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함 면세점, 2라운드 돌입…이젠 ‘신라·신세계’ 싸움
중국 국영면세점그룹(CDFG)의 참여로 큰 관심을 받은 인천공항 면세 입찰의 1차 발표가 마무리됐다. 모두의 예상을 깨며 CDFG가 탈락한 것뿐만 아니라 기존에 인천공항에서 22년간 사업을 해 온 롯데면세점까지 고배를 마셨다. 이들 기업은 눈치 싸움에 실패하며 입찰가 경쟁에서 다른 회사에 밀렸다.
이제 남은 과정은 관세청의 특허 심사다. 이번에 1차 발표에서 뽑힌 신라면세점·신세계면세점·현대백화점면세점이 대상이다. 이변이 없는 한 신라·신세계·현대가 각각 사업 구역을 나눠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7월 1일부터 새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이변의 주인공은 ‘롯데면세점’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향후 10년간 인천공항에서 면세점을 운영할 회사를 선정했는데 신라·신세계·현대가 1차 심사를 통과했다.
공항공사 측은 취급 품목에 따라 구역을 나눠 입찰을 진행했는데 일반 사업권에서는 △향수·담배·주류 2개(DF1~2) △패션·액세서리 2개(DF3~4) △명품 부티크 1개(DF5) 등 총 5개 사업권이 나왔다. DF1·2와, DF3·4에서는 신라와 신세계가, DF5에는 신라·신세계·현대가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반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 CDFG는 탈락했다. CDFG는 입찰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인천공항공사 출신과 관세청 출신 인사를 영입하고 면세점에서 제품 경쟁력을 가진 한국의 유명 뷰티 브랜드를 중심으로 입점 확약서를 받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CDFG는 입찰에 나온 5개 구역 가운데 DF5 구역을 제외한 4개에 전부 지원하는 등 열의를 보였다.
하지만 경쟁사의 입찰 금액보다 낮은 금액을 써내 후보지에서 제외됐다. 공사 측에서 총면적 2만4172㎡(약 7300평)를 취급 품목에 따라 DF1부터 DF9까지 구역을 나눠 입찰을 진행했는데 최저 입찰 금액이 이용객 1인당 5346원인 DF1 구역만 봐도 신라는 8987원, 신세계는 8250원 등으로 높게 써냈지만 CDFG는 7388원을 써내 3위에 그쳤다. 다른 구역 역시 신라와 신세계에 밀려 3위를 기록했다.
이번 입찰의 가장 큰 이변은 ‘롯데면세점’이다. 롯데는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한 2001년 면세점 1기부터 최근까지 22년간 사업을 해 왔는데 이번 입찰에서 단 한 구역의 사업권도 따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롯데는 향후 10년간 인천공항 면세점 운영권을 잃게 됐다.
롯데는 DF1, DF2, DF5 등 3곳의 입찰에 참여했지만 DF1·DF2에서는 중국보다 낮은 금액을 써내며 꼴찌가 됐다. 입찰에서 나온 최고액은 DF1에서 8987원, DF2는 9163원인데 롯데는 각각 6738원, 7224원을 써냈다. 이는 최고액보다 최저액에 가까운 금액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면세점 순위에 변동이 생길 가능성도 높다. 전체 면세점의 연매출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기준으로 1조원 수준인데 현재 업계 1위인 롯데면세점이 2033년까지 인천공항에서 사업을 하지 못하면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 2021년 기준 롯데면세점의 매출은 5조6695억원, 신라면세점은 4조3396억원으로 양 사의 매출 격차는 1조3299억원이다.
통 큰 ‘신라·신세계’…진짜 승자는 ‘현대(?)’
입찰 결과 담배·주류 구역(DF1~2)에서는 신라가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했고 패션·액세서리 구역(DF3~4)과 명품 부티크 구역(DF5)에서는 신세계가 앞선 것으로 확인됐다. 신라는 DF1에 8987원, DF2에 9163원을 써냈고 신세계는 DF3에 2690원, DF4에 2506원, DF5에 1760원을 써내 우위를 점했다.
글로벌 면세 전문지 무디데이빗리포트는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곳의 상위 후보자의 재정적 제안에 만족할 것”이라며 “세계 1위 공항이라는 존재감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변이 없는 한 담배·주류와 패션·액세서리 구역은 신라와 신세계가 나눠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사업권 입찰에 중복 참가는 가능하지만 중복 낙찰은 안 되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한 곳의 사업권을 따내면 다른 사업권은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정해지면 명품 부티크 구역은 자동으로 현대에 돌아갈 확률이 높다. 관세청의 특허 심사는 DF1부터 DF5까지 숫자 순서대로 진행되는데 DF1~4 구역을 가져간 사업자는 DF5 구역의 사업권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DF1~4 구역에서 신라와 신세계가 사업권을 가진다면 DF5 구역의 우선 사업 협상자에 오른 신라·신세계·현대 가운데 현대만 사업권을 가질 권한이 생기게 된다.
이에 업계에서는 현대가 진짜 승자라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는 5개 사업권 가운데 명품 부티크(DF5) 한 곳에만 입찰했고 이마저도 입찰금 순위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DF5 구역에서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낸 곳은 신세계(1760원)인데 현대는 이보다 651원 낮은 1109원을 냈다. 심지어 롯데(1200원)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했지만 제안서 평가에서 롯데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 우선 협상 대상자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가장 낮은 금액을 써냈지만 사업권을 확보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오르게 된 현대가 이번 입찰의 승자가 아니냐는 시각이다.
승자의 저주 우려도
일각에서는 입찰가가 과도하게 높아져 승자의 저주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5년 인천공항 입찰’이다.
당시 롯데는 일반 사업권 8개 구역 입찰에 모두 참가했고 이 가운데 향수·담배·패션·전품목 등 4개 구역을 확보했다. 롯데는 신라·신세계보다 2~3배 높은 임차료를 써내며 입찰 우위를 점했다.
문제는 5년간 공항공사에 납부해야 하는 임차료가 3조6173억원에 달했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신라는 1조3253억원, 신세계는 3873억원의 임대료를 낸 것과 비교하면 부담이 큰 금액이다.
당시 롯데 측은 승자의 저주 우려에 대해 “기존 대비 영업 면적이 50% 이상 늘어났고 알짜 매장을 전략적으로 확보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수익성이 지속 악화하자 2018년 약 1870억원의 위약금(사업 마지막 연도 최소 보장액 25%)을 물면서 사업권 대부분을 자진 반납했다.
4개 사업권 가운데 수익성이 가장 좋은 주류·담배 사업권(DF3)을 제외한 나머지 3개 사업권(DF1, DF5, DF8)을 내놓았고 이때 면세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준비하던 신세계가 2개 사업권을 가져갔다.
다만 이번 입찰에서는 고정 임대료 대신 이용객당 임대료 방식을 도입해 신라와 신세계가 향후 10년간 구체적으로 얼마의 임대료를 지불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22년 만에 인천공항에서 사업권을 박탈당한 롯데가 면세 사업을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인천공항은 한국의 대표 관문으로, 73개국의 비행기가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또한 인천공항의 2019년 리테일 매출은 24억3000만 달러(약 3조2000억원)에 달한다. 사업자들이 막대한 임대료를 지불하면서도 인천공항에서 면세점을 운영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천공항 입찰에서 롯데가 보수적인 금액을 써낸 것은 사업 축소와 연결되는 문제가 아니냐는 시각이다.
다만 롯데는 기존에도 인천공항 매출 비율이 높지 않았던 만큼 다른 방향으로 충분히 매출 하락을 상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2019년 기준 인천공항 매출 비율은 10%”라며 “시내 면세점과 해외 면세점을 더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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