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 라이딩 덕두원] 수도권 라이더들에게 축복 같은 코스
대부분 어릴 적 자전거를 경험한 사람이 많다. 중간에 이런저런 이유로 자전거와 인연이 멀어졌다가 중년이 되면서 취미생활 혹은 건강을 이유로 다시 자전거를 시작하게 된다. 어떤 동기로 시작하든지 안전하게 타고, 능력에 맞도록 운동량을 조절하며,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을 공유한다면 자전거는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덕두원 임도는 춘천에서 시작해 주산을 한 바퀴 돌아오는 37km 여정이다. 입춘立春과 우수雨水가 포진한 맹춘孟春을 지나면 경칩驚蟄과 춘분春分이 들어 있는 중춘仲春이다. 중춘이 되면 수목은 땅속의 물기를 얻어 싹 틔울 준비를 하고 벌레들이 흙 밖으로 나오며 농부들도 논밭에 거름을 내고 도랑을 정비하며 씨앗을 고르는 등 바빠지기 시작한다.
춘천 스포츠타운을 출발해 의암호반을 따라가다가 신연교를 건너 반대편으로 들어서니 오른쪽으로 곧게 선 의암봉이 호수와 어울려 그 경치가 곱고 빼어났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춘천은 물론이고 경기·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북한강을 따라가는 자전거길과 함께 춘천 주변에 흩어진 임도가 그야말로 굉장한 선물이다.
신연교 다리를 건너자 오른쪽으로 돌려 왔던 길과 반대쪽 덕두원 명월리로 방향을 틀었다. 얼마 안 가면 삼악산 등산로 입구와 마주하는데 아직은 이르지만, 상춘의 기분을 찾으려는 듯 간편한 복장에 스틱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등산객들로 분주했다. 덕두원천변 마을길 좌우로 늘어선 좁은 경작지에는 거름들이 쌓여 있고 낮은 지붕의 촌가 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퐁퐁 솟아올랐다.
하지만 본격적인 봄 밭 갈기가 시작되지 않은 이유는 한낮에는 기온이 올라 땅 겉은 제법 푸석하지만 그렇다고 괭이질을 하기에는 이르다. 아직 땅 속은 얼어 있기 때문이다. 경칩이 지났는데도 아직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까닭은 지난겨울 추위가 다른 해보다 길고 엄혹해 개구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반 오르막 가팔라, 정상은 석파령
덕두원 삼거리에서 석파령席破嶺둘레길, 또는 석파령너미길로 방향을 잡으면 그게 바로 덕두원 임도다. 처음 가는 사람도 길 안내판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원래 춘천이 분지인 데다가 한번 식은 공기가 잘 데워지지 않기 때문에 유난히 겨울이 춥다. 높이 오를수록 양지는 땅이 마른 데 반하여 음지에는 겨우내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아 봄과 겨울 분위기를 동시에 품었다.
사실 겨울에는 밖에서 자전거를 탈 수 없기에 쉬고 있다가 갑자기 오르막에서 근육을 가동하면 금방 지치고 심하면 근육 경련이 일어나기 쉽다. 따라서 자전거 기어비를 가장 쉽게 해야 하며 그래도 힘에 부치면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야 한다. 더 좋은 방법은 겨울에도 실내에서 평로라 같은 자전거 보조 운동기구를 이용해 땀을 흘리는 것이다.
가까운 응달은 물론이고 멀리 계관산과 주변의 높낮이가 다른 산꼭대기에는 아직도 희끗희끗 쌓인 눈이 보였다. 잠깐 자전거를 세우고 도랑으로 내려가 소에 가라앉은 낙엽을 들추면 양 옆구리에 알을 품은 숲 개구리들이 꼬무락거렸다. 휘익 햇빛으로 달궈진 공기가 부풀어 오르면서 바람을 만들면 바닥에 누워 있던 낙엽들이 한쪽으로 달아나니 그때서야 비로소 숲이 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덕두원 임도는 고도표에도 나와 있듯이 크게 초반부의 오르막과 후반부의 내리막이 있으며, 그 사이에 마치 출렁다리를 타고 가듯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능선의 형태를 닮고 있다. 그러니 처음 자전거를 타시는 분들에게는 알맞은 길이다. 특히 계관산 삼악산을 연결해 주변으로 퍼져나간 산줄기가 수려하고 장관이다.
"벌써 두 번째네."
석파령에 도착해 내가 운을 떼자 집사람(이은실 싱가포르 자전거여행 필자)은 석파령 유래를 적은 안내판을 읽느라 대꾸도 하지 않았다. 모두 자전거를 세우고 고개 좌우로 망망하게 펼쳐진 산줄기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높이가 있다 보니 오를 때 힘을 쓰느라 땀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식어 배낭에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어야 할 정도였다. 초봄에 산을 탈 때는 반드시 바람막이를 준비해서 쉴 때나 내리막에서 급격하게 체온이 떨어지는 걸 방비해야 한다.
춘천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고개이니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겠는가. 안내판에 적힌 대로 아무려면 부임하는 관리와 퇴임하는 현감이 춘천에 있는 관아를 놔두고 굳이 이 고개에서 만나 자리를 깔고 공적인 업무를 인수인계했겠는가. 모두 후인들의 입담으로 보태진 전설이고 혹 부임하고 퇴임하는 현감이 우연히 이 고개에서 만났다면 상대방에게 약간의 도움 되는 말로서 가늠했을 것이다.
고개 좌우로 층층나무와 굵은 신갈나무가 빽빽한 한가운데로 등산꾼들 흔적이 길게 이어진 걸 보니 한겨울에도 사람들이 들락날락한 것 같았다. 석파령을 출발하자 가파른 오르막 대신 비교적 평평한 길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고도가 300m 이상이다 보니 응달에는 당연히 눈이 덮여 있었다.
차라리 눈 위를 달릴 때는 문제가 없으나 녹았다가 언 곳이나, 특히 완만한 내리막에서는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눈 위에서 타는 요령은 마치 언덕 오를 때처럼 기어비를 쉽게 놓은 뒤 케이던스(1분당 페달을 밟는 횟수)를 높여 눈밭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빙판이 섞인 길에서 자신이 없으면 내리는 게 상책이다.
'산 동백 노란 꽃봉오리는 아직도 추위를 견디는 중인데, 계곡 얼음장을 녹인 바람은 숲에서 일렁대고, 다래 덩굴과 동행한 층층나무는 잣나무 그늘에 가렸네. 숲에서 날아오른 새들이 날개를 털어 소리를 내는 것은 짝을 찾는 노래이고, 피나무 가지가 윤기를 내는 것은 잎을 내기 위함이라네.'
이해할 수 없는 국립공원 자전거 봉쇄 정책
자전거에 의지해 넋 놓고 숲길을 달리다 보니 이런저런 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숲을 차지한 수종 대부분 가래나무와 신갈나무, 피나무, 층층나무 등 낙엽 교목이 주종인지라 강원도 임도에서 흔히 마주치는 잣나무 일색인 숲보다 훨씬 따뜻하고 다감한 느낌을 줬다.
작은 물결처럼 산줄기 너머에 구불구불 건너가는 또 다른 산줄기를 볼 때마다 '아! 우리 강토는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과연 어울리는 수식어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임도 중간쯤 오면 새로 낸 임도와 갈라지는 포인트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오른쪽 신설 임도로 들어섰다. 여러 가지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임도는 대부분 산불관리를 위해 겨울과 봄에는 출입을 제한한다.
하지만 늦은 봄부터 가을까지 몇몇 경관 수려한 국립공원 임도는 자전거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홍천군 내면에서 월정사로 가는 오대산 임도인데 사람이나 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임도지만 자전거는 안 된다.
백담사로 들어가는 포장도로도 유독 자전거 통행을 막는다. 아마 국립공원 관리들 생각에는 자전거가 자연 식생과 도로를 파괴하고 교통을 방해하며, 걷는 사람들에게 불편함과 위험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면 산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그냥 밉고 기분 나쁘기 때문일까?
길어진 해가 산 능선에서 서쪽으로 기울어지자 짙은 그늘을 드리운 계곡이 컴컴해지기 시작했다. 물이 오르기 시작한 활엽수들이 그늘이 깊어지며 기온 차로 생긴 바람에 가지를 들썩이면서 숲 가장자리로부터 요동치기 시작했다.
덕두원 임도의 큰 장점은 고도를 높인 후 긴 능선을 비교적 무리 없이 주변 산세와 숲을 동시에 즐기며 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주변에 뚜렷하게 높은 봉우리가 없이 고만고만한 높이의 봉우리가 산맥 날등에 얹혀 마치 광대무변한 숲에 불시착한 느낌을 준다.
그러니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적된 잡념을 태워버리고 인간관계의 복잡함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고 싶다면, 특히 수도권에 사시며 자전거를 즐기시는 분들은 춘천 오는 경춘 열차에 자전거를 싣고 오시면 된다.
그리고 임도를 한 바퀴 돌고 나신 후 춘천 명물인 닭갈비나 막국수를 곁들인다면 귀가하는 열차 안에서 꿈도 없는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혼자가 가장 좋으며 둘이면 적당하고 셋이면 그럭저럭 유쾌하다.
춘천에 도착해 삼천동 큰마당 막국수 집에서 정성껏 내놓은 막국수를 먹고 난 후 오늘 돌아본 덕두원 임도에 관한 후담을 나누다 보니 다음에 갈 임도는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몸이 유쾌하면 정신은 함께 시원해진다. 산을 오르는 운동이야말로 건강한 몸을 만들고 더불어 정신을 튼튼하고 건전하게 기르는 최선이다. 물론 자전거와 함께라면 금상첨화이다.
맛집
춘천 큰마당 막국수(033-244-2775)
40년 전통의 막국수 맛집. 일반 주택을 개조한 허름한 식당 분위기에서 맛집의 전통을 느낄 수 있다. 막국수(8,000원)의 고장에서도 현지인이 인정하는 식당답게 메밀 비율이 적당하며 양도 많다. 동치미 국물을 살짝 넣어서 비비면 더 감칠맛이 난다. 막국수와 편육이 함께 나오는 세트메뉴(1만7,000원)도 있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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