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수도사의 월식 기록, 중세 화산폭발 밝혔다
화산폭발서 나온 에어로졸이 햇빛 가린 탓
수도사 월식 기록 통해 중세 화산 폭발 규명
클레오파트라 몰락도 화산 폭발이 불러
스위스 제네바대 환경과학연구소의 마르쿠스 스토펠(Markus Stoffel)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6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수도사들이 남긴 월식(月蝕) 기록을 통해 중세 성기(盛期)인 12~13세기 대형 화산 폭발 시점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월식이 일어나면 달이 붉게 변한다. 중세 교회는 핏빛처럼 붉은 달이 종말의 징조라고 보고 월식 과정을 열심히 기록했다. 과학자들이 달의 변화를 상세하게 기록한 수도사들 덕분에 기후변화까지 초래한 대형 화산 폭발을 밝혀낸 것이다. 과학과 역사 기록의 만남은 화산 폭발이 클레오파트라의 몰락을 부른 과정도 밝혀냈다.
◇달의 밝기, 색 기록으로 화산 폭발 추적
스토펠 교수 연구진은 1100~1300년 월식 기록물 389건을 조사했다. 이 기간 유럽과 중동, 동아시아에서는 달이 지구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월식(皆旣月蝕)이 187번 발생했는데, 이 중 119번에 대한 기록이 남았다. 연구진은 한국과 중국에서는 천문을 담당하는 관리가 월식에 대한 공식 기록을 남겼지만, 유럽과 중동에서는 수도사들이 종교적인 목적으로 월식을 관찰하고 기록했다고 밝혔다.
수도사들은 월식 36번에 대해 달의 색과 밝기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동아시아 기록은 한 월식만 그런 모습을 관측한 것으로 나온다. 기록에 따르면 6번은 달이 이례적으로 어두워졌다. 스토펠 교수는 수도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화산 폭발의 역사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달의 색이나 밝기로 화산 폭발의 규모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개기월식이 일어나도 달이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신 달은 검붉게 물든다. 지구 대기를 통과한 일부 햇빛이 달에 도달하는데, 파장이 짧은 푸른 빛은 도중에 흩어지고 파장이 긴 붉은 빛만 달까지 가기 때문이다. 화산 폭발 규모가 크지 않으면 개기월식에 붉은 달이 보인다.
대형 화산이 폭발하면 평소 개기월식과는 달라진다. 화산에서 분출된 이산화황은 에어로졸(aerosol, 공기 중 미립자)이 돼 10㎞ 상공 성층권까지 올라간다. 햇빛이 지나가는 길이 먼지로 가득 차는 셈이다. 그러면 파장이 긴 빛이라도 달까지 가지 못한다. 이제 붉은 달마저 사라진다. 수도사들은 이런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연구진은 오늘날 화산 폭발과 성층권 에어로졸 사이의 상관관계를 기반으로 나무의 나이테 기록과 빙하에서 추출한 얼음 기둥 분석 결과까지 종합해 중세의 대규모 화산 폭발 시기를 확인했다. 화산 폭발로 에어로졸이 하늘을 가리면 식물이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해 성장이 느려진다. 그러면 나이테가 촘촘해진다. 빙하의 얼음은 과거 대기 상태를 알려준다. 연구진은 개기월식에서 전보다 어두워진 달이 관측된 것은 3~20개월 전 폭발한 화산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화산 폭발이 이례적으로 추운 날씨가 지속되는 소빙하기에도 영향을 주는지 밝힐 수 있다고 기대했다. 400~900년에 고대 후기 소빙하기가 있었으며, 중세와 근대 사이인 13~17세기에는 중세 후기 소빙하기가 이어졌다.
스토펠 교수는 “앞서 연구에서 강력한 화산 폭발은 지구 전체의 기온도 몇 년씩 섭씨 1도 정도 떨어뜨린다고 밝혀졌다”며 “이는 강우(降雨) 형태에도 변화를 줘 어떤 곳에는 가뭄이 들고 다른 곳에서 홍수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화산 폭발이 기상이변을 부르는 것이다.
지구온난화 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독일 프라이부르그대의 안드레아 세임(Andrea Sein)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화산 폭발과 인간의 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는 다르지만, 기후 체계가 상이한 형태의 변동에 대응하는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기후 모델을 더 정교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클레오파트라 몰락을 부른 화산 폭발
과거 기후나 기상이변을 과학과 역사의 융합을 통해 밝힌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기원전 30년 이집트가 로마군에 패하자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국 예일대의 조 매닝 교수와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의 프랜시스 루드로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17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고대 이집트 왕국의 멸망은 화산 폭발이 기폭제가 됐다”고 밝혔다.
과학적 증가는 그린란드와 남극 지하 깊은 곳에서 채취한 얼음 기둥이었다. 여기서 클레오파트라 시대 공기가 갇혀 있는 얼음을 분석했다. 얼음에서는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이산화황이 대량 검출됐다. 연구진은 이 이산화황이 고대 이집트의 농업에 치명타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화산 폭발로 이산화황이 대기로 뿜어져 나오면 햇빛을 가리고 기온을 떨어뜨린다. 이로 인해 계절풍의 힘이 약해져 강수량이 줄어든다. 홍수는 세력이 약해지고 나일강의 수위도 줄어든다. 그러면 이집트 농업의 기반인 퇴적토가 쌓이지 않는다.
연구진은 7세기 이슬람 지배 시절 나일강의 수위를 측정한 기록을 당시 화산 폭발과 비교했다. 실제로 화산이 폭발하면 나일강 수위가 내려갔다. 클레오파트라가 죽기 14년 전인 기원전 44년에도 화산이 폭발했다. 당시 나일강 수위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도시에서 역병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기록은 있다. 화산 폭발로 경제 기반이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참고자료
Nature(2023), DOIL https://doi.org/10.1038/s41586-023-05751-z
Nature Communications(2017), DOI: https://doi.org/10.1038/s41467-017-00957-y
Nature Geoscience(2016), DOI: https://doi.org/10.1038/ngeo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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