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나토 가입… 중간지대는 없다, 격화되는 신냉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본격화한 서방과 반(反)서방,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 균열이 점점 더 커지면서 지정학적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대만해협 등 유럽과 아시아·태평양에 걸친 지정학적 ‘핫 스폿(hot spot, 분쟁지대)’을 둘러싼 신(新)냉전의 양상이 격화하면서 자국의 안보와 국익을 지키려는 세계 각국의 합종연횡이 숨 가쁘게 진행 중이다.
핀란드가 4일(현지 시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공식 가입 절차를 완료하자 러시아는 사실상의 ‘군사적 대응’을 천명했다. 한편에선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으로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중국과 대만 간 군사적 긴장감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같은 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향했다. 패권 의지가 노골화하는 중·러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토 등 서방세계의 대결이 더욱 첨예해지면서, 중간 지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핀란드는 이날 오후 벨기에 브뤼셀의 나토 본부에서 핀란드의 나토 공식 가입 문서를 제출하고 나토 본부에 자국 국기를 게양, 나토의 31번째 공식 회원국이 됐다.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은 “비(非)군사동맹의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나토가 새 회원국을 받아들인 것은 2020년 북마케도니아 이후 3년 만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 중 하나로 “나토의 동진(東進) 탓에 러시아와 나토가 직접 국경을 맞대게 되면서, 러시아가 느끼는 안보 위협이 커졌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 반작용으로 오히려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 러시아와 나토 회원국 간의 국경이 기존의 약 2배로 늘어나는 정반대 결과가 초래됐다.
◇ 세력 확장하는 美 주도 나토
나토는 올해 중 스웨덴의 추가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북유럽의 또 다른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은 지난해 5월 우크라이나전을 계기로 핀란드와 함께 나토 가입 의사를 밝혔다. 나토는 또 오는 7월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회원국 정상 회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초청하기로 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젤렌스키는 2019년 취임 이후 나토와 EU 가입을 계속 추진해왔고,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유 중 하나가 됐다. 러시아는 이날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 안보와 국익에 대한 침해”라며 “러시아는 안보 보장을 위해 전략적·전술적 대응책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핵무기 전진 배치로 서방 압박에 나서고 있다. 푸틴은 지난달 25일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고,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한 발 더 나가 “필요하면 전략 핵무기 배치도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두 사람은 5일 양측 대표단을 거느리고 모스크바에서 직접 만나 장시간 회담을 가진다고 알려졌다. 로이터는 “이번 회담에서 핵배치와 관련된 추가적 사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같은 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을 만나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핵 위협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각각 벨라루스와 서쪽과 남쪽 국경에 맞닿아 있다.
◇ 아·태로 확대되는 대립
유럽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와 서방의 대결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5일 열린 나토 외교장관회의는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아·태 4국을 ‘파트너 국가’로 초청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아·태 파트너 국가와) 중국과 러시아 간 협력이 점차 증대하고 있는 문제를 논의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대만의 완전 독립을 막기 위한 무력 합병 가능성도 높이고 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에서 미국 내 권력 서열 3인자로 꼽히는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을 만나기로 하면서 중국과 대만, 또 중국과 미국 간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중국은 전날 외교부 논평을 통해 “미국이 차이잉원의 방미와 매카시 하원의장과 만남을 안배하는 데 결연히 반대한다”며 “둘의 만남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과 미·중 3개 공동성명의 규정을 어기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 EU, 中과 직접 대화 나서
EU가 이런 와중에 중국과 직접 대화에 나서면서 양측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5일부터 3일간 일정으로 중국 방문에 나섰다. AFP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두 정상이 6일 시진핑 주석을 만나 중국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우려를 전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들은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할 경우 유럽과 관계가 급격히 악화할 수 있음을 경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으로 유럽은 중국과 경제 협력 확대를 위해 관계 악화를 원치 않으며, 중국이 러시아가 전쟁을 중단토록 설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럽과 중국 관계를 지렛대로 이용해 갈등 해결에 나서려 한다는 것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유럽은 중국과 디커플링(decoupling·결별)을 원치 않는다”며 “유럽이 원하는 것은 위험 제거(de-risking)”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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