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에 빠졌어요 美 다니엘] "미네소타 자연은 웅장, 한국 산은 아기자기"

조경훈 2023. 4. 6.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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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멋진 풍경과 다양한 꽃 피어 매력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설악산의 단풍은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봄이 오면 알록달록 다양한 꽃들이 한국산을 덮어요! 계절별로 달라지는 꽃은 뭐랄까… 자꾸 저를 산으로 부르는 것 같달까요? 다가오는 봄, 꽃을 보러 산에 갈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려요!"

유튜브를 둘러보다 발견한 푸른 눈의 여성. 그녀는 지리산을 굽어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채널에 들어가 목록을 뒤져본다. 흥미로운 여행기와 등산기를 담은 영상들에 눈길이 간다. 그녀는 왜 한국산에 오르게 됐을까? 'KOMERICAN'이라는 채널명으로 유튜브를 운영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한국산에 빠지게 된 미국인 다니엘씨. 왜 산에 가냐는 기자의 질문에 "꽃이 예뻐서…"라며 대화를 이어갔다.

한국에서 처음 본 진달래

2020년 1월 남편과의 결혼을 위해 대한민국으로 날아왔다. 미국 미네소타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자연을 가까이 두고 지냈다.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을 즐겼으며 시간이 날 때면 주립공원에서 트레킹을 즐겼다.

"미네소타는 등산보다는 트레킹에 가까워요. 높은 산이 없고 숲이나 강을 따라 걷는 느낌이에요. 자연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아웃도어 활동을 즐겼어요. 트레킹도 그중 하나였죠."

가을 구룡산은 단풍과 어우러진 서울의 멋진 풍경이 있다.

미네소타에서 트레킹을 하며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여우, 코요테, 사슴, 그리고 심지어 늑대같이 희귀한 야생동물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산과는 다른 매력의 광활한 자연 속에서 자연스레 식물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식물 가꾸는 게 취미예요. 지금도 집에 화분이 엄청 많아요. 평소에는 공부방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틈틈이 약초학을 공부해요. 자라온 환경 탓일까… 어렸을 때부터 식물에 눈이 갔어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온 그녀는 어느 날 문득 답답함을 느꼈다. 높은 빌딩과 사람들을 피해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불쑥 봄이 찾아온 4월, 남편과 함께 연보라색 물결이 푸릇푸릇 고개를 내미는 청계산에 올랐다. 새로운 풍경이 그녀를 찾아왔다.

"연보라색 진달래가 능선을 덮고 있는 모습이 마법 같았어요. 미네소타에는 웅장한 자연과 멋진 단풍들이 있지만 진달래 같은 꽃은 없거든요. 진달래는 처음이었어요. 그날 이후 산에 핀 꽃들이 궁금해졌어요."

진달래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등산에 대한 열정에 불을 지폈다. 그렇게 그녀가 산에 남긴 발자취는 점점 늘어났다

밀양 번지없는 주막에서 먹은 파전과 콩국수! 정말 맛있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은 계절별로 다른 풍경이 있어요. 봄에는 진달래나 철쭉을 보러, 가을에는 단풍과 억새를 보러 산에 올랐어요. 만경대 코스로 설악산에 오른 적이 있는데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단풍이 미네소타 단풍과는 또 다른 매력이었어요. 억새를 보러 황매산에 갔을 때는 금빛 바다를 만났어요.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이 마치 파도가 치는 것 같았어요."

5월 황매산은 억새가 아닌 철쭉으로 뒤덮인다는 걸 아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말요? 다음엔 철쭉을 보러 다시 황매산에 가야겠네요!"라고 답했다.

사람, 도시 그리고 산

"바쁜 일상을 지내다 보면 멀리 떠날 수 없어요. 근데 서울엔 대중교통으로도 쉽고 빠르게 다녀올 수 있는 산들이 많아 좋아요. 구룡산이나 우면산 같이 낮은 산은 힘을 적게 들이고 서울을 발아래 둘 수 있죠. 힘들게 산을 타고 싶을 땐 북한산이나 도봉산을 찾아요. 바위산을 타는 재미가 쏠쏠해요!"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를 옮겼다. 보통 남편과 함께 산에 오르는 그녀는 종종 시부모님과 함께 산행한다. 지난번엔 어머님과 함께 아차산을, 아버님과 함께 구룡산에도 올랐다.

힘들게 올라간 지리산. 선물 같은 구름이 반겨줬다.

"시부모님도 산을 좋아하세요. 어머님은 남편이 엄홍길 대장이라 부를 정도로 산행을 즐기십니다. 경험이 많으셔서 항상 멋진 곳들을 추천해 주세요. 시부모님과 산행하며 나누는 대화와 행동에서 저를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 마음이 느껴져 감사해요. 산에서는 솔직한 마음으로 사람과 소통할 수 있어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친절한 도움을 받았다. 겨울 수락산에 오르다 길을 잘못 들어 한참 헤맸던 적이 있었다. 하산길을 찾지 못해 막막하던 그때 정상에서 만난 81세 할아버지께서 길을 알려주셨다.

"수락산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요. 그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많은 분들이 먼저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셨어요. 친절하신 한국 등산객들 덕분에 쉽게 산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등산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녀는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차분히 대답했다.

"등산은 정신과 신체, 그리고 영혼을 단련시켜요. 산에 오를 때마다 가끔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아요. 예전에 지리산 노고단에 오를 때 남들은 4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2시간 정도 걸린 적이 있어요. 더운 날씨에 물도 없어서 정말 기진맥진했죠. 근데 놀랍게도 노고단에 도착하니 뭉게구름들이 저 멀리 산군 위로 떠다니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거 있죠? 환상적인 풍경이었어요. 산에 오르는 건 힘들지만 그만큼의 보답이 있어요.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정상에 서서 느끼는 만족감은 짜릿해요."

진달래에서 시작된 산과의 인연은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렸다. 아직도 가볼 곳이 많다며 웃는 그녀의 목소리엔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다. 산과 함께 조금씩 단단해지며 성장하는 다니엘씨를 응원한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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