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차원 다른' 여행 목적지 멜버른 ①
(멜버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길고 긴 팬데믹을 뒤로 하고 세계 각국이 여행의 문을 활짝 열고 있다.
여행의 훈풍은 그동안 굳게 닫혔던 남반구 호주 땅에도 불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긴 262일의 봉쇄 조치를 딛고 문을 연 멜버른은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매력으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골드러시'가 만든 도시 멜버른
멜버른은 오늘날 호주를 있게 한 도시다.
호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는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시드니이고, 행정수도는 캔버라다.
그러나 어쩌면 멜버른에서 시작된 '골드러시'가 없었다면 오늘날 호주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라는 데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멜버른 인근에서 시작된 골드러시는 세계 각국 사람들을 호주로 모이게 했고, 멜버른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700척의 난파선 비극과 '호주판 타이타닉' 전설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가운데 하나인 빅토리아주의 십이사도에서 서쪽으로 차로 3분 거리에 위치한 아드 협곡은 1878년 난파한 아드호의 극적인 스토리에서 이름을 따왔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양쪽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을 지나던 아드호는 좌초해 승조원을 포함한 54명 가운데 소년 1명과 소녀 1명 등 단 두 명만 살아남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곳은 절벽이 둘러싼 U자형 협곡이었다.
소년은 절벽을 타고 올라가 구조를 요청, 결국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영화 타이타닉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러브스토리는 없었다는 후문이다.
귀족 출신인 소녀는 영국으로 돌아가고 평민 출신이었던 소년은 호주에 남았다.
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해변은 인적이 무척이나 드문 곳이다.
그런데 이곳은 '난파선 해안'으로도 불릴 만큼 많은 배들이 난파한 곳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배들이 이곳에서 난파한 것일까.
그것은 호주의 '골드러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스토리는 1800년대 골드러시로 되돌아간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야기지만, 호주에도 미국 서부와 유사한 골드러시가 있었다.
찬란한 황금은 역설적으로 피를 부른다.
신화시대부터 부귀와 영화의 상징이었던 황금은 불행과 파멸의 씨앗으로도 묘사돼 왔다.
미 서부 골드러시 때도 황금을 차지하기 위한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호주의 골드러시 때는 황금의 꿈에 젖어 배에 오른 수많은 사람이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수천 척의 배가 호주 남부 해안으로 몰려들었다.
황금을 찾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거센 남극의 파도를 헤치며 지구 반대편의 호주 해변에 도착한 이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 인근의 거센 암초들이었다.
수많은 배들이 암초에 좌초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프린스 타운과 십이사도, 포트 캠벨에서 와남불까지 이어진 '난파선 해안'에는 무려 700척의 난파선이 물에 잠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견된 난파선은 약 240척에 불과하다.
황금을 찾기 위해 떠났던 사람들의 사연은 파도와 함께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멜팅 폿'을 만든 골드러시
멜버른은 팬데믹 기간 세계 최장인 262일간 도시를 봉쇄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의문이 생겼다.
직장인들은 월급이라도 받았겠지만, 자영업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긴 팬데믹 기간을 버텼을까.
빅토리아 주정부는 자영업자들이 충분히 먹고 살 만큼 보조금을 지급해 줬다고 한다.
심지어 외식업체의 경우 정부에서 충분한 보조금을 받으면서 음식도 배달해 이중으로 돈을 버는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봉쇄가 계속되는 동안 많은 사람이 배달주문으로 음식을 시켜 먹었기 때문이다.
호주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빅토리아주는 재원이 풍부한 곳으로 여겨진다.
조그마한 어촌동네에 불과하던 멜버른이 대도시로 급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골드러시가 있었다.
그 근원지는 멜버른 북서쪽에 있는 발라랏이라는 동네다.
이곳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시가 시작됐고, 영국인뿐 아니라 중국인 등 세계 각지에서 황금을 찾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덕분에 멜버른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멜팅 폿'이 됐다.
시내에서 수많은 아시아 음식점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시내에서 트램을 기다리다 한 여성을 만났다.
컬러 렌즈를 낀 탓이었기도 했지만, 아시아계 여성은 외형은 아시아인이었지만 뭔가 다른 독특한 느낌을 줬다.
골드러시 기간 수많은 중국인이 빅토리아주로 넘어왔다.
1861년까지 중국인은 빅토리아주 인구의 거의 7%를 차지할 정도로 늘어났다.
금이 바닥나자 많은 중국인이 시장 정원사나 농장 일꾼 등으로 정착했다.
오늘날 멜버른의 번성에 중국인들의 지분이 분명히 있다는 느낌이다.
리틀 부르크 거리의 차이나타운은 호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2016년 기준으로 빅토리아주의 중국계 인구는 16만 명가량이지만, 중국인들의 이주는 계속되고 있다.
멜버른은 연방 수도가 지금의 캔버라로 옮겨지기 전까지 1901년부터 27년 동안 호주 최대 도시이자 행정 수도로 역할을 해 왔다.
현재는 빅토리아주 인구 635만 명 가운데 멜버른에 사는 인구가 515만 명이라니 멜버른이 곧 빅토리아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남반구 최대 시장 퀸 빅토리아 마켓
첫날 호텔 체크인을 하고 난 뒤 호텔에 슬리퍼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퀸 빅토리아 마켓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거기 가면 모든 것이 있다며….
퀸 빅토리아 시장은 멜버른의 쇼핑 메카 그 이상이다.
멜버른 사람들을 위한 역사적인 랜드마크이자 관광 명소다.
시장은 1878년 3월 20일에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7㏊에 달하는 방대한 면적 덕분에 남반구에서 가장 큰 야외 시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1천 명의 상인들이 이국적인 호주의 과일과 야채, 그리고 지역에서 생산되거나 수입된 고급 음식 재료, 고기, 생선, 가금류에서부터 철물, 의류, 그리고 공예품과 기념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판다.
마켓 투어에 나섰더니 다양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캥거루와 토끼고기 등 호주 특유의 육류도 판매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치즈류와 다양한 먹거리 시식을 마치고 나니 마치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먹은 것처럼 배가 불러왔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이곳이 원래 공동묘지 자리라는 것이다.
세월이 흐른 뒤 상당수가 이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연고 없는 시신 9천여 구가 마켓 아래 묻혀 있다.
과거 골드러시 때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시신이다.
이 중 상당수가 아시아계라고 한다.
가이드 덕분에 7호주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슬리퍼를 3켤레 사서 일행과 나눠 썼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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