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기자 2023. 4. 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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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을 두고 나라가 떠들썩하다. 이해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분명한 사회적 합의가 있지 않은가? 새삼 논란을 벌일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나라 최고 주권기구인 대한민국 국회가 이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고, 사법부는 판단에 이를 적용하였으며,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는 이를 집행하였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진 것은 2000년 1월이었고 그것에 따라 작성한 ‘4·3사건 진상 보고서’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그 후 특별법은 수차례 부분 개정과 전면 개정 등을 거쳐 최근까지 내용이 보완되고 있으며,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진상규명, 명예회복, 피해보상 등이 진행됐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더 다듬어야 할 대목은 있다 하겠으나 이를 되돌리려는 왈가왈부는 있을 수 없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소란 때문인지 올해 동백꽃 잎은 유난히 붉어 보인다.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죽임과 죽음이 엇갈리는 참혹한 지옥을 헤맸던 ‘경찰’ 가족과 ‘산사람’ 가족은 이미 ‘통곡의 세월’을 건너 역사적 화해를 했다. 함께 손잡고 상생의 세상을 만들자고 나섰다. 그런데 당사자도 아닌 정치인들은 왜 이 난리인가?

이 혼란의 중심에는 안타깝게도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그는 대통령 후보자 시절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했다. 그의 국민통합 행보는 박수를 받았다. 그의 연설은 평범했으나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4·3의 아픈 역사와 한 분, 한 분의 무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지금 ‘그 약속이 아직도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받고 있다. 제주 4·3 추념식에 윤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탓에 그가 한 말의 진정성이 의심을 받고 있다. 그의 추념식 불참에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대통령은 추념식에 불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야유와 탄식이 쏟아지고 있는가? 그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줄곧 국민통합의 반대 방향으로 줄달음치고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검찰공화국’이라는 민망한 별명, 그 완력으로 정치판을 ‘탈탈 털고 있다’는 평가, 소통과 공존의 정치를 통한 국민통합 약속은 물 건너간 지 오래라는 지적 등이 사실이고, 이런 이유로 윤 대통령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 불을 지르는 일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에 김광동을 임명하였는데 그는 5·18을 왜곡하는 견해를 계속 강변하여 논란의 불을 지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제주 4·3에 김일성이 개입을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불씨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국민의힘 수석 최고위원 김재원도 5·18과 4·3의 의미를 폄훼하는 발언으로 폭탄급 자해를 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런 논란의 당사자에 대해 분명하게 조치를 하지 않고 있어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기대의 끈을 완전히 놓고 싶지는 않다. 윤 대통령이 한 4·3에 대한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믿고 싶다. 윤 대통령이 이념적으로 극단적인 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다른 정치·사회 세력들과 함께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피해보상에 계속 성의를 다해 줄 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제주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앞으로 할 일이 많고 그것은 기왕의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양성주 사무처장과 한국사회과학연구회 허상수 이사장은 ‘4·3의 이름을 제대로 찾고, 국가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이루어져야 하며, 미국의 역할과 책임규명도 더 진전되어야 하고, 희생자 가족과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활동 피해자에 대한 지지도 필요하고, 세대 전승 및 교육사업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잠들지 않는 남도, 제주 4·3의 ‘정의로운’ 문제 해결은 일제강점기 역사적 진실 파악은 물론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그리고 군부독재 시기 인권유린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 및 책임 추궁에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제주 4·3에 대한 역사적 진실 추구는 계속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여야와 진보·보수를 넘어 공감대와 협력을 만들어가는 게 좋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권, 평화, 자유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문명국가임을 보이는 징표가 아니겠는가? 윤 대통령은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국민통합’은 덤으로 얻는 가치가 될 것이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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