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아메리카드림’은 되고 ‘코리아드림’은 안되고…
1.
지난 15일 밤, 태국의 한 트로트 가수가 인천에서 작은 콘서트를 열려고 했다. 관객 상당수는 불법 체류자였다. 현장을 덮친 인천출입국외국인청 단속반과 경찰은 태국인 불법 체류자 158명을 체포했다. '암 추띠마'라는 가수가 입국 심사과정에서 '콘서트 때문에' 입국한다고 밝혔고, 이를 눈여겨 본 출입국 담당자들이 콘서트 현장을 덮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우리 담당 공무원들의 기지를 칭찬하는 여론과 , '비겁하고 반 문화적인 단속'이라는 주장이 엇갈렸다. '만약 임영웅이 LA에서 공연을 하는데 미국 정부가 기다렸다가 한국인 불법 체류자를 콘서트 현장에서 잡아가면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들까'. 미국에는 줄잡아 20만 명의 한국인 불법 체류자가 있다.
2.
우리에겐 14만 명이나 되는 태국인 불법체류자 중 하나일 뿐인데, 태국인들에게 이들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들이다.
지난 2월 전북 순창에서는 50대 태국인 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불법 체류자들이였다. 추위를 이겨내려고 방안에 불을 피웠다가 가스 중독으로 숨졌다. 그 방은 1년 임대료가 30만 원이었다(월세가 아니다). 온갖 궂은 밭일에서 이앙기, 포클레인 작업까지 하면서 받은 품삯 대부분을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냈다.
지난 3월에는 양돈농장에서 일하던 태국인 근로자 '분추(67)'씨가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역시 10여년 전 입국한 불법체류자였다. 태국 언론은 그가 양돈장 바로 옆 악취나는 방에서 살면서 한 달 5만 바트(19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아 대부분을 가족들에게 송금했다고 보도했다.
"분추 씨는 그 돈으로 고향에서 양계장 사업이 망하면서 진 빚을 다 갚았다. 아들은 대학을 졸업했다. 방콕에 취직한 아들이 3년전부터 이제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그는 한국에서 돈을 더 모아 고향에 양돈농장을 짓고 싶다고 했다. 가족들은 매일 분추 씨와 휴대폰으로 통화를 했다. 아내는 분추 씨가 최근에 새로 들여온 암물소송아지를 보고싶다고 해서 휴대폰으로 보여줬다"
-태국 채널 7 뉴스 중에서
10여년의 타향살이를 뒤로하고 3월 20일 돌아오기로 한 분추 씨는 지난 달 8일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그가 지병으로 숨진 뒤 한국인 농장주가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인 농장주는 기소됐다.
지난 2016년부터 2022년 9월까지 한국에서는 태국인 근로자 695명이 사망했다. 대부분이 불법 체류자다. 그중 264명은 아직 사인을 밝히지 못했다(자료 주한 태국대사관). 로이터통신은 지난 2020년 12월, 한국내 태국 근로자의 잇따른 죽음에 대한 탐사 보도 기사를 냈다.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는 이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고, 유엔 국제이주기구(UN IOM)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는 입장을 냈다. 우리 정부는 관련 입장을 내지 않았다.
3.
과거 우리 '아메리카드림'처럼, 동남아인들에게 한국의 일자리는 꿈같은 존재다. 수많은 청년들이 한국에 갈 수 있는 고용허가제(EPS)시험에 몰린다. 하지만 대부분 한국어 시험에 떨어지고 합격해 구직 등록을 해도 5명 중 1명 정도만 한국 고용주의 선택을 받는다.
결국 코리아드림은 불법 체류로 연결된다. 방콕에는 한국의 일자리를 구해준다는 불법 브로커들이 기승이다. (불법 브로커들에게 속아 인천공항에서 돈만 날리고 돌아오는 태국인들도 부지기수다). 그렇게 한국에는 태국인 불법 체류자 14만여 명, 합법 체류자 2만여 명이 산다.
4.
우리 현대사에도 '아메리카드림'으로 불리는 해외 이주 노동의 역사가 있다. 70년대에는 7,900여 명의 청년들이 독일 탄광에서 탄가루를 마시며 외화를 벌어들였다. 그 세대의 희생이 우리 경제에 밑거름이 된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그때 미국인이나 독일인보다, 한국을 찾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대접을 해주고 있을까.
온라인에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차별과 무시, 혐오의 발언이 넘친다. 이런 인식에는 "이들이 폭력을 저지르거나, 마약을 들여온다" 같은 이유가 따라 붙는다. 한국인은 해외에 불법 체류해도 최소한 불법을 일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태국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는 것은 죄다 한국인이다. 이들의 불법 마사지 업소를 이용하는 소비자도 대부분 한국인이다.
미국에서 한국인을 차별하는 백인들은 "한국인 노인들이 아침부터 커피 한잔으로 웬디스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다가, 나갈 때는 1회용 케첩을 한주먹 들고 간다" 같은 이유를 붙인다. 그렇게 차별과 혐오는 늘 손쉽고 과장된 일반화를 통해 자란다.
5.
불법체류자는 단속해야한다. 이민정책은 엄격해야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우리도 그들이 필요하다는 것과 이제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1971년 102만 명이었던 한국의 신생아 수는 지난해 24만 명까지 줄었다. 물가는 오르고 소득은 높아지는데, 기업은 생산직 하청 노동자에게 (숙련공이라고 해도) 월 3~4백만 원 이상 급여를 지급하는 게 아깝다. 이들은 보다 자유로운 배달 노동시장 등으로 떠나고, 조선소 등 제조업은 결국 사람을 못구해 아우성이다.
그 자리를 누군가 채워야한다. 지금도 새로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취업자의 22%가 외국인이다(고용노동부 2월 고용행정 통계). 우리 새 일자리의 1/5을 외국인들이 채우고 있다. 이러다간 제조업과 물류운송 그리고 상당수 서비스업에도 외국인 고용을 피하기 힘들다. 미국이나 호주처럼 택시기사와 식당 종업원, 가사도우미도 결국 이주 노동자의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편의점에는 이미 태국인 종업원들이 잔뜩 일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단순 외국 인력(E-9) 쿼터를 11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4만여 명 늘리기로 했다. 요즘은 시골가면 농사도 다 외국인들이 짓는다. 정부는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체류기간 연장을 검토중이다. 우리 경제는 이제 그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만 한다. "이 친구들 한국와서 몇년 일하면 자기나라 가서 재벌된다니깐~". 외국인 근로자를 향한 무시와 차별은 여기서 출발한다.
남을 평가할 때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인식 수준과 자세다.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곧 우리의 수준이다. "미개하고 천박한 사람들이 혹시 우리땅을 더럽히는 것은 아닐까...". 우토로 재일동포 마을에 불을 지른 일본인 청년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이념 하나로 히틀러는 총선에서 승리하고 유태인 6백만 명을 학살했다.
타민족과의 동거는 현실이 됐다. 사실 아쉬운 건 우리다. 5천년 역사의 한민족이 이제 남과 섞여 사는 것은 필요 조건이 됐다. 한민족의 피부색이 바뀔 시간이 됐다. 사실 피부색이 뭐가 중한가. 그리고 '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의 말처럼 "인종을 집에 두고 올 수는 없지 않는가"
김원장 기자 (kim9@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 전국 유일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진보당 강성희 후보 당선
- [단독] 체포된 자산가 “피해자에 1억 투자했다 손실”
- 울산교육감에 ‘진보’ 천창수 당선…“중단 없는 교육정책 추진”
- ‘정순신 부실 검증’ 사과…‘거부권’ 여파 곳곳 충돌
- “임신했어요” 말했더니 연락 뚝…또 다른 ‘코피노’들
- 8년 버틴 학폭 소송인데…변호사 불출석해 패소
- 검찰청 앞 ‘핫플’, 원산지 속이다 ‘덜미’
- [제보K] “계속 다닐거면 설거지 해”…선 넘은 ‘퇴직 종용’
- [잇슈 키워드] “내 남편 자리야”…주차장에 냅다 드러누운 아주머니
- 시음하라며 ‘마약 음료’를…강남 학원가 발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