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포럼] 진인사(盡人事) 세렌디피티(Serendipity)
(부산ㆍ경남=뉴스1) 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 원장 = 미국 뉴욕의 첼시를 방문하면 다양한 편집 샵을 만나볼 수 있다. 편집 샵은 한 가게에 두 가지 이상의 브랜드 제품을 모아서 판매하는 곳이다. 특정 아이템의 모든 브랜드를 한 곳에 갖춰놓거나, 여러 패션 아이템을 한 장소에 진열해 전체적인 코디네이션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편집 샵 얘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스토리'라는 독특한 이름의 편집 샵을 소개하고 싶어서다. 이곳은 매장명 그대로 다양한 주제를 통해 제품에 담긴 '스토리'를 고객에게 전달한다. 요리, 건강, 여행 등 우리 생활 속 소재로 이야기를 꾸며 그에 알맞은 제품을 판매한다.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과 함께 속옷, 향초 등을 함께 준비하고, 화려한 '색상'을 주제로 할 때면, 무지개 디자인을 머금은 머그잔, 노트, 각종 액세서리 등을 준비하는 것이다. 매장의 로고는 주제의 확장성을 고려해 'ST[ ]RY'라고 적는다고 하니, 비워진 괄호 안에 또 어떤 주제가 들어갈지, 앞으로 그 매장이 어떤 스토리로 가득 채워질지 무척 궁금하기까지 하다.
세계는 지금 그 새로운 '스토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다름 아닌 세계 에너지 전환 흐름의 가속화 얘기다. 한때 에너지 업계에 '블랙스완'이 아닌 '그린스완'이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블랙스완은 가능성이 작지만 큰 파급력을 가진 변수를 말한다. 반면 그린스완은 기후변화로 인한 경영 환경의 급변을 의미한다. 많은 기업이 시대 변화에 발맞춰 ESG경영 도입을 준비하면서 '그린스완을 예측하고 대응하는 기업에 기회가 올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에너지 패러다임의 전환에 산.학.연.관이 어떻게 대처할지도 커다란 관심사다.
기후변화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고자 195개 국으로 구성된 범 정부 협의체가 발족했다. 이들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바로 '인간'이라고 아예 못을 박았다. 이전까지 그 현상과 원인에 대해 여러 가설이 난무했지만, 이제는 우리 인간이 지구온난화의 명백한 주범이고 지금 우리가 이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면 곧 재앙이 다가올 것임을 분명하게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인류를 설득할 '스토리'를 담아내는 엄청난 편집력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재료연구원은 그린에너지 생성을 위한 나노융합기술과 희토류 계 영구자석기술을 통한 뉴 모빌리티 기술 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는 정보통신, 바이오, 기계, 환경, 에너지 분야 등 기존 기술의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기존 기술과 융합해 새로운 기능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만드는 신성장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급속 충전 배터리로 단 5분만 충전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전기자동차, 수소로 움직이는 자동차, 현재 반도체의 100분의 1만큼의 전력 만을 소모하는 저 전력 인공지능 칩, 그리고 전기 공급이 필요하지 않은 에너지 자립형 주택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러한 기술이 환경오염을 줄이고 자연 친화적인 '탄소중립' 사회를 실현하는데, 공감 가능한 '스토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미국의 명배우 '존 쿠삭'이 주연을 맡은 영화 <세렌디피티>(2002)에서 우리는 반복된 우연이 뜻밖의 행운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접할 수 있었다. 과학 분야에서는 실험 도중 실패를 통해 얻은 결과에서 중대한 발견 또는 발명을 하는 걸 '세렌디피티'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야말로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준비한 후,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 사실 알고 보면 모든 우연과 결과는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행하고 기다릴 때 비로소 나타나는 법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진인사(盡人事) 세렌디피티(Serendipity)'다.
victiger3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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