 오는 10월 만기를 앞두고 있다. 이미 풋옵션 행사가 가능한 상황이라 그 이전이라도 조기 상환 청구가 이뤄질 수 있다.

CB 투자자는 주가가 상승하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시세차익을 얻거나, 주가 하락 때 만기까지 보유하다 정해진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다. 다만 만기 이전이라도 풋옵션을 행사해 조기 상환 청구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풋옵션은 만기까지 주가가 전환가액을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여겨질 때 행사된다. 올해 CB 풋옵션 상환 기간이 도래하는 다수 바이오의 현재주가는 전환가액을 밑돈다. 연초부터 바이넥스와 메드팩토, EDGC, 유틸렉스, 엔지켐생명과학, 셀리드 등이 CB 만기 전 사채를 취득해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가 급락으로 자금조달 환경이 악화한 바이오 기업 입장에선 가뜩이나 빈곤한 지갑 사정에 사채 회수까지 나서야 하니 진퇴양난이다. 현금 상환 부담을 넘어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지난해 10월 자금 부족으로 30억원대 CB 원리금을 지급하지 못했던 네오펙트가 연초 경영권 매각을 결정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올해 CB 상환 가능성이 있는 바이오 기업 대다수가 현재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다. 지난해 말 기준 싸이토젠의 현금성 자산은 159억원, 제테마 209억원, 셀리버리 146억원이다. 지티지웰니스 역시 6억원으로 상환 규모에 비해 보유 현금이 부족하다.

바이오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도 초조하다. 셀리버리와 뉴지랩파마, 지티지웰니스, 인바이오젠 등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기업들이 줄줄이 감사보고서 의견거절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폭락한 주가에 속을 앓던 주주들의 돈은 거래정지에 아예 묶여버렸다. 2021년 초 10만원을 웃돌던 셀리버리 주가는 10분의 1도 되지 않는 6680원에 거래정지 상태다.

◇부메랑으로 돌아온 대규모 CB발행…초라한 성과 속 '예견된 재앙' 지적도

국내 바이오 벤처의 재무건전성 악화는 예견된 재앙이란 시선도 적지 않다. 많은 바이오가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주가가 치솟던 시기 앞다퉈 대규모 CB를 발행해 자금을 모집했다. 지난 2020~2021년 국내 바이오 기업 CB 발행 규모는 3조1650억원으로 이전 앞서 5년간 발행된 2조5900억원을 훌쩍 넘는다. 지난해에도 1조453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 너도나도 개발한다던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연구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셀트리온의 코로나19 치료제 렉키로나, SK바이오사이언스의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을 제외하면 품목허가를 받은 약물이 없다. 렉키로나와 스카이코비원의 상업화 성과도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일부 기업의 도덕적 해이로 시장의 신뢰가 하락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연구 성과를 확보하지 못한 가운데 금리인상 기조까지 맞물리면서 2021년 이후 바이오 기업가치는 곤두박질쳤다.

또 지난해 바이오 벤처의 주요 자금 조달창구인 IPO(기업공개) 시장마저 얼어붙으며 자금난은 더욱 악화됐다. 벤처캐피탈(VC)의 바이오 업종 신규 투자 비중은 2020년 27.8%에서 지난해 16.3%로 10%p 이상 하락했다.

이 같은 전방위적 자금 압박 속 한때 지갑을 불렸던 CB는 부메랑이 됐다. 일부 바이오가 유상증자 등을 통해 급하게 자금을 수혈하고 있지만 업계 전반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엔 무리란 평가다.

일각에선 재무건전성 측면에서 바이오 기업의 특성을 고려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약 개발 등을 위해 오랜 기간 투자가 불가피한 산업 특성상 재무건전성을 기업의 영속성이나 가치를 대변하는 지표로 삼아선 안 된다는 의견이다. 매출이 없어도 유망기술을 토대로 특례 상장을 허용하는 것처럼 시장 퇴출 규정 역시 잠재력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겠냔 주장인 셈이다.

바이오 업계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시선도 있다. 부실한 재무구조를 '영광의 상처'처럼 여기는 업계의 인식은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주가 부양에만 신경 쓰는 일부 바이오에 대해 업계 스스로 눈을 감고 자정 노력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견실한 기업 위주로 옥석가리기를 통해 최소한의 신뢰 회복 동력은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는 성토가 나오는 이유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바이오는 확실한 매출 기반이 존재하는 기존 성숙 사업에 비해 더 많은 상업화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며 "바이오를 이미 완성된 산업에 속한 기업과 동일한 잣대로 재정건정성을 판단하고 시장 퇴출의 기준으로 삼는 데 업계의 불만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오의 경우 회계적으로 비용으로 처리하는 연구개발비의 자산성을 인정하는 등 산업에 맞는 재정 지표와 제재 기준을 만들어 적용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며 "그럼에도 주식시장에 상장한 바이오 기업이라면 연구 성과를 토대로 현금을 창출하겠다는 투철한 책임감을 갖고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기 아니야?"…'개미지옥' 된 특례상장 바이오기업

기술특례상장으로 증시에 입성한 100개가 넘는 바이오 기업들의 성적은 현재 기준으로 낙제점 수준이다. 다수 바이오가 영업적자에 시달리는 가운데 눈에 띄는 신약 파이프라인은 손에 꼽는다. 투자자들은 재무 구조가 취약한 바이오의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술특례상장 제도에 따라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바이오 기업은 2018년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 △2018년 17개 △2019년 17개 △2020년 16개 △2021년 11개 △2022년 10개 등이다. 올해는 지아이이노베이션이 기술특례로 코스닥에 입성했다.

기술특례상장은 당장의 수익성이 낮더라도 미래 성장성이 큰 기업들이 증시에 입성할 수 있게 한 제도다. 2005년 처음 도입됐다.

기술특례상장 제도 특성상 바이오 기업이 가장 많이 활용했다. 일각에선 바이오를 위한 IPO(기업공개) 제도란 평가도 나왔다. 바이오 기업은 기술특례로 공모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용이해졌고 비상장 바이오에 투자한 벤처캐피탈(VC)은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나섰다. 엑시트에 성공한 벤처캐피탈의 운용자금이 다시 바이오에 투자되며 산업에 돈이 돌기 시작했다.

기술특례상장 제도가 바이오 산업의 성장을 이끈 긍정적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다수 바이오가 기술특례로 상장할 당시 시장과 약속한 기술이전이나 신약개발을 통한 흑자전환을 완수하지 못했다.

2020년의 경우 제놀루션, 미코바이오메드, 클리노믹스를 제외한 모든 기업이 상장 당시부터 지난해까지 영업적자 상태가 지속됐다. 같은 해 9월에 상장한 박셀바이오는 상장 후 현재까지 매출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신약 개발 성과가 전무한 곳도 있다. 캡술형 내시경 의료기기 업체인 인트로메딕은 2016년 당뇨병 치료제 후보물질 개발에 뛰어들었으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인트로메딕은 지난해 3월 2021사업년도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인의 감사의견이 '의견거절'을 받은 후 현재까지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기술특례 바이오 기업 주가도 '뚝'…관리종목 지정 위험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은 손실을 볼까 우려하고 있다. 현재 대다수 상장 바이오의 주가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2018년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네오펙트는 현재 주가가 공모가(1만1000원) 보다 약 87% 하락한 상태다.

관리종목 지정 위험성도 제기된다. 상장기업은 매출액 30억원 미만,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이 자기자본의 50% 초과 등이 지속되면 거래소로부터 관리종목으로 지정받는다.

기술특례기업의 경우 상장한 연도를 포함해 매출 요건은 5년, 법차손 요건은 3년 동안 유예된다. 바이오 기업들은 유예기간이 끝났어도 최근 3년간 매출액 총합이 90억원이상이면서 직전연도 매출액이 30억원 이상이거나 연구개발·시장평가 우수기업에 한해 매출요건이 면제된다.

2020년에 상장한 바이오 기업들의 법차손 유예기간은 올해부터 끝난다. 에스씨엠생명과학, 이오플로우, 젠큐릭스 등은 최근 법차손이 자기자본의 50%를 넘은 적이 있다.

시장에선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 기업에 대해 '사기가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일각에선 바이오 기업들에 대한 특례요건을 더 꼼꼼히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개발하는 데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기에 당장의 수익성으로 기업을 판단하는 건 어렵다는 취지다.

바이오 기업의 경우 개발 중인 주요 파이프라인 임상시험 연구 경과에 대해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선 거래소 외 평가기관이 바이오 기업의 파이프라인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단 의견도 제기된다. 물론 바이오처럼 각 분야별 차별화된 전문성이 요구되는 산업에서 개별 기업의 파이프라인을 외부 기관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더 고민이 필요하다.

이승규 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기술이전을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라며 "어떤 바이오가 5년 안에 기술이전하겠단 목표라면 중간 과정마다 시장에 진지한 자세로 현재 어떻게 되고 있다는 식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시나 언론 보도 전혀 없이 내부적으로 연구만 하다가 5년 뒤 실패했다고 발표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도윤 기자 justice@mt.co.kr 정기종 기자 azoth44@mt.co.kr 박미리 기자 mil05@mt.co.kr 홍순빈 기자 binih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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