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간 마약, 대치동 학원가에서 시음회… “통제 시스템 무너졌다”

송원형 기자 2023. 4. 6.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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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오가는 초중고생에게
집중력과 기억력에 좋다며
마약 음료 무작위로 나눠줘
“자녀가 마약했다, 신고할 것”
부모 협박해 금품갈취 시도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고등학생들에게 마약이 섞인 음료를 마시게 한 일당 중 일부가 5일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학원을 오가는 학생들에게 “집중력 향상에 좋은 음료”라며 무작위로 마약을 탄 음료를 줬고, 학생들은 이를 마약인 줄 모르고 받아 마셨다. 이를 빌미로 부모를 협박해 금품을 뜯어낼 목적에서 이뤄진 범행이라고 한다. 성인이 아닌 미성년자에게 무차별적 마약 살포가 ‘테러’ 수준으로 이뤄진 것이다. 국내 최대의 학원가에서 이뤄진 이번 사건에 경찰 안팎에서는 “마약 통제에 대한 국가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말이 나왔다. 과거엔 전혀 볼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마약 범죄들이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이날 이 사건에 가담한 A(49)씨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자택 근처에서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이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파악된 사람은 총 4명이고 이 중 A씨는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음료를 나눠줬다고 한다. 공범인 20대 남성도 이날 경찰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일당은 지난 3일 오후 6시쯤 2명씩 짝을 이뤄 강남구청역과 대치역 인근에서 고등학생들에게 마약 음료를 건넸다. 이들은 “최근 개발한 기억력 상승과 집중력 강화에 좋은 음료수인데, 시음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음료수 겉면에는 유명 제약사의 상표가 붙어 있었고, ‘기억력 상승 집중력 강화 메가 ADHD’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음료수를 마신 학생들은 가족들에게 “어지럽다”고 했고, 학부모들이 “자녀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며 112에 신고했다. 현재까지 접수된 신고 건수는 모두 6건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학생은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왔다.

일당은 “구매 의향을 조사하는 데 필요하다”며 피해 학생의 부모 연락처를 받은 뒤 부모에게 연락해 “자녀가 마약을 복용한 것을 신고하겠다”고 협박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인근 폐쇄회로(CC)TV와 피해자 진술을 토대로 5일 일부 피의자를 검거했다. 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시켜서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음료수를 건넸고,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지는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미성년자가 마약에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증명했다. 지난달에는 서울의 한 여중생(14)이 필로폰을 투약해 경찰에 입건됐다. 이 여중생은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 판매상에게 비트코인 40만원어치를 건넨 뒤 광진구의 약속된 장소에서 필로폰 0.05g을 가져오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얻었다. 이 여중생은 “호기심에 해봤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작년 5월에는 단순 마약 구매자가 아닌 고등학생 마약상 총책이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이 고등학생은 텔레그램을 이용해 마약을 판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은 최근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대검에 따르면 작년 수사 당국에 적발된 마약 사범은 역대 최다인 1만8395명으로 2021년 1만6153명보다 13.9% 늘었다. 작년 7월엔 서울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20대 남성 손님과 30대 여성 종업원이 필로폰 과다 복용으로 숨지기도 했다. 그해 10월 경기도 김포시 한 창고에 대마 재배 시설과 각종 악기, 게임기 등을 갖춘 ‘대마 파티룸’이 적발됐다.

대마가 중독성이 약한 연성 마약이라 심각성이 덜하다고 받아들이던 시대도 지났다. 서울중앙지법은 5일 ‘액상 대마’를 흡연하고 판매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남양유업 창업주의 손자 홍모(40)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액상 대마는 대마 잎을 압착해 추출한 원액을 액체 형태로 만든 것으로, 기존 대마보다 농도가 10배 이상 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대마보다 환각 증상과 중독성이 강하지만, 전자담배 용기 등에 담아 거래가 이뤄져 적발이 어렵다고 한다.

마약 남용을 막으려는 검경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특히 마약상의 규모가 커졌다. 검찰은 5일 서울 시내 재개발 지역이나 주택가에 마약을 숨긴 뒤 찾아가게 하는 수법으로 마약을 판 판매상이 재판에 넘겨졌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특별수사팀(팀장 신준호 부장검사)은 네덜란드 등 해외에서 들여온 마약을 국내에서 판매한 이모(36·무직)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올해 2~3월 네덜란드에서 LSD(혀에 붙이는 종이 형태 마약·환각제) 200개와 엑스터시, 대마 등을 밀수했다. 이후 텔레그램에서 마약 구매를 원하는 사람을 찾은 뒤 돈을 받고 서울 시내 곳곳에 마약을 숨겨 찾아가도록 했다. 이씨가 숨긴 장소는 집 계단과 지붕, 배전함, 에어컨 실외기, 나무 사이 등 463곳이다. 검찰은 이 중 이씨가 최근 마약류를 숨긴 137곳을 집중 수색해 48곳에 은닉된 시가 수천만원 상당 마약을 압수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주거 인구가 많지 않은 재개발 예정 지역 등에도 마약을 숨겼다고 한다.

이씨는 처음에는 마약을 파는 총책에게 포섭돼 ‘운반책’으로 활동하다 나중에는 스스로 매수자를 찾아 판매하고 총책과 수익을 나누는 등 범행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총책과 이씨는 온라인상으로만 연락을 주고받아 서로의 이름은 모른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 외에 총책으로부터 지시를 받는 다른 마약 판매자도 있는 것으로 보이며 사실상 ‘점조직’ 형태로 운영됐다”고 했다. 검찰은 총책과 매수자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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