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납치·살해 사건도 '증명사진'…반쪽짜리 신상공개 언제까지?
현재 모습 '머그샷' 공개, 이석준 1명뿐…제도 개선은 '논의만'
(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서울 강남 주택가에서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피의자들의 신상이 공개됐지만 이번에도 현재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과거 증명사진이 공개돼 신상공개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전날(5일)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신상공개위)를 열고 심의한 결과 살인 혐의를 받는 이경우(35)와 연지호(29), 황대한(35)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지난달 29일 오후 11시46분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아파트 앞에서 40대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는 지난달 31일 오후 대전 대청댐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신상공개위 측은 "수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해 공개된 장소에서 피해자를 납치 후 살해하는 등 범죄의 중대성과 잔인성이 인정된다"며 "유사 범행에 대한 예방효과 등 공공의 이익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공개 결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날 신상공개위의 결정에 따라 공개된 이들의 사진은 체포 후 촬영되는 소위 '머그샷'이 아닌 이들이 과거에 찍은 증명사진이었다.
◇피의자 거부시 과거 증명사진만 공개 가능…머그샷 공개는 이석준 유일
현행 법무부와 행정안전부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신상공개가 결정되더라도 당사자의 동의를 받았을 때만 머그샷(피의자 사진)을 공개할 수 있다. 당사자가 거부할 경우 신분증의 증명사진만 공개할 수 있다. 신상공개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다. 최근에는 지난해 12월 택시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하고 시신을 숨긴 이기영(32)과 여성 역무원을 스토킹하다 살해한 신당역 살인사건의 전주환(32) 등의 신상공개가 결정됐다.
그러나 이들 역시 공개된 사진은 증명사진이었다. 심지어 사진 보정 프로그램으로 보정한 흔적이 보여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n번방 사건'의 주범인 조주빈(28), 위치추적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2명을 살해한 강윤성(57),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고유정(37) 등 흉악범들도 현재 모습과 차이가 큰 사진이 공개됐다. 현재까지 신상공개에 따라 국내에서 머그샷이 공개된 사례는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을 보복살해한 이석준(26)이 유일하다.
◇흉악범들도 '반쪽' 제도 악용…마스크·후드티·머리카락으로 '꽁꽁' 문제는 흉악범들이 신상공개 제도가 반쪽짜리인 점을 악용할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사형이 거의 선고되지 않아 언젠가 다시 사회로 돌아갈 것을 고려한듯 현재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신상공개를 극도로 꺼렸다는 고유정은 아예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머리카락을 이용해 이른바 '커튼'을 쳐 얼굴을 가리고 취재진 앞에 나섰다. 이기영은 경찰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나서길 권했지만 '가족 등 지인에게 피해가 간다'며 마스크 벗기를 거부했다. 모두 신상공개 결정 이후 이뤄진 일이다. 이번 강남 납치사건의 피의자들도 앞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할 때 후드티와 모자, 마스크로 얼굴을 철저하게 가린 결과, 신상공개가 이뤄졌음에도 이들의 진짜 얼굴은 알 수 없게 됐다.
◇경찰 인권위 "초상권 침해 우려"…전문가 "신상공개제도 실효성 확보해야"
경찰청 인권위원회 측은 피의자를 상대로 한 신상공개 제도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영수 경찰청 인권위원장(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지난 1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를 통해 "추가범행이 더 이상 문제가 안 되는 체포된 상태라면 법적으로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초상권 보호라고 하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며 "(유죄의 확정판결이 나기 전) 무죄인 사람에 대해서 초상권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신상공개 제도 자체를 시행하지 않을지언정 시행할 것이라면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권 문제가 더 크다면) 아예 제도를 없애든지 하지, 제도가 있는데도 형식적으로만 시행한다면 국민 입장에서는 있는 것보다 못하게 느낄 수 있다"며 "제도 도입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 예규의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은 지속적으로 신상 공개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지난달 경찰청 인권위원회 안건으로 '피의자 얼굴 등 신상 공개지침 관련 자문'을 올리는 등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Kri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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