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세부 - 일반인의 잠수 한계[박수현의 바닷속 풍경](27)
지구 대기의 78%를 차지하는 질소는 두 얼굴을 가진 기체다. 대기압에서는 인체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분압이 높아지면 슬금슬금 인체에 녹아들어 조직을 괴사시키는 잠수병을 유발한다. 질소 분압이 4기압이 되는 수심 30m 지점에서는 질소 마취를 불러올 수 있어 일반인들의 레저 다이빙은 수심 30m를 한계 수심으로 규정하고 있다.
2001년 수심 308m에 도달해 인류 최초로 300m 수심을 돌파한 세계 최고의 스쿠버다이버 존 베넷(영국)이 2004년 3월 15일 서해에서 실종됐다. 전북 부안군 해역 수심 64m 지점에 침몰한 선박 사고조사를 벌이던 중 발생한 사고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30m가 넘는 수심에서 오는 질소 마취로 의식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강한 조류에 휩쓸리고 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질소 마취가 30m 이하에서 모든 사람에게 오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내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험이 풍부한 다이버라도 그날 컨디션에 따라 질소 마취가 오기도 하고, 괜찮은 경우도 있다.
숙련된 다이버는 30m 수심 아래로 내려가야 할 때는 수심 25m 지점부터 준비를 한다. 물속에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구구단도 외어 보는 등 몸의 상태를 점검한다. 이때 상태가 좋지 않다고 판단되면 얕은 수심으로 상승해야 한다. 얕은 곳으로 올라오면 수압이 낮아지므로 질소분압을 떨어뜨려 질소 마취 현상이 사라지게 된다. 질소 마취는 그 상황만 벗어나면 후유증은 없다.
보다 깊은 수심에서 오랫동안 체류하기 위해 공기탱크에 질소를 대신해 헬륨을 혼합하는 테크니컬 다이빙 교육이 최근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필리핀 세부를 찾은 여성 다이버가 테크니컬 다이빙 훈련을 하고 있다.
박수현 수중사진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