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감사원 ‘금감원 갑질’ 들여다본다
감사원이 금융감독원의 금융기관들에 대한 검사(檢査) 절차 전반의 적법성을 들여다보는 감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은행·증권사·보험사 등 금융기관들을 검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금융기관들에 영업정지나 임직원 징계 요구 등의 제재를 내릴 권한을 갖고 있다. 이런 금감원이 적법한 절차를 갖추지 않은 채 금융기관들을 자의적으로 검사·제재하는 ‘갑질’을 해온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5일 “지난해부터 진행한 금감원에 대한 정기감사 과정에서 금감원의 금융기관 검사·제재 절차에 문제점이 다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올 하반기에 이 부분을 별도로 집중적으로 감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르면 오는 7월부터 ‘금융기관 검사 규정 및 프로세스 개선’ 감사를 위한 사전 조사에 착수해, 연말쯤 본격적으로 감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감사원은 금감원의 검사 절차가 감사원·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 등 금감원과 유사하게 조사 업무를 하는 다른 정부 기관들에 비해 허술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정부 기관들의 조사 절차는 대개 법령으로 정해져 있지만, 금감원은 관련 법에 금융기관들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권이 있다고 돼 있을 뿐 조사 절차에 대해서는 정해져 있는 것이 없다. 금감원의 금융기관 검사·제재 절차는 금감원장이 참여하는 금융위원회에서 만든 규정을 따른다. 그러다보니 금감원이 구체적인 법적 근거도 없이 멋대로 규정을 만들어 금융기관들에 대해 사실상 강제 수사에 가까운 행위를 해 왔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 4일 공개한 금감원 정기 감사 보고서에서 금감원이 금융기관의 금고나 장부, 물건 등을 봉인(封印)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 조항이 없는데도 봉인 조치를 해 왔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금융기관이 제출한 자료를 금감원이 다루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컴퓨터 저장 매체나 휴대전화 등에서 확보한 디지털 자료가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되려면 적법한 절차를 따라야 하고, 확보한 뒤에도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 그러나 금감원은 관련 절차와 방법에 대한 규정이 아예 없는 상태에서 디지털 포렌식을 해 왔다는 것이다. 또 확보한 자료가 금감원 내에서 변조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는 조치도 없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원은 금감원의 검사 실무자가 작성한 금융기관 검사 보고서를 금감원 고위 직원들이 심의해 금융기관을 제재하는 절차에도 결함이 있다고 봤다. 제재심의국장과 부원장보, 부원장 등에게 전달되는 검사 보고서에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증거 자료들이 첨부되지 않고 있고, 그러다보니 금감원 간부들이 검사 실무자가 내린 결론에 오류가 없는지 검증하지 못한 채로 제재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감원이 검사 실무자 판단대로 금융기관을 제재했다가 법원에서 제재가 취소되거나 내용이 바뀌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감사원은 금감원의 이 같은 행태가 금융기관에 대한 ‘갑질’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 2월 올해 감사 계획을 발표하면서 “금융감독 등 기업에 대한 권력적 행정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저해하거나 불필요한 규제를 양산하는지 점검하겠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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