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로 큰 SK그룹, 이젠 인수기업 적자 늘어 골머리
한국거래소가 5일 장 개시 직전 SK하이닉스 공매도 금지령을 내렸다. 지난 3일 해외에서 2조원에 달하는 교환사채를 발행했다고 밝히면서 다음 날 1000만주가 넘는 공매도(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 매도하는 것) 물량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올 1분기 3조5000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예상되는 SK하이닉스가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거액의 채권을 발행하자 투자자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커진 것이다. 한때 SK그룹의 ‘캐시 카우’ 역할을 하던 SK하이닉스가 최근 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4분기부터 영업 적자(1조7000억원)로 돌아서 올해 10조원에 육박하는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주요 이유는 극심한 반도체 불황이지만, 2020년 인수한 인텔 낸드 사업(현 SK하이닉스 낸드프로덕트솔루션)의 손실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K그룹은 1980년 대한석유공사(현 SK이노베이션),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에 이어 2012년 SK하이닉스까지 3대 ‘빅 M&A(인수·합병)’로 자산 규모 재계 2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 밖에도 어느 대기업보다 활발한 M&A를 벌이며 성장 동력으로 삼았지만, 경기 불황이 닥친 최근엔 M&A로 사들인 사업·지분들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텔 중국 낸드 공장이 최대 골칫거리
재계에선 SK하이닉스가 전성기를 맞았던 2019~2021년 3년간 벌어들인 영업이익 20조원을 최근의 M&A 때문에 거의 다 까먹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20년 인텔이 매물로 내놓은 ‘낸드플래시 반도체(비휘발성 메모리 반도체)’ 사업 부문을 88억4400만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환율로 10조3000억원이었지만, 아직 22억3500만달러의 잔금이 남아 있어 환율 상승을 감안하면 투입 비용이 11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이 사업의 적자는 계속 쌓이고 있다. 지난해 낸드프로덕트솔루션은 3조3256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5% 감소한 6조8000억원이었는데, 대부분 낸드 사업 때문에 감소한 것이다.
특히 인텔로부터 산 중국 다롄 공장이 미국의 반도체 규제 직격탄을 맞아 최대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곳은 SK하이닉스 낸드 생산의 약 30%를 차지한다. SK하이닉스는 이곳을 낸드 사업 핵심 거점으로 키울 계획으로 설비 투자를 단행해왔지만 지난해 10월 미국이 대중 반도체 제재를 발표하면서 황당한 상황에 놓였다. 첨단 반도체 장비와 기술을 중국에 들일 경우 상무부의 별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공장 내 첨단 장비 업그레이드가 막혀 기업들은 중국에서 차세대 반도체를 만들 수 없게 된다. 일단 SK하이닉스는 제재에 대한 1년 유예를 받았지만, 미국이 쉽게 제재를 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선 “미·중 기술 패권 갈등과 미국의 중국에 대한 단호한 태도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인텔이 매물로 내놓은 중국 공장을 SK가 샀다가 낭패를 보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2018년 4조원을 투자한 일본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도 낸드 업황 불황으로 적자다. 이에 따른 SK하이닉스의 장부상 평가 손실이 지난 4분기 6000억원이 넘는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21년 MZ 직원들이 주도한 성과급 투쟁에 따라 삼성전자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해 인건비 부담도 상당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당시 낸드 사업을 인수한 건 D램 의존도가 높은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회사를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었다”며 “장기적으로는 회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베트남 투자도 손실
SK그룹이 최근 5년간 베트남과 미국에 투자한 기업들 지분 가치도 최근 크게 하락하고 있다. SK와 SK E&S는 지난 2021년 1월 미국 수소연료전지기업 플러그파워에 15억달러(당시 1조6000억원)를 투자해 지분 9.9%를 확보했다. 플러그파워는 그린수소의 생산·저장·활용을 포괄하는 그린수소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해 SK의 투자 직후 주가가 급등했지만, 수소 산업 성장이 더디고 적자가 누적되면서 주가가 다시 큰 폭으로 내려앉았다. SK는 주당 29.3달러에 인수했는데 현재 주가는 10.6달러로 3분의 1토막 난 상태다.
베트남 투자도 신통치 않다. SK그룹은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른 베트남에 지난 2018년부터 투자했다. 베트남 재계 2위의 유통 기업인 마산그룹 지분 9.5%를 5300억원에, 이듬해에는 베트남의 삼성그룹이라고 불리는 빈그룹 지분 6.6%를 1조원에 인수했다. 하지만 SK가 인수할 당시보다 주가가 마산그룹은 22%, 빈그룹은 49% 하락한 상태다. 빈그룹은 특히 건설·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경쟁이 치열한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어 돈을 쏟아부으면서 주가가 지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M&A의 특성상 경기 불황기에는 손실을 볼 수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선 다를 수 있다”며 “기업이 성장을 위해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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