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발 의식했나… 대만 총통·美 하원의장 ‘역대급 만남’ 비공개로

이우중 2023. 4. 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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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증폭 우려 ‘로키 전략’ 택해
방미 차이잉원, 매카시와 LA 인근 회동
臺 지도자와 마주한 美 최고위급 기록
RFA “공화·민주당 하원의원 17명 동석”
차이, 중미서 中의 민주주의 위협 강조
온두라스 단교 이후 ‘도미노 효과’ 우려
“中이 우의 훼손 … 함께 노력하자” 역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미국 권력서열 3위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을 5일(현지시간) 만난다. 이는 대만 역대 지도자가 만난 미국 정치인 중 최고위급 인사로, 회동은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비공개로 이뤄진다.

연합보와 자유시보 등 대만 언론은 차이 총통과 매카시 의장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에서 비공개 회동을 진행하며, 회동에 이어 언론 성명 발표와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다고 4일 전했다.
중남미 수교국 찾은 차이 총통 4일(현지시간) 대만의 수교국 벨리즈를 찾은 차이잉원 대만 총통(가운데)이 지역 여성들로부터 받은 벨리즈·타이완 양국 국기와 맞잡은 손이 수놓인 선물을 들어 보이며 미소를 짓고 있다. 지난달 말 미국을 경유해 중남미 우방국인 과테말라와 벨리즈를 순방한 차이 총통은 5일 귀국길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들러 캐빈 매카시 하원의장과 회동했다. 벨리즈시티=AP연합뉴스
대만 측은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회동을 비공개로 진행하되 논의된 내용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자세히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차이 총통은 중미 과테말라와 벨리즈 방문에 앞서 경유한 뉴욕 방문에서도 리더십어워드를 수상한 뒤 비공개로 연설했다.

애초 차이 총통과 매카시 의장의 회동 장소는 대만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매카시 의장이 취임 전부터 대만을 방문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매카시 의장의 대만행이 점쳐졌었지만, 중국의 대규모 반발을 고려해 차이 총통이 미국을 찾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미국 내 일정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로키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차이 총통과 매카시 의장의 회동에 미국 공화·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17명도 동석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대만과 미국 사이의 공식 수교는 1979년 미국이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끊어졌지만 양국은 꾸준히 비공식적인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역대 대만 총통들과 미국 정치인들의 비공개 회동도 이 중 일부로, 2013년 마잉주(馬英九) 당시 총통은 중남미 순방길에 미국 뉴욕에 들러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 등과 만난 바 있다.
다만 친중파로 알려진 마 총통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애쓴 것으로 알려졌고, 중국은 당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2000년에는 천수이볜(陳水扁) 당시 총통이 중남미 순방 중 미국에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비밀리에 만났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지만 미국과 대만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 바 있다.

중국은 전날 마오닝(毛寧) 외교부 대변인 정례브리핑을 통해 “중국 측은 미국 측이 차이잉원의 경유 형식 방미와 미국 의전 서열 3위인 매카시 하원의장과 차이잉원(중국은 총통이란 말을 쓰지 않음)의 만남을 안배하는 데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과거 대만 총통과 마찬가지로 차이 총통은 미국을 6번 경유했으며 이는 드문 일이 아니다”라며 “중국에 과잉 반응하지 말 것을 우리는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차이 총통은 중미 순방에서 연일 중국에 위협받는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국제 사회에 대만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특히 대만의 중미 핵심 수교국인 온두라스가 단교한 이후 ‘도미노 효과’를 우려해 중미 국가들과의 우호를 강조했다.

대만 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차이 총통은 지난 3일 오전 중미 수교국인 벨리즈 국회에서 “일부 국가(중국)가 우리의 우의를 훼손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을 안다”면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민주 국가와 상호 협력해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역설했다.

그는 “권위주의 정권의 팽창주의에서 오는 위협이 가장 큰 도전”이라며 “지난해 벨리즈 상·하원을 통과한 ‘2022 대만 국제조직참여 결의안’과 최근 채택된 ‘민주 대만 지지 결의안’ 등 벨리즈 정부와 의회의 굳건한 우의와 지지가 우리에게 의미가 매우 크다”고 우호를 강조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왼쪽),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 로이터·AP=연합뉴스
차이 총통은 대만·벨리즈 기술협력협정 행사에 참석한 후 노트북 5000대를 벨리즈에 기증했다. 지난해 벨리즈와 체결한 협력의향서에 따라 200만달러(약 26억원) 상당의 로브스터 수입을 확정했다.

또 지난달 26일 온두라스가 대만과 단교하자 대만은 온두라스산 커피 수입을 중단하고 벨리즈와 과테말라산 커피·코코아 수입에 나섰다. 대만이 지난해 온두라스에서 수입한 커피는 330만대만달러(약 1억4000만원) 규모다. 온두라스가 대만과 단교하면서 대만의 수교국은 13개국으로 줄어들었다.

앞서 방문한 과테말라에서 차이 총통은 “대만은 민주 파트너 및 우방과 각 분야에서 더욱 많은 협력과 진전이 있었으며 과테말라에서는 대만 교민이 건설, 제조, 식품가공 및 무역 등 각 분야에서 풍성한 성과를 거뒀다”며 “대만이 세계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中, 차이잉원 방미 겨냥 연일 무력시위 대만 인근 해역 군용기·군함 잇단 포착

중국 인민해방군(PLA)이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의 회동을 앞두고 연일 대만을 겨냥한 무력시위를 진행 중이다. PLA가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차이 총통과 매카시 의장이 만난 뒤 실제 어떤 대응에 나설지 관심이다.

이날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대만군은 전날 오전 6시부터 이날 오전 6시까지 대만 주변 공역·해역에서 PLA 소속 군용기 14대와 군함 3척을 각각 포착했다.

대만 주변에서 탐지된 PLA 군용기 14대 가운데 윈(Y)-8 대잠초계기 1대와 BZK-005 정찰용 무인기(드론) 1대는 대만 서남부 방공식별구역(ADIZ)을 침범했다가 중국 공역으로 돌아갔다.

앞서 3일 오전 6시부터 4일 오전 6시까지 대만 주변 공역과 해역에서 PLA 소속 군용기 20대와 군함 3척을 각각 포착했고, 지난 2일에는 군용기 5대와 군함 4척, 지난 1일엔 군용기 10대와 군함 3척을 각각 탐지했다.

2022년 8월 4일 대만해협을 관할하는 중국 동부전구(사령부) 로켓군 부대에서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대만을 마주 보는 중국 푸젠성 해사국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만해협의 북부와 중부에서 합동 순항·순찰 작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PLA 동부전구는 전날 소셜미디어에 청명절(5일)을 맞아 대만의 모습을 강조하며 영토 보존을 촉구하는 3장의 포스터를 게시했다. 포스터에는 ‘대만’이 직접 언급되지 않았으나 “중국 병사는 빠트려서는 안 되는 아름다운 강산을 단호히 지킨다”는 문구와 함께 대만의 모습이 선명하게 강조됐다.

차이 총통이 중앙아메리카 순방을 마치고 대만으로 돌아오는 길인 5일 오전 10시 LA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에서 매카시 의장을 만난 후에는 중국이 더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PLA가 회동을 구실로 또다시 대만 상공을 통과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지난해 수준의 도발을 할지 주목된다.

중국은 지난해 8월 2∼3일 당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고 떠난 직후 일주일간 대만 섬을 포위하는 형태로 대규모 실사격 훈련을 한 바 있다. 대만을 포위하는 형태로 6개 구역을 설정해 ‘중요 군사 훈련·실탄사격’을 실시하면서 대만의 동서남북 사방에 장거리포와 탄도미사일을 쏟아부었다.

PLA가 대만의 특정 군사 시설을 마비시키기 위해 전자전을 구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홍콩 명보는 “지난해 8월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시 외신들은 대만 주변에서 벌어진 PLA와 미군의 전자전 대결이 미군의 승리로 끝났다고 보도했다”며 “당시 PLA는 펠로시가 탄 비행기의 정확한 궤적을 감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전자전 장비에 피해를 입었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전했다. 이어 “그러나 베이징 소식통은 PLA가 전자전을 통해 대만의 군사 목표물을 마비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펠로시의 대만 방문 당시 총통부·외교부·국방부·타오위안 국제공항 등의 전산시스템이 한때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등 중국발 사이버 공격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이어졌다.

다만 미국이 여러 채널을 통해 중국이 과잉 반응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전했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일행이 5∼7일 중국을 방문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중국이 유연하게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최근 “중국은 사태의 추이를 면밀히 추적하며 국가의 주권과 영토 완전성을 단호하고 힘있게 수호할 것”이라며 공격적인 표현 대신 수위 조절을 한 메시지를 내놓은 바 있다.

이우중 기자,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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