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가뭄피해 반복… 댐·보 촘촘히 연결, 물그릇 키워야”

박상현 기자 2023. 4. 6.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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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휘둘린 治水… 단비에도 해갈 안돼
비 내렸지만… 광주 식수원 저수율 18% 그쳐 -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호남 지방에 5일 단비가 내리자, 전남 화순군 이서면의 동복댐에도 물이 차오르고 있다. 동복댐은 광주의 식수를 책임지는 주요 상수원 중 하나다. 하지만 계속된 가뭄으로 저수율은 이날 0시 기준 18.2%까지 떨어졌다. 이날 호남권엔 50㎜ 안팎의 비가 내렸지만 가뭄을 해갈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연합뉴스

봄비가 대지를 적신 5일 오전 전남 나주시 한 고추밭. 농부 노모(66)씨가 하늘을 향해 “더 퍼부어라”고 소리쳤다. 30년째 논농사와 밭작물을 재배하는 그는 “농사지을 물이 간당간당해 불안했는데 비가 반가워 한걸음에 밭으로 달려왔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2018년 영산강 승촌보(洑)를 개방한다고 발표했을 때 시청을 찾아가 항의했다고 한다. 이날 “보 수문을 열면 (물이 빠지면서) 지하수도 줄어들어 농사짓기 힘들다”며 “5월 모내기까지 물 댈 걱정 없도록 보에 물을 가득 채워놔야 한다”고 했다.

전남 나주에서 약초 밭 5000평을 운영하는 김모(76)씨는 “이번에 내린 비로 가뭄을 해갈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급한 불은 껐다”며 “비가 오기 전 (가뭄이 심할 때 영산강) 죽산보에 물을 가둬놨으면 우리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겠느냐”고 했다. 이어 김씨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역지사지를 모른다”며 “농민들은 죽산보 물이 생명수인데 정치 논리로만 보를 해체하고 가동하는 결정을 하는 것을 보면 기가 찰 노릇”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정부 식의 물 관리 정책을 고집하면 ‘천수답 시대’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후변화 여파로 극한 기상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홍수·가뭄 같은 재해를 예방하려면 ①’물의 망(網)’을 촘촘히 엮어 그릇을 키우고 ②각 수계(水系)별 하천 특성을 고려한 과학적 물 관리 전략을 세우며 ③물의 망을 따라 생활·공업·농업용수 간 ‘물의 교환’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물그릇을 키우는 대표적 방법은 하천에 댐·보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단체 반대 등으로 새로운 물그릇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댐, 보, 하굿둑 등 물그릇을 연계해 새 시설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하천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물그릇으로 만드는 방법이 대안으로 꼽힌다. 이중열 물복지연구소 소장은 “하천은 본류(本流)와 지류(支流), 상류와 하류가 유기체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에 홍수나 가뭄에 대응할 때 어디서 물을 빼고 담아둘지 하천 전체를 아우르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그러려면 각 시설을 연결해 하천을 하나의 물그릇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4대강(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과 섬진강 등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각 수계 특성에 맞는 물관리 정책도 필요하다. 이번 호남권 물 부족 사태와 관련한 영산강의 경우, 다목적댐이 없고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4개 호수’가 사실상 댐 역할을 하고 있다. 나주호(1억800만t), 장성호(1억400만t), 담양호(7700만t), 광주호(1700만t) 등 총 3억600만t 용량이다. 다 합해도 한강 유역 소양강댐(29억t)의 9분의 1 수준이다.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영산강처럼 유역이 작을수록 강수량에 따른 물 확보에 어려움이 커질 수 있어 보가 더 필요한 것”이라며 “비가 적게 올 때 어디서 물을 끌어올지, 어디서 어디로 물을 보낼지 맞춤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환경부는 3일 ‘광주·전남 가뭄 중장기 대책’을 발표하면서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등 4대강 16개 보를 물그릇으로 최대한 활용해 가뭄에 도움이 되도록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보 수위를 높여 본류와 지류 수심을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하고, 이를 활용해 보 영향 구간에 있는 70개 취수·양수장과 71개 지하수 사용지에 생활·공업·농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고 했다. ‘물의 망’을 더 촘촘하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앞으로 물이 농업·공업·생활용수 등 정해진 용도로만 쓰이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이동이 잦아질 전망이다. 이를 위해선 물과 물이 언제든 오갈 수 있도록 엄격한 수질 관리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나온다.

또 녹조 등 여름철마다 반복하는 수질 악화 현상을 해결할 과학적 해법도 필요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영산강 승촌보는 앞으로 수위를 6m로 유지하면서, 물이 더 필요한 지역이 생기면 보 수위를 7.5m까지 올려 도수로 등을 통해 공급하고, 녹조 발생 시엔 보 수위를 5.5m까지 낮추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며 “보를 보답게 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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