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카시 유족이 한국에 온 이유
일본 효고현 아카시시 육교 압사 사고 유족들이 3월16일부터 18일까지 2박3일간 한국을 찾았다. 시모무라 세이지 씨(65·아카시 육교 희생자 모임 회장)와 미키 기요시 씨(54)다. 이번 초청은 세월호 참사 유족을 비롯한 재난 피해자들의 연대를 지원하는 4·16재단,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 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5개 단체가 공동으로 주관했다.
이들은 아카시 유족을 초청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재난 참사 피해 가족이 자신의 경험을 그 이후 발생한 다른 참사 피해 가족에게 전하는 과정 그 자체가 마음 깊은 공감, 지지와 연대의 힘이 됩니다. 아카시 유족과의 만남은 10·29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향후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힘든 과정에 지침이 되고, 9주기를 앞둔 4·16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도 유의미한 선례이자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시모무라 씨는 “이태원 사고 영상을 보는 순간 22년 전 사고 당시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우리가 더 열심히 재발 방지 활동을 했다면…’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저희들이 해온 일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슬픔을 나누고자 방문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번 방한은 올해 1월 일본을 현지 취재한 〈시사IN〉 기사 ‘2001 아카시 유족이 2022 이태원 유족에게’ https://www.sisain.co.kr/49488 가 계기가 되었다. 〈시사IN〉은 언론사 중 유일하게 모든 일정을 동행 취재했다. 그 현장을 전한다.
3월17일 오전 9시 서울시청 앞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전날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일본 효고현 아카시시 육교 압사 사고 유족 시모무라 세이지 씨와 미키 기요시 씨가 3월17일 오전 9시께 서울시청 앞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도착했다. 아카시 참사 유족들은 희생자들의 영정 앞에 미리 준비해온 국화로 헌화하고, 분향을 한 뒤 두 손을 맞잡고 눈을 감았다. 이어 분향소에 마중 나온 이태원 참사 유족들과 대화를 나눴다.
희생자 정주희씨의 어머니 이효숙씨:상상도 못했는데 어느 날 벼락을 맞은 것 같아요. 다시는 10·29 이전의 행복이 올 수 없을 것 같아요.
시모무라 씨:거기에서 시간이 멈춰버리죠. 저희도 똑같아요.
이효숙씨:너무 예쁘고 귀하고 소중한 우리 아이들, 진짜 혼신을 다해서, 영혼을 바쳐서 키워왔는데 하루아침에 별이 되어서 사라졌어요. 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요.
시모무라 씨:(그 마음을) 정말 잘 압니다.
미키 씨:20년 이상 지나도 저는 아직 같은 마음입니다.
2001년 일본 아카시 육교 압사 사고로 어린이 9명과 여성 노인 2명 등 총 11명이 숨졌다. 시모무라 씨는 당시 두 살이던 둘째 아들 도모히토, 미키 씨는 여덟 살 둘째 딸 유이나를 잃었다.
희생자 송채림씨 아버지 송진영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부대표:국적을 떠나, 같은 아픔을 가진 분들끼리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시모무라 씨:반대로 저희도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과 교류할 수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국경 같은 건 관계없습니다. 어느 나라나 똑같아요. 아이에 대한, 부모에 대한, 가족에 대한 소중한 마음에 국경은 없습니다.
송진영 부대표:이런 사회적 참사는 국가나 이념에 관계없이 인권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인권의 문제로 정치인 같은 힘 가진 사람들이 풀어갔다면, 아카시도 어렵게 20년씩 걸려서 풀어야 할 숙제는 아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모무라 씨:앞으로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지원하고 의견을 교환해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을 시작으로요. (…) 너무 애쓰지는 마세요. 긴 싸움이 될 테니까, 건강 조심하세요.
3월17일 오전 10시30분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옆 참사 현장
“짧다(みじか)”(미키 씨)! “정말 이렇게 짧다니… 말도 안 돼”(시모무라 씨).
아카시 참사 유족들이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탄식을 내뱉었다. 시모무라 씨는 “일본에서 영상으로 본 것보다 경사가 가파르고 폭도 좁은 데다, 길이가 너무 짧다”라며 놀라워했다. 미키 씨도 “이런 골목에서는 (일방통행 등 적절한 조치 없이) 누군가가 넘어지거나 하는 계기가 있으면 '군중 눈사태'가 일어나는 건 너무도 당연할 것 같다”라고 공감했다. 군중 눈사태란, 밀착된 군중끼리 서로를 떠받치고 있던 균형이 어떤 이유로 무너지면서, 버팀목을 잃은 군중이 한꺼번에 쓰러지는 현상을 말한다. 아카시 참사와 이태원 참사에서 공히 일어난 현상이다. 두 참사의 유족들은 압사 사고가 일어난 해밀톤호텔 옆 골목을 올라가 세계음식거리가 있던 언덕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희생자 최유진씨 아버지 최정주씨:그날 여기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는데 일방통행 관리가 안 되었어요.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이 골목으로 올라오는 사람도, 내려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사실은 위에서 내려가는 사람들이 밑으로 빠졌어야 하는데, 차도로 못 나가게 막으면서 피해가 커졌죠. 여기서는 사람들이 그 사정을 모르니 밀게 되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쓰러지지 않고 끼어서 선 채로 희생된 분도 많습니다.
송진영 부대표:병목 현상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이렇게 (발이 땅에서) 붕 떠버리는….
미키 씨:아카시 육교도 같은 현상이에요.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2m 높이로 산처럼 쌓여서 밑에 깔린 분들이 돌아가셨어요.
최정주씨:현장에서 경찰이나 소방이 제대로 된 통제를 했다면 적절한 구조나 치료가 시행돼서 많은 아이들이 살았을 텐데, 그런 책임 있는 지휘가 없었어요. 아직 심장이 뛰거나 호흡이 붙어 있던 아이들이 적절한 대처를 받지 못해서 생명을 잃은 경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모무라 씨:저희 사고도 구급차가 올 때까지 1시간 정도 걸렸어요. 똑같네요. (…) 이 정도로 가파르면 누가 밀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니에요.
송진영 부대표:아카시도 처음에 누가 밀어서 그랬다는 얘기가 나왔다가 잘못된 것으로 해명되었잖아요. 저희도 똑같았어요. 토끼 머리띠를 한 사람이 밀어서 그랬다고. 나중에 사실이 아니었던 걸로 밝혀졌는데, 그걸 진실로 아는 사람이 지금도 있어요. … 또 아카시는 (경찰이) 폭주족 단속에 집중하고 우리는 마약수사에 집중하면서 인파 관리가 안 되었죠.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시모무라 씨는 ‘현장을 보니 어떤가’라는 NHK 기자의 질문에 “110(일본의 112) 신고도 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방치되었는지 너무나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3월17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
두 사람은 ‘재난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피해자들의 노력’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로 이동했다. 이 토론회는 앞서의 다섯 단체와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 13명이 공동주최했다.
시모무라 씨는 2001년 7월21일 아카시시 육교 사고가 일어나고 12일 뒤인 8월2일 아카시시가 설치한 사고조사위원회를 소개했다. 법학, 위기관리, 재해·구급의학 등 각 분야 전문가 6명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조사 기구다. 유족들은 불꽃축제를 주최한 당사자인 아카시시가 만든 사고조사위원회가 불안해 유족 방청을 요청했다. 방청은 관철하지 못했지만, 위원회는 유족들에게서 현장 상황을 청취했고, 그때까지 유족들이 모은 증언과 자료도 보고서에 반영했다. “(반년 만인) 이듬해 1월30일, 우려와 달리 내용이 충실한 보고서가 발표됐다. 아카시시와 경찰에 대한 제언, 사고 메커니즘 분석이 포함됐다. 유족이 납득할 수 있는 조사가 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보고서에 대한 설명회를 요청했고, 이것도 실현할 수 있었다.”
이어 15년에 이르는 민형사 재판 과정을 설명했다. 2005년 민사재판에서 유족이 전면 승소했으나, 형사재판 도중 아카시시 경찰서장은 사망했고 부서장은 강제 기소까지 했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책임을 묻지 못했다. 그럼에도 재판 과정에서 사실관계가 상당 부분 밝혀졌다. 2012년에는 국토교통성에 대중교통 사고 피해자 지원실이 설치되었고, 시모무라 씨는 이곳 어드바이저로 교통사고에 한정하지 않고 여러 사고 유족을 돕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4월23일에는 홋카이도 시레토코라는 지역의 관광 유람선이 침몰해 20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되었는데, 그 유족들도 지원하고 있다. 시모무라 씨는 “여기 계신 국회의원들께, 진상규명과 함께 유족의 마음을 케어하는 시설이나 창구를 국가 주도로 만들어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당부했다.
“이런 자리에 올 때는 항상 딸을 데려와서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미키 씨는 딸 유이나의 사진을 꺼내며 사고 당일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태원,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하나둘 울기 시작했다. “그게 마지막 추억이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유이나는 축제나 불꽃놀이, 야시장을 좋아하니까,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갔습니다. … 점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압박감과 더위를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유이나에게 ‘괜찮아?’라고 묻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어른도 괴로운데 어린아이가 참느라 힘들겠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힘내자고….” 미키 씨가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하자, 희생자 이지한씨 아버지 이종철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대표가 가만히 미키 씨 어깨에 손을 올렸다.
희생자 김수진씨 아버지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인사말에서 “22년 전 일본 아카시시 육교 참사, 9년 전 세월호 참사, 5개월 전 이태원 참사는 시간과 장소, 형태는 달라도 똑같은 것 같다. 제대로 된 현장 통제와 구조가 이뤄지지 못했다. 국가가 책임을 회피해 자식 잃은 유족이 나서야 한다는 점도 같다. 아프지만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또 다른 시민들이 유가족이 된다는 마음으로, 참사는 우리로 끝내자는 마음으로 연대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오후 4시부터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시모무라 씨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이 미흡했다고 보는지’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희가 한국의 법 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아주 조심스럽습니다만, 한국 정부가 유족분들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있다, 제대로 대응을 안 하고 있다고는 느껴집니다.” 한국 취재진에게도 “정치적인 색깔을 입히기 전에, 먼저 유족분들의 고통을 제대로 전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3월18일 오전 10시 서울 정동 민주노총 12층 중회의실
이태원 유족들과 아카시 유족들, 민변 변호사 등이 간담회를 가졌다. 이종철 대표는 “저희들이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길을 어제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쉽지 않은 길이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지만 더욱 절실히 느끼는 하루였다”라고 말했다. 미키 씨는 아카시 참사로 두 아이를 잃은 아리마 마사하루 씨의 메시지를 전했다. “응원하는 분들도 반드시 있을 테니, 차근차근 앞을 향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지난해 7월 아리마 씨와 유족 시라이 요시미치 씨가 중심이 되어 펴낸 책 〈아카시 육교 사고 재발 방지를 바라며〉도 소개했다. 민사재판 때 제출한, 미키 씨 딸 유이나가 남긴 감사장 문구 ‘지금까지 길러주셔서 감사해요’에 간담회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이어서 사고조사위원회와 재판 과정에 대한 구체적 질문이 쏟아졌다. ‘희생자들에 대한 사회적 비하는 없었나’라는 질문도 나왔다. 시모무라 씨가 “저희 때도 집에 전화나 편지가 하루 30건씩 왔다”라고 답하자 모두 같은 마음으로 안타까워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TV에 나올 때마다 비방을 받는다. 가족을 위해 진상규명하는 게 목적인데 돈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냐는 오해는 일본에서도 있다. 괴롭지만, 가장 힘든 건 죽은 아이이기에 어떻게든 견뎠다. 요즘은 SNS에서 비하가 심한데, 국가에 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뾰족한 방법이 없다. 서로 아픔을 아는 유족들끼리 연대해갑시다(시모무라 씨).” 간담회가 끝나고 이태원 유족들은 보라색 별이 그려진 배지를 아카시 유족들의 가슴에 달아주었다. 두 참사 유족이 손을 맞잡고 웃었다.
3월18일 오후 1시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을 찾았다. 딸 진윤희씨를 잃은 김순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은 광화문광장 공사로 기억공간을 임시로 이곳으로 옮겼는데, 서울시의회와 합의한 기간이 끝나 철거를 요청받고 있다고 전했다. 시모무라 씨는 “(단원고) 희생자들이 우리 큰아들과 같은 나이다. 아이가 수학여행을 막 다녀온 뒤에 세월호 참사 영상을 보고 마음의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육교 사고 때 같이 데려갔다가 살아남은 아이인데, 어리지만 그때 기억이 되살아났나 보다. 손 모아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이해한다”라고 위로했다. 이들은 자리를 옮겨 인근 성공회빌딩에서 약 1시간 대화를 나눴다. 아들 신호성씨를 잃은 정부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은 착공만을 남겨둔 경기도 안산 4·16 생명안전공원 건립이 물가상승으로 어려움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두 사람은 아카시의 경우 육교 사고 현장에 위령비를 설치했다는 경험을 나눴다.
두 사람은 이날 오후 5시30분 김포공항을 출발해 일본 간사이 공항에 7시5분 도착했다. 미키 씨는 이번이 첫 해외 방문이었다. “여러 면에서 마음이 통해서 좋았습니다. 문화나 정치나 법률 등 일본과는 여러 가지로 다를지도 모르지만, 뭔가 협력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유족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사고나 사건의 유족과 함께 협력해서 세상을 바꿔나갑시다(미키 씨).” 시모무라 씨는 한국 여행을 서른 번 넘게 왔고, 한국 요리를 좋아하며 재일조선인 친구도 많다고 했다. “유족, 지원 단체 여러분이 따뜻하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우리 아카시 육교 참사 유족들에게도 국가 권력과 법의 벽은 높고 두꺼웠습니다. 앞으로도 아직 고난의 길은 계속되겠지만, 포기하지 말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 함께 서로 지지하면서 열심히 해갑시다. 한국이 더 좋아졌어요. 또 꼭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시모무라 씨).”
※이태원 참사 2차 피해 우려가 있어 이 기사의 댓글 창을 닫습니다.
글 전혜원 기자·사진 신선영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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