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의 아포리즘] 인류의 행진은 멈추지 않는다/서강대 교수(매체경영)
빠른 회복력으로 전진한 인류
기후위기, 신냉전 시대 닥쳐도
늘 그래 왔듯 또 답을 찾을 것
믿어지지 않겠지만 엄연히 사실인 이야기가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몇 년간 태평양의 작은 섬 타나에 공군 기지를 닮은 몇몇 시설이 세워졌다. 비행기와 활주로, 감시탑이 등장했다. 심지어 구내식당까지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가짜였다. 비행기는 속이 빈 통나무로 만들어졌다. 갈대로 만든 감시탑은 허술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빛만 진짜였다. 그래서 밤에는 공항 주변을 환하게 비췄다. 이 희귀한 비행장에는 어떤 비행기도 이착륙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섬사람은 항공관제사 흉내를 냈다. 또 어떤 원주민은 막대기를 소총인 양 어깨에 메고 군인처럼 행진하기도 했다.
원주민들의 이상한 행태는 훗날 인류학자들이 풀었다. 2차 세계대전은 타나섬 멜라네시아 원주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쟁 중 그들은 자신들의 하늘 위로 미일 두 나라의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바다에서 함정들이 불을 뿜어 대는 광경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와중에 쏟아진 통조림, 의류, 의약품 등 갖가지 물품은 원주민들을 황홀하게 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원주민들은 낙담 끝에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가짜 비행장을 만든 것이다. 주로 항공편으로 물자들이 투하된 기억에 기인한 것이다. 화물들이 다시 돌아와 자신들을 축복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두고 ‘화물 숭배 사상’으로 정의했다.
타나섬의 비극은 오늘날 국가 간 불평등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난한 나라를 위한 선진국들의 지원책은 종종 타나섬 원주민들에게 던져진 물품에 비유된다. 검증된 경제발전계획도 가난한 국가에는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 빈곤국의 인프라, 환경, 풍습 등 밑바탕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처방이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워싱턴 컨센서스다. 어려움에 처한 남미 국가들을 대상으로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1990년대에 내놓은 해결책이다. 시장주의, 무역자유화, 공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 외국인 직접투자 허용 등이 골자다. 모두가 오늘날 인류를 풍요롭게 한 보편적이고도 탁월한 경제정책들이다. 그러나 부패 구조에 찌든 남미 독재국가들에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오히려 부패 카르텔을 공고하게 하는 부작용이 더 컸다. 민주주의, 인권, 경제적 자유 등 기본 인프라가 미약한 환경에서는 별 볼 일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데드 갤로어 교수가 저서 ‘인류의 여정’에서 주장했듯이 인류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실제로 국가 간, 개인 간 불평등의 갈등 속에도 수명과 생활 수준은 급격히 향상됐다. 끊임없는 기후위기설 속에서도 지난 100년간 가뭄, 홍수, 태풍 등과 같은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오히려 급감했다. 최근 들어 이산화탄소를 지구 생태계의 독약쯤으로 보는 견해가 지나치거나 틀렸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류는 그동안 엄청난 어려움 속에서도 전진해 왔다. 스페인 독감, 대공황, 정치적 극단주의, 1·2차 세계대전 등은 인간의 삶을 무자비하게 파괴해 왔다. 그러나 통사적으로 본다면 그때마다 인류는 빠르게 회복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경험했듯이 단기적으로 보면 인류 문명은 이같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 취약하다. 그러나 아무리 무시무시한 재앙이라도 인류 발전에 아주 제한적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지난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인류의 행진은 억척스럽고 그 무엇도 이 행진을 멈추게 할 수 없다. 기후위기가 오고, 다시 냉전시대가 도래해 인류가 망할 것이라는 작금의 디스토피아적인 주장은 지나치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래 왔듯이(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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