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다고 빠지지 말라, 모르페우스의 ‘모르핀’[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31)
세상에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름대로 한 가지 이상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부자면 부유한 대로. 누구나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행복보다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인생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게 인간의 욕망이다.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은 각자의 나름대로 술이나 운동, 모임 등을 통해 풀고 있다. 모든 사람이 그런 방법을 택하지는 않는다. 편안하게 심심한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은 마약이나 대마초 등 위험한 방법을 사용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스신화에서 현실의 공포를 잠재우는 신이 모르페우스다. 모르페우스는 잠의 신인 힙노스와 3명의 아름다운 여신 카리테스 중의 하나인 파시테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잠의 신 힙노스가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지팡이를 흔들면 신이든, 인간이든, 자연이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모르페우스는 아버지 힙노스가 사람들을 잠에 빠지게 하면 그는 잠을 자지 않고 외모나 목소리 그리고 걸음걸이까지 완벽하게 사람을 흉내 내 사람들이 꾸는 꿈속에 나타났다.
모르페우스의 집에는 상아로 만든 문과 뼈로 만든 문 2개가 있다. 모르페우스가 상아로 만든 문으로 나오면 기억에 남는 꿈을, 뼈로 만든 문을 나오면 기억하지 못하는 꿈을 꾼다는 뜻이다.
또 모르페우스는 잠뿐만 아니라 현실의 고통을 잠재우는 몽롱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모르페우스의 상징은 아편의 재료가 되는 양귀비 열매이며, 1804년 처음으로 추출에 성공한 아편 제제에는 모르페우스의 이름을 따서 ‘모르핀’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모르페우스가 사람들 몸에 들어가 있으면 사람들은 무기력해진다. 잠에 빠져 무기력한 생활을 하는 인간들을 깨우기 위해 신들은 무지개를 만들어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신들의 전령인 이리스를 보내곤 했다.
잠들어 있는 모르페우스를 깨우는 이리스를 그린 작품이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1774~1833)의 ‘모르페우스와 이리스’다.
양귀비 화관을 쓴 모르페우스가 침대에서 편안하게 잠들어 있다. 큐피드가 어둠의 장막을 걷자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가 헤라 여신의 명을 받고 모르페우스를 깨우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게랭의 이 작품에서 모르페우스가 잠에 빠진 것은 사람들 꿈속에 나타나는 일을 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모르페우스의 오른손이 올라가 있는 건 이리스의 조정에 의해 잠에서 깨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게랭은 밤의 이미지보다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초월한 이상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누구나 인생의 고통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운명을 극복하는 쉬운 방법은 없다.
박희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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