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홍차의 시간
일기예보엔 봄비. 밀려드는 거무튀튀한 구름과 안개. 임솔아 시인의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에서, “나는 날씨를 말하는 사람 같다. 봄이 오면 봄이 왔다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전한다… 날씨를 전하는 동안에도 날씨는 어디론가 가고 있다… 가장자리부터 얼어가는 저수지와 빈 유모차에 의지해 걷는 노인과 종종 착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비가 오려니까 빈 유모차도 보이지 않네. 과일도 떨어지고 없고, 동날까 서둘러 아랫마을로 딸기를 사러 나갔어. 농협창고 주차장에 시비가 붙은 차량이 경찰을 부르고, 지는 게 이기는 거라던데 ‘지게꾼’ 말고는 절대 지려고들 않네. 식인종들은 아옹다옹 다투는 경찰서를 불량식품점이라 한다덩만. 붉을 홍 자 순찰차의 사이렌이 요란하게 지나간 뒤 빗소리가 바통을 이어 토독토독. 나는 오랜만에 우산을 펴고 차에서 내려 장을 봤다. 홍차 밀크티도 먹고파 우유 팩도 한 개 챙겼지.
다디단 딸기와 따끈한 밀크차, 고소한 빵 한 조각이면 배시시 미소가 번져. 인도의 다르질링이나 닐기리 홍차, 중국의 안후이성 기문 홍차, 스리랑카의 우바에서 만든 고급 홍차가 아니라도 괜찮아. 정성껏 달이고 우린 밀크티 한 잔이면 차가운 빗속에 온몸이 따뜻해질 거야.
“맛있는 홍차를 마시려면 어떻게 해야죠?”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에요. 일단 집으로 가세요.” 한 홍차 전문가의 조언을 기억해. 홍차는 집에서 먹어야 제맛.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갖는 데 소홀하지 말 것. 차를 마시는 순서를 알아보자. ‘잠시 하던 일을 멈추라/ 찻잔을 꺼내라/ 마실 차를 고르라/ 곁들일 티 푸드를 준비하라/ 차를 우리면서 향기를 맡으라/ 천천히 마시면서 음미하라.’ 차를 다 마시면 그만큼의 시간이 행복해진 셈이겠다. 귀로 먹는 것은 욕뿐인데, 입으로 차와 딸기를 먹으니 그나마 행복해.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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