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은 진행 중

기자 2023. 4.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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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을 시작으로 지난 3주간 미국 은행들, 심지어 유럽의 대형은행들을 둘러싼 혼란과 우려가 금융시장에 팽배했다. 일단 급한 불은 꺼진 모양새이지만 진화완료 선언을 하기에는 때 이른 지금 조심스럽게 짚어봐야 할 문제가 몇 개 있다. 우선 진행 경과를 간단히 살펴보자. 자산 규모로 미국 16위인 은행이 예금주들의 예금인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보유하던 채권을 방매(fire sales)하면서 큰 손실을 보게 되고, 이로 인해 악화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자 증자를 추진했으나 실패하면서 번개 같은 속도로 대규모 뱅크런이 발생했다. 그러자 금융당국은 곧바로 파산을 선고하고,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가 해당 절차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SVB는 설립 이후 40년간 미국 벤처기업의 산파 역할을 톡톡히 해낸 은행으로 유명하다. SVB는 벤처캐피털(VC) 및 벤처기업과의 삼각 협업관계를 기반으로 벤처기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벤처대출을 제공하거나 VC 등에 대한 대출을 통해 간접투자를 수행하는 사업모델을 추구해왔다. 미국 벤처 기업공개(IPO) 기업 중 절반이 SVB로부터 직간접적인 대출이나 지원을 받았다. 특히 IPO를 실시한 기술 및 헬스케어 벤처기업의 약 45%를 지원했다. 이 모델은 적어도 파산하기 전까지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부실대출비율(NPL)도 다른 상업은행들에 비해 월등히 낮은 수준(3분의 1 내지 4분의 1 수준)을 유지했다. 벤처기업 육성을 통한 새로운 생태계 구축과 산업혁신이 절실한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형태의 은행모델에 주목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랬던 SVB가 파산에 이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거액 기업예금 중심의 편중된 조달구조이다. SVB는 VC와 벤처기업 간 견고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이들이 유치한 대규모 투자자금을 예금으로 받았다. 예금주가 곧 차주였던 셈이다. 전체 조달 중에서 예금의 비중이 88.9%인데, 이 중 개인 예금주는 12%에 불과하고 대부분 거액 기업예금이었다. 또 미국 예금보호한도 25만달러를 초과하는 예금의 비중이 90% 가까이 된다. 이렇듯 자금의 특성상 변동성이 높은 거액 기업예금 위주의 조달구조는 유사시 구조적 취약성을 노출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둘째, 연준의 유동성 회수 및 급격한 금리 인상이다. 이는 VC의 자금조달을 위축시키고 벤처기업의 자금난으로 이어져 이들의 SVB에 대한 예금인출이 본격화되면서 SVB의 유동성 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2010년 이후 저금리 장기화와 팬데믹 시기의 전례 없는 유동성 공급이 이 사태를 야기한 전사(前史)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1분기 SVB의 총예금은 523억달러였는데, 2022년 1분기에는 1981억달러로 거의 4배나 급증했다. 반면에 미 연준이 금리 인상 랠리를 시작한 2022년부터 예금인출이 증가해 요구불예금은 40% 가까이 줄었다.

셋째, 장기채 위주의 자산 운용과 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손실이다. 벤처기업에 대한 대출여건이 악화하면서 예금으로 유입된 자금을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는 장기채권으로 운영했는데, 정작 예금인출 요구에 따라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큰 손실을 본 것이다. 그 직후 발생한 뱅크런은 교과서적이다. 모든 예금자들이 은행이 망할 것이라고 예상해 한꺼번에 자신의 돈을 인출하려고 하면 어떤 은행이든 망할 수밖에 없다. 부분지준제도 아래에서 뱅크런으로부터 자유로운 은행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게 끝일까? 개별 은행(들)의 일회성 에피소드일 뿐이고, 금융당국의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으로 잘 봉합된 것일까?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년간의 금리 인상을 고려해 4844개 미국 은행 전체가 보유한 자산을 시가로 평가해보면, 장부가격 대비 9.2%, 즉 2조2000억달러의 가치가 하락했다고 한다. 이는 미국 전체 은행 자기자본의 96%에 해당된다. SVB나 일부 은행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셈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지적했듯이, 은행 외에도 비은행 금융기관 또는 그림자금융의 위험이 수면 아래에 도사리고 있다. 어쩌면 세계적인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회장이 말한 ‘천천히 진행되는 위기(slow-rolling crisis)’를 경계해야 할 시점이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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