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검찰주의자들의 ‘멋진 신세계’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다. 최고의 시절이고 최악의 시절이다. 지혜의 시대이고 어리석음의 시대다. 어떤 이에겐 희망의 봄이지만 다른 이에겐 절망의 겨울이다. 목청 높은 권위자들은 작금의 상황을 양극단으로만 평가하며 헌법과 현실의 불일치를 비판한다. 그러자 검찰주의자들이 되레 개헌안을 들고나온다. 그들의 주장을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우선 정당제를 규정한 헌법 제8조를 수정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당민주주의 훼손이라는 비판까지 무릅쓰면서 여당인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했다. 내년 총선에 검사를 여당 후보로 공천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제8조를 다음과 같이 고치면 윤 대통령의 행동은 시빗거리가 안 된다.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검찰적이어야 하며, 검사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평등하다. 그러나 검사들은 더 평등하다. 검사들은 비리 의혹이 제기돼도 수사를 받지 않고, 죄를 지어도 가벼운 처벌만 받는다. ‘대장동 사건’에 연루된 전직 검사 박영수·김수남·곽상도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평등권을 규정한 제11조를 현실에 맞게 고친다. ‘검사를 제외한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직업공무원 제도를 명시한 제7조도 수정한다. 임관하자마자 3급 대우를 받는 검사는 일반 행정부 공무원과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검사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다.’
최근 전직 검사들이 무더기로 재벌·대기업에 취직했다. 전 검찰총장은 삼성그룹 계열사 사외이사를 꿰찼고, 전 대검 차장도 대기업 이사회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 사회에서 검사만큼 다재다능한 인재는 없다. ‘보이지 않는 손’의 개입과 검찰 수사로 공석이 된 KT 대표이사직을 포함해 검사들이 원하는 직장, 원하는 직위에 갈 수 있도록 헌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에 직업선택의 자유를 규정한 제15조의 주어를 검사로 바꾼다. ‘모든 검사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제17조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 제18조 통신의 자유도 검사를 주어로 서술한다. ‘모든 검사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모든 검사는 통신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이로써 검언유착 논란이 일었던 ‘채널A 사건’, 검사 출신 의원과 현직 검사 간 유착 의혹이 제기된 ‘고발사주’ 사건의 핵심 증거가 담긴 한동훈 법무부 장관 휴대전화를 수사하지 못한 것은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국회나 헌법재판소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 한 장관의 위상을 감안해 제71조도 수정한다.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법무부 장관이 최우선적으로 그 권한을 대행하고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한다.’
지난 1년 동안 대통령실과 국가정보원·법무부의 주요 보직이 검사로 채워졌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와 김진태는 각각 대구시장과 강원지사가 됐다. 국가보훈처장, 법제처장, 금융감독원장,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교육부 법무보좌관, 국민연금 상근전문위원에도 검사 출신이 임명됐다. 공무담임권을 명시한 제25조는 다음과 같이 고친다. ‘모든 검사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
그래도 혹여 검사의 인권과 수사·기소권이 침해될 수 있으므로 제37조를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검사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검사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이렇게 하면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이 추후 중용되더라도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선출 절차를 명시한 제67조를 고친다. ‘대통령은 검사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검찰을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검사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검사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제69조)
※이 픽션 도입부는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서두를 패러디했습니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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