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록 뚜렷…5가지 신호가 보내는 시각적 파장
춘천문예회관 30주년 기념전시
국내 대표 작가 5명 27일까지
기록·설치·뒤틀기 등 개성 뚜렷
한국 사진계를 대표하는 구본창·김녕만·박형렬·방병상·심상만 5명의 작품 100여점이 모인 사진전 ‘파이브 바이 파이브(Five by Five)’가 5일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개막했다.춘천문예회관 30주년을 기념한 전시는 정통 스트레이트 사진부터 재현, 뒤틀기, 환상적 구성, 개념화까지 사진으로 말할 수 있는 5단계 표현을 모두 볼 수 있다.
작가들이 고른 피사체와 그것의 선명성을 높이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작가 마음에 우연히 들어왔든, 의도한 것이든 각자의 정체성이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뷰파인더 바깥과의 시각적 리듬을 찾아가는 5가지 여정이 대규모 전시로 펼쳐진다. 전시감독은 김희정 동강국제사진제 큐레이터가 맡았다.
■구본창= 구 작가는 유리장 속에 숨죽이고 있던 백자들을 갤러리로 끌어냈다. 서울 리움미술관,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일본 동양세라믹박물관 등에 있는 백자들은 어느새 그의 대표 시리즈가 됐다. 백자는 만든 이와 우리의 마음을 모두 담은, 혼을 가진 그릇이다. 완만한 곡선 위 긁힌 흔적은 아름다움과 서글픔을 동시에 전한다.
이런 모습이 작가에게는 구원해 주기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고 한다. 이미 흘러간 역사 속 선조들의 예술 혼, 그리고 유물이 존재하는 현재의 시간이 미색 혹은 분홍빛이 감도는 화면 위로 교차한다. 관객들과 정면으로 마주한 백자는 얼룩과 흠집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백자 특유의 볼륨감과 작가가 포착해 낸 색감의 조화 사이로 상상력의 여지도 넓어진다. 누가 사용했을지, 어떻게 발견됐을지, 저 흠집은 어쩌다 생겼을지… 박물관 대신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진은 사진대로, 실물은 실물대로 오히려 더 마주해보고 싶어진다.
■김녕만= 1970년대 농촌마을 한가운데 뚝 떨어진 것 같다. 프레임 구석구석을 한참 들여다 보게 된다. 판문점과 청와대를 출입한 사진저널리스트 출신 김 작가는 자신 앞에 와서 멈춘 시간, 서민의 삶과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붙잡았다. 아무리 사소해도 사진으로 기록해 두면 세월과 함께 확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사진도 연륜을 더해갈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말이다. 일시정지를 눌러가며 흑백 기록영화를 보는 듯 하다. 익살스러운 풍경에 웃음이 나오다가도 어딘가 찡해져서 눈을 떼기 어렵다. 판소리 같은 사진들이다.
뻥튀기 앞에서 귀 막은 소년들과 호돌이를 위시로 빨랫줄에 걸린 인형들, 상표 달린 공산품 상투를 쓰고 전철을 기다리는 이의 뒷모습, 양말에 지폐 두 다발씩 넣는 남자, 머리에 짐을 인채 장닭까지 안고 걷는 여인까지. 요즘 유행하는 사진 기반 SNS 둘러보기를 한참해도 찾기 힘든 ‘삶의 향기’가 진하다. 흙먼지 가득했을 그들의 삶을 관객 시선으로 어루만지게 된다.
■박형렬=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어딘가 황량해 보이는 땅. 그 위로 예각의 삼각형이 크게 파여져 있다. 박 작가의 ‘피규어 프로젝트’는 사람의 손이 많이 닿지 않은 자연공간에 물리적 변형을 가하거나 사람을 직접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물론 촬영 뒤에는 사라지는 가변적 풍경이다. 박 작가가 쓰는 방식 중 하나는 땅을 파헤치거나 조각하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파괴적 관계를 비판적 시선으로 보는 듯 하면서도, 다시 덮는 과정을 통해 회복과 화해의 가능성도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업은 설치와 퍼포먼스가 함께 이뤄지는 복합예술이기도 하다.
기하학적 조형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의 형상임을 눈치 챌 수 있다. 희거나 검은 천 등에 감겨 있는 사람들이 평범했던 공간을 다시 규정짓는 시각적 요소가 된다. 자연이 도시화되는 첫 순간, 생태계 변화의 숙명을 보여줌으로써, 자연을 포획하면서도 그 품을 다시 찾아들어가고 싶어하는 우리의 이중적 본능을 지적한다.
■방병상= 전투기·헬기·자주포·장갑차… 군사훈련 현장의 포탄과 포염을 일반인들이 볼 기회는 많지 않다. 그만큼 군사무기나 전술·전략에 빠져 있는 마니아층도 두텁다. 방 작가가 밀리터리 온라인사이트 활동을 통해 육·해·공군 전술훈련이나 행사 현장취재를 하며 관찰한 장면들이 그의 연작 ‘military spectator’가 됐다. 철원 키리졸브 훈련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8000초분의 1의 셔터스피드로 찍은 썸네일 이미지 수백 컷로 만든 작업에는 오히려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역설적인 타이틀을 붙였다.
불켜진 아파트 앞을 낮게 나는 전투기처럼 실전무기들을 일상 모습과 함께 배치한 장면에서는 전쟁에 대한 공포감이 엄습한다. 반면 계단 아래 작은 크기로 놓인 장갑차에서는 무기는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힘이 달라진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방 작가는 훈련 현장의 엄청난 소리과 파괴력을 매체들이 온전히 담지 못한다는 점에서 기록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질문한다.
■심상만= 사실적이지만 유령인듯 보이기도 하는 야생동물들이 기묘하게 왜곡되어 보이는 풍경 속에 있다. 자연다큐처럼 생생하지만, 누구도 본 적 없는 관념 속 공간인 신 무릉도원이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 인공 자연을 보고 감정의 혼동을 느낀 심 작가는 원본을 파괴하면서도 그것과 똑같은 것을 남겨두려는 속성에서 지나가는 순간을 기어이 붙잡는 사진의 속성을 봤다. 그래서 유사자연을 사진으로 구현했다. 동물관이나 박물관 속 박제동물들이 성경 동화에서 본 듯한 풍경에 놓였다.
재현의 예술로 불리는 사진이지만 원본이 아닌 ‘가짜’를 베낄 수도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인류가 기록,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오랜 기간 해온 일이기도 하다. 너무나 진짜 같지만 실재하지 않는 인공지능(AI )등 가상현상에서처럼 ‘불편한 골짜기’도 느낄 수 있다. 이런 감상 속에 관객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이 과연 계속 가능할지 생각하게 된다.
작가들의 교집합을 찾기 쉽지는 않다. 오히려 차이가 아주 선명하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도 평론을 통해 “이들이 지향하는 작업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개별성의 뿌리를 거느린 나무같다. 그것들이 드리우는 그늘의 강도도 저마다 달라서 그러한 차이와 편차를 제공한다”고 했다. 이쯤에서 전시 타이틀 ‘파이브 바이 파이브’의 뜻이 궁금해 진다. 아날로그 통신에서 신호강도와 선명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를 뜻한다. 서로 다른 갈래이지만 각자의 파장에서 가장 좋은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뜻이다. 서로 시각적 리듬도 맞아 떨어졌다. 정서적 고향, 자연스러움을 찾아가고 싶어하는 근원적 소망을 깨워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작가 5명의 개인전을 자리 이동없이 한 자리에서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전시는 오는 27일까지. 김여진 beatl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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